생애 첫 주택 취득세 면제 등 매매 유도에만 쏠려 '유명무실'
증권회사 신입사원 김모(27)씨는 올해 결혼할 계획이지만 신혼 집을 아직 구하지 못하고 있다. 예비신부와 최대한 끌어 모은 1억2,000만원으론 도무지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직장이 있는 서울 여의도 근처에서 전셋집을 찾는 일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두 달 넘게 서울 외곽을 돌아다녀도 허사였다. 김씨는 "지원받을 수 있는 정책이 있는지 알아봤지만 기준에 맞지 않더라"며 "정부가 전세 대책을 내놓는다고 하는데 도대체 누굴 위한 정책이냐"고 푸념했다.
전셋값은 치솟고 있지만 정부의 전세대책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떠밀리듯 내놓는 대책은 거래 우위에 서 있는 집주인의 희생을 요구하는가 하면, 집값 추가 하락을 예상하는 시장과는 반대로 가는 매매전환 유도 정책이라 약발이 먹힐지 의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전세 정책은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다. 당초 정부는 집주인이 세입자를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전세보증금을 마련하고 세입자는 대출금 이자를 납부하는 '집주인 담보대출'을 대표상품으로 내세웠지만 출시 일정을 계속 미루고 있다.
각종 세제 혜택을 주겠노라고 공언했지만 집주인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물건이 나오는 즉시 세입자들이 낚아채가는 공급자 우위의 전세시장에서 어떤 집주인이 불편을 감수하고 세입자를 위해 대출을 받겠느냐"며 "세제혜택보다 가격을 올려 받는 게 훨씬 수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12일 국토교통부는 집주인 담보대출을 제외한 '임차보증금 반환 청구권 양도' 방식만 이달 말 6개 시중은행에서 출시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융권의 보증으로 연 3~4% 초반의 저리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 전세대란을 초래하는 수급 불일치 해소에는 역시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업계 공통 의견이다.
그런데도 정부 정책은 여전히 주택 매매에만 쏠려있다. 생애 첫 주택 구입 시 취득세 면제, 신축 및 미분양 주택 구입 때 5년간 양도세 면제 등이 그렇다. 그러나 매매 유도 정책은 집값 하향 심리로 인한 부동산 경기침체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전국과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은 올 상반기 각 2.75%, 3.5% 상승했고, 하반기에도 오름세가 예상된다.
정부가 우왕좌왕하자 시민단체와 정치권은 전월세상한제가 유일한 대안이라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은 세입자가 희망하면 1회에 한해 계약을 더 연장할 수 있는 계약갱신요구권을 도입하고, 인상률을 연 5% 이내로 제한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한 상태다.
그러나 전월세상한제는 양날의 칼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집주인이 절대적으로 우월한 상황이라 집주인에게 불리한 제도가 도입되면 한번에 전셋값을 크게 올리는 등 위험한 처방"이라고 말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전월세 가격 제한이 임차인을 보호하는 측면이 있지만 시장 반응을 살펴보면 오히려 공급이 줄어 임차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공공임대주택 확대가 최선의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 공급률(5%)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1.5%)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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