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내부 분열..도대체 무슨 일이?
한나라당의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의원들이 잇따라 '친박'을 떠나고 있다. 이른바 '탈박(脫朴:친박에서 벗어남)'을 선언한 것이다. 한때 친박계 좌장으로 불렀던 김무성 원내대표에 이어 '박근혜 책사'로 알려진 진영 의원이 최근 친박계 이탈을 공식화했다.
두 사람은 과거 박 전 대표의 '오른팔'과 '왼팔'이었다. 정치권이 친박계 내부 변화에 '안테나'를 바짝 세우는 형국이다. 지금 친박계 내부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 좌장·책사 잇따라 떠나 = 진 의원은 17대 국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진 의원은 '워낙 신중해서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을 만큼 신중한 처신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나도 이제 '친박'이란 울타리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앞으로 의원들의 성향을 분류할 때 나를 '친박'이 아닌 '중립'으로 불러달라"고 말했다.
파장은 컸다. 진 의원을 '박근혜 브레인'으로 알고 있던 여권 내부에선 갑작스러운 상황 파악에 분주해졌다. 정가에선 진 의원이 박 전 대표와 결별하기보다는 그동안 냉각됐던 친박계 인사들과의 관계를 명확히 정리한 것으로 해석했다.
진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통하면서도 지난 2007년 대선 경선 때 캠프에 합류하지 않은 전력 때문에 친박계 일부에서 '무늬만 친박'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올 들어 몇 가지 정치적 현안을 놓고도 비난의 대상이 됐다. 진 의원은 지난 6월 국회 본회의 때 소신에 따라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친박계에선 '배신자'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어 7·28 재·보선에서 부인과 함께 이재오 후보 선거운동을 적극 지원하면서 '진 의원이 박 전 대표와 결별 수순을 밟고 있다'는 관측이 나돌았다.
진 의원은 사실 이재오 후보와 오랜 기간 인연을 맺어 왔고 어린 시절 고향이 서울 은평일 뿐만 아니라 부인도 은평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사석에선 두 사람이 서로를 워낙 좋아하는 사이다.
하지만 친박계 일부 의원들은 이를 못마땅해 했다. 진 의원은 "그동안 온갖 비난을 감수했는데 이제 박 전 대표의 주변 인사들이 '친박'이란 성(城)을 쌓아 놓고 '세종시 수정안 찬성해서 넌 안 돼', '이재오 도와서 넌 친박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에 나도 이제 지쳤다"면서 "하도 나보고 아니라고 하니, 나도 안 하겠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박 전 대표의 주변 인사들 때문에 '친박' 그룹에서 나왔다는 설명이다.
앞서 세종시 논란 과정에서 박 전 대표와 관계가 틀어진 김 원내대표도 최근 인터뷰에서 "박 전 대표의 결점을 고쳐야 한다고 충정으로 말했는데, 박 전 대표를 군주처럼 모시려는 못난 사람들은 '주군한테 건방지게…'라는 식의 반응"이라며 "친박에서 쫓겨난 지 오래됐다. 정치판에 박근혜만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친박계와의 결별을 선언한 바 있다.
이들 두 사람의 '탈박'에 대해 친박계 인사들은 일단 말을 아끼고 있다. 한 친박 의원은 "원래 자기 정치를 하려던 사람들 아니냐"면서도 "철옹성 같던 친박에 금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 이탈 도미노 땐 정계 지각변동 = 당 일각에선 친박 내 '구주류'와 '신주류' 간 뿌리 깊은 갈등이 표출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 원내대표는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선대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고, 진 의원은 캠프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외곽에서 활동하면서 박 전 대표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하지만 경선 패배 후 박 전 대표가 '조용한 행보'에 돌입하면서 비서실장 역할을 맡은 유정복 의원과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이 최측근으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김 원내대표와 진 의원 등 '구주류'가 상당한 소외감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김 원내대표와 가까운 한 친박 의원은 "김 원내대표는 뭔가 역할을 하면서 정권 재창출에 기여하고 싶어 했지만 박 전 대표가 중간 보스 같은 구도를 허용하지 않았다"면서 "소통이 안 되니 자연히 멀어지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박 전 대표의 측근 인사들은 "당장 달라질 것은 없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일부 친박 인사들이 공공연히 친박계의 폐쇄성을 지적하고 있어 '이탈 도미노'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럴 경우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정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대형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이준혁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rainbo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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