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중산층]중산층 붕괴 막을 해법은..일자리 만들고 자영업 몰락 막아야
중산층을 늘리려면 중산층이 무너진 배경부터 따져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중산층 붕괴 원인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비정규직 증가, 자영업 몰락, 막대한 가계부채를 꼽는다.
중산층 붕괴를 막기 위한 첫째 해법은 경기 침체에 따른 양극화 해소다. 대기업 정규직 임금은 갈수록 치솟지만 중소기업은 비정규직 비중만 늘고 있다. 국내 전체 임금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3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5%를 훨씬 웃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위기를 몇 차례 겪으면서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추락했다. 계층 상승 기회를 잃어 재기할 수 있는 희망마저 사라졌다"고 설명한다. 기업 간 양극화도 점차 심화되는 양상이다. 김정식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간 격차가 벌어지면서 중소, 내수기업에 종사하는 중산층의 소득 수준이 떨어졌다"고 분석한다.
양극화로 인한 소득 격차를 해결하려면 '좋은 일자리 창출'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선 정부가 기업 투자를 유도하면서 내수 시장을 진작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수출 비중이 높은 대기업보다 고용을 창출하는 내수산업 위주로 지원을 늘려 국내 근로자 소득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국내 일자리를 늘릴 만한 환경도 중요하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대기업이 해외로 나가지 않고 국내에서 투자를 더 활발히 할 수 있도록 산업단지 인프라를 개선하고 글로벌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력과잉 사회, '일자리 성격 평가' 필요
좋은 일자리가 아무리 많아도 구직자 모두를 수용하긴 어렵다. 결국 구직자에게 '알맞은' 일자리를 찾아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일자리 성격 평가제'가 필요하다. 실제로 고졸자 적합 업종에 대졸자가 하향 취업하면 업무 성과가 오히려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동열 실장은 "학력과잉 사회에선 자신의 직무보다 높은 학력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이때 직무 만족도와 성취도가 떨어지고, 조직 생산성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선진국에서도 좋은 일자리는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만든다. '고령자 도우미'처럼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나서서 '일자리 쏠림' 현상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영준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는 "일자리 균형을 위해서는 대기업, 금융공기업 등 보수가 과다하게 책정된 일자리로 인재가 쏠리는 현상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둘째, 자영업자 몰락을 막아야 한다. 신규 창업자 중 절반 이상이 3년 내 폐업한다는 통계도 있다. 김건우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정리해고를 당한 실업자들이 자영업으로 이동하도록 부추기는 바람에 부실한 자영업자를 양산했다. 중산층 자영업자들은 미흡한 준비 아래 창업했고 결국 실패해 빈곤층으로 추락했다"고 전했다. 자영업자를 위한 사회 안전망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덧붙인다. 김건우 연구위원은 "자영업 고용보험을 확대하고 창업 관련 컨설팅을 정부에서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 충분한 준비 없이 함부로 창업하지 않도록 유예기간을 두는 창업 숙려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전했다.
