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 부동산에 발목 잡히지 않으려면
[기고] 조성찬 < 토지+자유 연구소 > 토지주택센터장 "대안적 도시재생사업 추진 필요한 시점"
[미디어오늘 조성찬 < 토지+자유 연구소 > 토지주택센터장]
여러 우여곡절 끝에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그런데 당선의 기쁨도 순간. 남은 2년 반이라는 짧은 재임기간 동안 신임 박원순 서울시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는 그가 제시한 공약의 무게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러 공약 중에서 필자에게 부각되는 것은 임기 내 7조 원을 감축하는 재정분야 공약과 주택분야 공약이다. 주택분야 공약은 크게 △공공임대주택 8만호 공급(공공시설 및 대학주변의 1~2인 소형주택을 공급하는 민간 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 정책 포함) △재건축 과속개발 방지 및 시기 조정 △뉴타운사업 전면 재검토 △주택바우처 확대 △전세보증금 센터 운영이다.
위에서 제시한 공약들을 구조적으로 살펴보면, 공약들 간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부채를 7조 원이나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뉴타운 사업 전면 재검토, 재건축 사업 과속개발 방지 및 시기 조정을 하면서도 공공임대주택을 무려 8만호나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집권 10년 동안 서울시가 가까스로 4만8000호를 공급했다는 점을 보면 8만호라는 수치는 짧은 시간에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임을 알 수 있다. 공약들 사이에 선순환 관계가 아닌 상호 억제관계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지 관련 전문가 및 부동산 시장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전문가들의 우려는 주로 △공공임대주택 공급확대는 SH공사 부채를 증가시켜 재정적자 확대 초래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위한 시간 부족으로 모아지고 있다. 반면 부동산 시장의 우려는 △뉴타운 사업, 재건축 사업 중단 △사업이 추진되더라도 부채를 고려해 기부채납 형식으로 짓는 방법으로 추진하게 되면 결국 전체 사업성 하락 등으로 모아지고 있다.
이제 신임 박원순 서울시장은 전문가들과 부동산 시장의 우려들을 해결하면서도 상호 억제관계를 보이는 정책들을 어떻게 추진하느냐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되었다.
개발이익을 확대하는 재건축 규제완화 반대 입장에 찬성
▲ 박원순 서울 시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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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후보가 서울을 강남권과 강북권으로 구분하고 재건축 규제 완화를 제시하는 공약을 제시하여 제2의 뉴타운 사업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니냐는 염려가 일어났었다. 강남권에 대해서 재건축 아파트 용적률을 상향조정하겠다고 했으며, 강북권에 대해서 노원, 도봉, 강서, 구로 등 1986-1991년 사이에 준공된 아파트를 대상으로 재건축 연한을 완화하여 조속하게 재건축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번에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은 개발이익을 확대하는 재건축 규제완화를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우려의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다. 예전처럼 사업만 하면 다 성공하는 시대는 이미 막을 내리고 있다. 그나마 용적률 상향 조정이나 초과이익부담금 감면 등 개발이익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재건축 규제 완화를 실시해야만 겨우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하는 정도이다. 개발이익 확대를 통한 재건축 사업은 이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더 이상 써서는 안 된다. 이러한 카드는 개발이익의 적극적인 환수 원칙에도 위배될 뿐만 아니라 서울을 삶의 공간이 아닌 투기장으로 전락시키고 서민들은 전월세 대란에서 헤어 나올 수 없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도 쉽지 않다
뉴타운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재건축 사업도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하면 일단 개발이익의 관점에서는 바람직하지만, 어쨌든 기부채납 등 어부지리로 얻을 수 있었던 공공임대주택도 확보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공공시설 및 대학주변의 1~2인 소형주택을 공급하는 민간 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정책을 포함해 공공임대주택 8만호를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서두에서 이야기한대로 부채 감소라는 제약사항이 자리하고 있어서 이 일 역시 만만치 않아 보인다.
