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아름다운 노린재여

2010. 8. 27. 18: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21] [레드 기획]

인터넷 카페 회원들이 '집단지성'으로 완성한 한국 최초의 노린재 도감,전문가들도 "엄청난 성과" 놀라워해

노린재를 아시는가. 보았다면 당신은 손에 잡히는 책을 휘둘러 납작하게 눌러버리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이 벌레가 분비하는 불포화알데히드로 냄새가 책에 배었을 것이고 이 노릿함이 당신에게 불쾌감을 더했을 것이다. 그런데 눌러 납작하게 만들고도 그게 노린재라는 것은 몰랐을 수도 있다. '노린재'라는 단어는 들어봤을 테고, 노린재의 형체 역시 주위에서 수없이 떠돌았을 것이나 둘을 맞춰 제대로 기억해주는 이는 많지 않으리라.

아마추어 곤충학자들의 반란

'동정'(벌레를 보고 특징을 비교해 종명을 맞추는 것)하자면 노린재는 이렇다. 앞날개의 반은 딱딱하고 반은 투명하다(혁질부와 막질부). 노린재목의 학명 'Hemiptera'는 이렇게 날개가 두 가지 재질로 이루어진 데서 유래했다. 노린재가 다른 곤충과 나뉘는 주요 변별점은 역삼각형 방패다. 몸통의 가운데 가슴과 배에 걸쳐 선명한 역삼각형 모양이 있다. 노린재끼리도 크기와 모양새가 다르다. 역삼각형 방패가 커져서 날개가 잘 보이지 않으면 광대노린재(과)다. 땅에서만이 아니라 물에서도 사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소금쟁이(하목)가 있다. 이 노린재에 대한 설명은 모두 < 노린재 도감 > (필통 펴냄)에 있다.

< 노린재 도감 > 은 한국 최초로 '노린재'만을 도감으로 묶었다. 곤충도감 중 곤충(강)의 아래 분류 단계인 목 단위로 나온 것은 나비나 딱정벌레, 거미, 잠자리 등이 고작이었다. 책에는 노린재 중에서도 수서종을 제외하고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22과 242종을 담았다. 곤충학자 정부희씨는 "작품이 나왔다"며 반가워했다. "노린재는 산이나 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는 곤충도감에 몇 종 왜소하게 들어가 있는 게 다였다. 사진을 찍거나 채집을 한 뒤 일본 도감을 갖다놓고 종을 찾아봐야 했다. 새로 나온 책은 생태 공부하는 사람들의 갈증을 푸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 노린재 도감 > 을 만든 과정이 특이하다. '아마추어의 반란'이다. 책은 인터넷 카페 '곤충나라 식물나라'(cafe.naver.com/lovessym)에 모인 성과의 집적물이다. 카페는 2005년 12월5일 생겼다. 8월20일 현재 카페 회원은 6775명이다. 카페지기인 주부 안수정(36·아이디 크리스탈)씨가 책의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직장인 김원근(아이디 멀가)·김상수(46·아이디 다초리)씨가 주요 사진을 제공했다. 종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사진을 찾아 카페 회원 6천여 명의 지원도 보태졌다.

< 노린재 도감 > 의 글을 쓴 안수정씨는 대학 때 전공이 곤충이다. "원래 식물을 공부하려 했는데 성격이 외향적이다 보니 밖으로 많이 돌아다녔고 곤충이 잘 맞더라"고 한다. 석사과정을 마친 뒤 10년은 아이를 기르며 집에서 보냈다. 아기에게서 벌레를 떼놓느라 더 신경을 쓰며 살았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간 아이의 교실에 가보니 옛날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재미로 곤충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끌려들고 말았다. 동정하며 곤충 분류에 매달리고, 곤충의 아름다운 색깔에 매료되면서 곤충은 이제 그의 인생을 바꾸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공부하면 '박사'도 할 수 있겠다 싶었던 것. "왜 이렇게 공부를 안 했나 싶더라고요." 그는 올 초 응용생물학 박사과정에 등록했다.

김상수씨는 건설감리회사에 다닌다. 주중에는 형설지공이요 주말에는 야외 학습이다. 특별한 일이 없거나 비만 안 오면 주말 이틀을 곤충 사진을 찍으러 야외로 나간다. 거주하는 전남 여수와 인근 순천, 광양, 구례, 경남 하동을 자주 나간다. 1년에 40주는 나가는 것 같다. 한 번 나가면 그가 처음 보는 종을 5번 정도, 멀리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10번 정도 찍게 된다. 아직까지는 멀리 나가 새로운 것을 찾지 않아도 될 만큼, 주변에서도 못 찍은 게 많다.

김상수씨의 원래 '전공'은 야생화였다. 그런데 야생화 사진에 걸려든 곤충이 마음을 확 끌었다. 이 벌레는 뭐지. 나비와 나방도 구분 못하는 데서 공부를 시작했다. 곤충은 그의 탐험 의식도 자극했다. 식물은 나무를 포함해 5천 종, 곤충은 밝혀진 것만 1만5천, 추산 3만 종이다. 그런데 도감은 식물보다 못했다. 기껏해야 1천 종을 확인할까 말까였다. 그는 미기록종(학명은 있으나 국내에 보고된 사례가 없어 우리나라 이름이 없는 경우)을 10종 정도 찍었다. 그가 많이 찍는 비결은 천천히 걷기다. 산에 들어가도 오를 생각은 하지 않고 풀잎 아래, 나뭇잎 아래, 돌 틈을 살핀다.