'88만원 세대' 저자로 잘 알려진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는 협동조합을 일자리 창출의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다. 실제로 지자체 차원에서 협동조합 설립을 지원해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한 예로 서울 서대문구는 택배와 심부름센터, 세차 서비스를 맡는 '가사 토털 서비스 사업단'을 만들기로 했다. 옷 수선과 리폼, 자전거 공방 등 주민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일자리도 지원할 방침이다. 우 교수는 "주식회사나 대기업만 갖고는 고용 문제 해결이 어렵다. 협동조합 출자금을 지원하거나 농협처럼 3년간 일부 사업비를 지원하는 식으로 협동조합을 적극 육성할 필요가 있다. 유럽에서는 협동조합을 일자리 창출 창구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지방 '스타기업' 늘려 대도시 쏠림 해소
셋째,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 문제 해결 없이는 중산층 복원이 어렵다. 집값 하락으로 집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 집값도 못 건지는 이른바 '깡통주택' 보유자는 19만명에 달한다. 지난해부터 하우스푸어, 렌트푸어, 에듀푸어 등 각종 푸어들이 급증하면서 사회 문제로 부각됐다. 김정식 교수는 "원리금 상환 부담을 줄이려면 금리부터 낮춰야 한다. 주택담보대출을 장기 분할 상환하거나 고정금리 대출로 전환하는 방안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넷째, 정부 차원에서 지역균형발전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경제력의 대도시 집중 정도가 높을수록 소득 불균형이 심해지고 덩달아 중산층도 얇아지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경우 대도시가 아닌 지방 소도시에 거주하는 중산층 비율이 높은 데 비해 우리나라는 대도시 쏠림 현상이 심하다. 지자체별로 그 지역을 대표하는 스타기업을 키우고, 관련 업체를 계속 유치해 우수인재가 몰리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영준 교수는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도 얼마든지 좋은 일자리가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지방에선 임대료와 생활비가 낮아 자영업 실패 확률도 낮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대도시 실직자들이 지방에서 새로운 삶의 기반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중산층 70% 공약이 가능할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박 당선인이 제시한 가계부채 해결 방안에는 최대 18조원에 이르는 국민행복기금을 마련해 일반 채무자는 50%, 기초생활수급자는 최대 70% 감면해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박근혜 정부가 가계부채 탕감을 위해 12조원 국채 발행에 나설 계획인데 국채 상환기간이 왔을 때 제대로 상환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중산층 붕괴는 일자리로 풀어야 하는데 청년층 일자리 관련 정책이 부족하다"는 우석훈 교수의 지적은 새겨볼 만한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중산층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설동훈 교수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중산층 조건으로 경제적 자본 외에 사회·문화적 자본을 일정 수준 이상 보유할 것을 내걸었다. 이를테면 전문직 종사자와의 친밀성, 다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취미 보유 등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중산층 기준이 경제적 자본에만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중산층 조건으로 페어플레이 정신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심을 둘 필요가 있다"고 전한다.
선진국의 중산층 대책
스웨덴, 中企 살려 중임금 일자리 확대
소득 양극화로 인한 중산층 축소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선진국들도 중산층을 늘리기 위해 고심한다.
스웨덴은 중소기업을 활성화해 중간 수준의 안정된 소득을 올리는 두꺼운 중산층을 갖게 된 사례다. 스웨덴도 한때 양극화 현상을 겪었다. 대기업에 유리한 조세제도 탓에 대기업 고용 비중이 60%를 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커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에 스웨덴은 1990년대 이후 중소기업 지원을 강화해 지자체가 중소기업 육성정책을 주도하도록 산업정책 분권화를 추진했다. 이런 노력으로 지자체마다 '스타기업'이 탄생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중간 수준인 일자리가 많아졌고 덩달아 중산층도 늘었다. 스웨덴의 중산층 비율은 독일(43%)보다 높은 52%에 달한다.
영국도 발 빠른 대처로 중산층 복원에 성공했다. 영국은 저소득층의 노동 시장 참여를 높이기 위해 1997년부터 일찌감치 '근로연계형 복지 프로그램'인 뉴딜 정책을 추진했다. 고용주가 최소 26주 근로기간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근로자 1인당 임금 60~70파운드, 교육비 750파운드를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이다. 자녀가 있는 저소득 가정도 근로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아동세금공제와 근로세금공제로 소득보전을 추진했다. 그 결과 영국은 지난 10년간 185만명이 구직에 성공했고 실업급여 신청자가 100만명 이상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반면 일본은 실패 사례로 꼽힌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전 국민이 중산층'이란 의미의 '1억 총중류(1億 總中流)'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지니계수가 1990년 0.43에서 2002년 0.5로 악화되고 최저생활비 수급자도 1995년 60만가구에서 2000년 중반 이후 100만가구로 급증하는 등 중산층이 대폭 줄었다.
일본은 2006년에 '몇 번이고 재도전이 가능한 사회'를 기치로 내걸고 구직자가 기업에서 일정 기간 직업능력훈련을 거쳐 취업하면 훈련 중 급여 일부를 국가가 보조해주는 'Job Card 제도(직업능력 향상 시스템)'를 시행했다. 그러나 경기 불황으로 기업 활용률이 낮고 구직자 호응도 좋지 않아 중산층을 늘리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평가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임혜린 기자 lyn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88호(12.12.26~12.31 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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