결국, 뉴타운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재건축 사업도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발표한 상황에서,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통해 서민주거문제 해소라는 핵심 주택공약을 짧은 재임 기간 내에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문제의 돌파구는 주어진 제약 상황들을 극복해 낼 수 있는 대안적인 도시재생사업 추진방식에 있다. 대안적인 도시재생사업은 추진방식에서 개발이익 사유화 확대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지방정부의 재정 부담을 심화시키지 않고 시민들이 경제적으로 부담 가능한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 특히 시민들이 경제적으로 부담 가능한 주택이란 중산층에게는 중산층의 구매력에 맞는 주택을, 저소득층에게는 저소득층의 구매력에 맞는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먼저 개발이익 환수체계부터 재정비하자
▲ 박원순 서울 시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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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개발이익의 '일부'를 환수할 수 있는 장치들로 양도소득세, 기반시설 공급비용 조합부담, 각종 개발부담금, 기부채납, 공공임대주택 확보와 소형주택 의무비율 적용 등이 마련돼 있다. 이렇게 다양한 개발이익 환수장치들이 마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뉴타운 사업이나 재건축 사업이 무리하게 추진된 배경에는 그래도 충분한 개발이익이 기대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러한 사업들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자 현 정부는 개발이익 환수체계를 약화시키는 데 적극적이었다.
따라서 서울시는 지방정부 차원에서 먼저 개발이익 환수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주택이 노후하지도 않았는데 단지 개발이익에 기대어 무분별하게 추진되는 사업을 걸러 내고(filtering), 노후하면서도 도시 전체 기능의 관점에서 재개발·재건축이 필요한 사업만 추진되도록 제도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그런데 개발이익 환수체계를 재정비하고, 개발이익을 적극적으로 환수하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현재의 구조에서 사업성은 결여돼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도시재생의 필요성은 강화되는 노후 주거단지나 강남의 재건축 사업지구는 어떤 식으로든 사업을 추진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토지임대-건물 소유 전환 방식'을 제안한다
개발이익 사유화를 방지하면서 건강한 도시를 만들 수 있는 확실한 방안이 바로 공유 토지를 개인에게 임대해 주는 공공토지임대제이다. 이러한 제도를 토지사유제 사회의 주택 영역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이 바로 '토지임대-건물 소유 전환 방식'이다. 이 방식의 핵심 원리는 기존 재산권자가 자기 소유의 토지를 지방정부에 매각해 지방정부가 계획적으로 개발한 후 지방정부로부터 우선적으로 안정적인 토지임대차 계약(토지임대료 납부)을 맺고 건물만 매입하여 소유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토지임대부 주택'과 같은 원리의 재산권 방식이다. 이 방식을 뉴타운 사업과 재건축 사업으로 나누어 살펴보자.
뉴타운 사업의 경우, 수익성이 없지만 갈수록 노후해지는 주택지구를 방치할 경우 불량 주거지로 전락하게 되어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해진다. 정부는 이러한 상황에서 주민의 동의를 얻어 사적 토지재산권 체계를 공적 토지재산권 체계로 전환할 수 기회를 갖게 된다. 가령 전면 철거재개발 방식이 아닌 주민참여형 재개발인 경우 주민이 토지소유권을 지방정부에 매각(동시에 주민은 토지사용권 획득)하면서 받은 토지소유권 매각비로 주택을 신축(개량)하면 주민의 재정 부담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정부 역시도 사업 완료 후 토지사용권 임대로부터 꾸준한 수입을 창출하여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전면 철거재개발 방식의 경우 지방정부가 기반시설을 새롭게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원리는 더 큰 설득력을 얻는다.
이러한 원리는 재건축 사업에도 적용할 수 있다. 즉, 기존 재산권자들이 아파트 지분의 토지소유권을 지방정부에 매각하고 지방정부가 재건축을 실시한다. 완공 후에 기존 재산권자는 우선적으로 지방정부와 토지임대차 계약을 맺어 토지사용권을 획득하고 자기가 받은 토지소유권 매각 대금으로 신축 아파트(건물)를 구입하면 이들은 큰 재정부담 없이 안정적인 토지사용권과 건물소유권을 획득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을 적용할 경우, 지방정부의 입장에서 사업 초기에 기존 재산권자의 토지소유권 매입 자금과 신축 아파트 건축비 부담이 발생하지만 현금흐름을 기술적으로 접근하면 지방정부의 재정부담이 크게 줄어들 수 있어 건강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재건축 사업의 현금흐름이 어떻게 지방정부의 재정부담을 줄일 수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리는 쉽게 기존 아파트 지분의 토지소유권 매각비(A)가 신축건물 매입비(B)보다 더 큼을 예상할 수 있다. 즉 A와 B 사이에 상계하고도 기존 재산권자에게 여전히 돈이 남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존 재산권자는 매달 또는 정기적으로 지방정부에 토지임대료(C)를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남는 돈(A-B)을 토지전세금으로 활용하는 것이 기존 재산권자에게 유리하다. 남는 돈이 토지전세금으로 부족한 경우 반전세 방식처럼 매달 일정 금액을 토지임대료로 납부하면 된다(그림 1 참조).