'디지털'은 매혹을 가능하게 한 힘이었다. 디지털카메라는 안수정씨의 눈을 개안시키는 계기가 됐다. < 노린재 도감 > 의 머리말에는 이런 말이 있다.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던 곤충의 겹눈 색깔이 보이기 시작했고, 다리에 난 털이며 주둥이의 침 모양, 심지어는 짝짓기할 때 생식기까지 너무 정확하게 보였습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해 열심히 관찰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노린재의 사생활을 너무 침해한 것은 아닌가 싶어 조금 미안하기도 합니다."

노린재의 매력은 깜찍하게 모양 달리하는 '변태'

왜 노린재였을까? 노린재는 움직임이 별로 없어 곤충 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관찰하기에 좋다. 사진도 찍기 좋다. 그래서 카페에 사진이 많이 모일 수 있었다. '이 정도 모였으면 책으로도 묶겠다'라는 카페 여론이 빗발쳤다. 노린재의 매력도 한몫했다. 안수정씨가 보기에 색깔이 예뻤다. 그리고 다양함에 놀랐다. "장님노린재는 5mm 이하가 많은데 그런 애들까지 노린재라고 하니 놀랍죠. 그런데 이런 장님노린재가 기존 도감에는 하나도 없더라고요." 김상수씨는 노린재의 매력을 '변태'에서 찾는다. 불완전변태를 하지만 성충과 약충(알에서 깨어난 상태, 여러 번 허물 벗기를 해 어른 벌레가 된다)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는 최근 일본 학자가 다른 모양 세 가지가 한 종의 다른 모습임을 DNA 검사로 밝혀냈다. 똑 개미같이 생긴 것이 이 노린재의 약충이었다. 깜찍하게 의태한 것이다.

안수정씨는 < 노린재 도감 > 을 쓸 때 세 개만 알면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작은방패판, 앞가슴등판, 날개(혁질부-막질부)다. 하지만 그 내용은 일반 학계의 성과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책에는 '꽃노린재 일종'이라고 적힌 두 종의 노린재가 있다. 모두 미기록종이다. 책에서 사용한 명명은 1994년 발간된 < 한국곤충명감집 > 을 따랐지만, 그사이 새로 발견되고 분류 체계가 바뀐 것도 보듬어 실었다. 장님노린재는 속명이 바뀐 내용을 기재했다. 그것이 최신 경향이어서다. 닮은초록장님노린재는 2008년, 고목노린재는 2007년 국내 연구자가 새로 지은 이름을 반영했다. 잘못 부르는 학명을 바로잡기도 했다. 밝은다리장님노린재라고 우리나라 기록에 남겨진 것은 종명이 틀려 바로잡았다.

책의 성과는 카페의 성과다. 카페의 집단지성이 머리를 맞대고 종의 이름을 찾아낸다. 그러다 '미기록종'이 우리나라에서 발견됐음을 안다. 기존 도감을 예로 들면서 싸운다. 그러다 아예 도감의 잘못을 바로잡는다. 전문가들도 이들의 열정에 함께한다. 북쪽비단노린재가 비단노린재와 너무 비슷해서 카페가 혼란에 빠졌을 때다. 전문가가 DNA 검사를 해보니 결과가 똑같아 결국 같은 종이라는 논문을 제출해놓았노라고 알려왔다. 이렇게 학계에서 '진행 중'인 사실이 카페의 상식이 된다.

< 노린재 도감 > 을 감수하고 카페에서 노린재 동정에 나서기도 하는 서울대 곤충학 전공 박사과정 정성훈씨는 < 노린재 도감 > 의 가치를 "엄청나다"고 표현했다. 곤충의 동정은 주로 표본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표본은 세월을 먹어 원래 색깔을 확인하기 어렵다. 사진은 자연에 있는 그대로를 담고 있어서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정성훈씨는 "좋은 사진을 직접 얻기는 어려운데 워낙 열심히 하는 분들이 많으니까 신경을 덜 써도 된다"고 말한다. 국내에 노린재 전문가는 4명이지만 노린재를 찍는 사람은 지역을 달리하며 수천 명이다.

혼자라면 100년 해도 모자랄 일

안수정씨는 말한다. "한 사람이 하면 100년을 해도 모자랄 일이 전국 각지의 회원들이 방방곡곡 동네 곤충들을 올려주니 이른 시일 내에 많은 곤충이 모이고 있거든요. 이제 후세에는 이 카페에 있는 사진 자료들이 기록으로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곤충나라 식물나라 카페의 자료에 따르면' 뭐 이렇게요."

카페는 이제 목 이하로도 내려가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 파리의 일종인 꽃등에(과), 딱정벌레목의 쌀벌레인 바구미(과)도 슬슬 준비 중이다. 곤충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겨울에 정리를 한단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열심히 관찰하러 다녀야 해서다. < 노린재 도감 > 도 지난겨울 작업을 해서 올 6월 책으로 나왔다. 내년에는 봄에 풀려나온 벌레와 함께 좀더 많은 벌레 책을 만날 수 있으리라.

이러이러하니 어찌 이제 노린재를 책으로 찍어버릴 수 있으랴.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 한겨레 > [ 한겨레21 구독| 한겨레신문 구독]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