▲ ⓒ조성찬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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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재건축 사업에 '토지임대-건물소유 전환 방식'을 적용하는 경우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초기 건축비만 마련하면 돼 큰 재정적 부담을 덜 수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개발이익 환수 원칙을 고수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거품이 낀 지가가 차츰 정상 지가로 회복(하락)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지방정부의 토지매입 재정부담은 더욱 줄어들게 된다. 게다가 정기적인 토지임대료 수입을 기대할 수 있어서 적정 시간 내에 사업부채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이후 안정적인 지방정부 재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기존 재산권자는 큰 부담 없이 새로운 아파트를 획득할 수 있으며, 토지전세금 제도를 활용하면 매 달 토지임대료 부담도 크게 줄일 수 있다. 대신 기존 재산권자는 어떤 개발이익도 향유할 수 없게 된다.
'토지임대-건물소유 전환 방식'은 현재 서울 서초구에서 새롭게 실시하고 있는 토지임대부 주택과 동일한 원리이다. 국토해양부가 10월 24일 밝힌 서초보금자리주택지구 내 토지임대부 주택 공급계획에 따르면, 전용면적 59~84㎡형 토지임대부 주택 358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토지임대부 주택은 최장 40년까지 거주할 수 있고 입주자가 원하면 연장도 가능하다. 분양받은 후 5년이 지나면 건물 소유권을 사고팔 수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건물분 분양가와 매 월 토지임대료다. 건물분 분양가는 84㎡(분양면적 33평)형 기준으로 2억원 선에서 책정될 것이라고 한다. 이는 분양면적 기준으로 3.3㎡(1평)당 600만 원대로 주변 일반아파트 시세(2300만 원대)는 물론이고 서초지구 내 일반분양 아파트(1000만원대)보다도 30~40%쯤 싸다. 그래서 "반의 반 값 아파트"라는 별칭을 얻었다. 게다가 토지임대료는 월 30만~50만 원 선에서 결정될 것으로 알려져, 요즘 원룸의 월 임대료와 비슷한 수준이다. 물론 보금자리주택지구라는 특성이 토지임대료와 건물 분양가에 반영된 결과이지만 토지임대부 주택의 성공 가능성 및 이와 원리적으로 동일한 '토지임대-건물소유 전환방식'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준다고 하겠다.
한 가지 더 언급할 것은 위에서 제시한 '토지임대부-건물소유' 주택, 즉 토지임대부 주택은 공공임대주택 입주수요를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소득층은 건물 구입부담 및 매월 토지임대료 부담으로 인해 이러한 주택에 입주하기가 쉽지가 않다. 따라서 서울시는 '토지임대부-건물소유' 주택을 공급하면서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임대주택을 계속해서 공급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토지임대부-건물소유' 주택을 공급하면서도 일정 비율 또는 정상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용적률 증가분의 일정 비율을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할 필요가 있다. 다만 공공임대주택은 서울시 및 SH공사에 큰 재정부담을 준다는 측면에서, 토지임대부 주택이 흡수하고 남은 공공임대주택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공급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남은 재임기간, 실물 공급 위주 정책 보다는 제도 개선에 주력하길
개발이익 환수체계를 재정비하고 적극적인 환수 원칙을 고수하면서 필자가 새롭게 제안한 '토지임대-건물소유 전환 방식'을 사업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 뉴타운 사업지구와 강남 재건축 사업지구에 적용하면, 기존 재산권자에게 개발이익을 부여하지 않고도, 지방정부와 기존 재산권자의 재정 부담을 심화시키지 않으면서 건강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물론 보다 구체적인 정책 시뮬레이션을 거칠 필요가 있다.
박원순 신임 서울시장은 3년도 안 되는 짧은 재임기간 동안 무리하게 실물 공급 위주의 정책을 펴기 보다는 긴 호흡으로 주택정책 공급체계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방식의 다양화라는 관점에서 전체적인 제도 개선에 주력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현재의 민간주택 임대차 제도를 선진국형 임대차제도로 개선하여 임차인의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앞에서 필자가 강조했듯이 개발이익 환수체계를 재정비하여 개발이익 사유화에 의존하던 기존 재개발 재건축 방식을 중단하되, 도시재생사업 추진의 필요성에 입각하여 새로운 '토지임대-건물소유 전환방식'을 적용하게 되면 기존 재산권자에게는 하나의 출구전략을 제시하는 것이며 도시재생을 추진해야 하는 지방정부에게는 하나의 입구전략을 제시하는 것이어서 양자가 윈윈(win-win)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조성찬 < 토지+자유 연구소 > 토지주택센터장 landjustic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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