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직관의 달인 ? 위대한 도둑!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칸트는 명저 '순수이성비판'에서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라고 말했다. 맹목(盲目)은 눈이 멀어서 보지 못하는 눈을 뜻한다. 잘못된 직관의 위험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그러나 직관 없는 의사결정의 효과도 의심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칸트도 "직관 없는 사상은 공허하다"고 말했다. 결국 관건은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 직관을 평가해 따를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윌리엄 더건 컬럼비아대 교수의 말마따나 직관이 맞는지 평가하는 100% 확실한 방법은 없다. 그러나 상당수 전문가들은 잘못된 직관을 걸러내는 몇 가지 테스트를 제안한다.
◇ 실패 이유 미리 찾기 테스트(Premortem test)
= 직관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를 실행하기 전에 실패할 이유를 미리 찾아보는 것이다. 직관을 떠올린 최고경영자(CEO) 혼자서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아이디어가 실패할 이유를 미리 탐색한다. 일부러 반대 입장을 취하는 사람(devil's advoacate)이 돼 보자는 얘기다.
예를 들어 CEO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A라는 아이디어가 있어요. 그런데 실패했다고 가정해 보죠. 이 아이디어가 왜 실패했는지 생각하고 노트에 메모해 봅시다."
이 과정을 통해 CEO는 직관으로 얻은 아이디어의 문제점에 대해 창의적이고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직원들이 CEO에게 반대 의견을 제시하기 힘들어하는 기업문화에서 특히 효과적이다. '실패 이유 미리 찾기'는 전문가들의 직관 활용을 선구적으로 연구한 캐리 클라인 박사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기고한 '프로젝트가 죽을 이유를 미리 찾아보기'라는 글에서 제안한 테스트다. 심리학자로 첫 노벨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교수도 다보스포럼에서 최고경영자들에게 적극 권유한 방법이다.
◇ 패턴ㆍ규칙성 테스트
= 미래 주식 가격을 직관으로 맞힐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주식 가격 예측은 직관이 통하지 않는다. 장기 경제 전망도 직관과는 거리가 멀다. 필립 테트락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전문가들의 15년 장기 경제 전망은 훈련되지 않은 신문 구독자들보다 정확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주가 예측은 왜 전혀 직관이 통하지 않는 것일까. 주가와 장기 경제 전망은 패턴과 같은 규칙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심리학자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경영자가 직면한 상황이 과거의 패턴과 전혀 다른 패턴을 보인다면 경영자의 직관이 틀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1997년 김우중 옛 대우그룹 회장의 쌍용자동차 인수 결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우그룹은 유동성 위기에서도 오히려 빚을 내 쌍용차를 인수해 더 큰 위기에 빠졌다. 김 회장이 쌍용차를 인수한 배경에는 1970년대 말 부실기업 처리 패턴이 1997년에도 반복될 것이라는 잘못된 직관이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김 회장은 1970년대 말 부실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금융권에서 거액의 자금을 지원받아 기업의 덩치를 키웠다. 김 회장은 큰 기업은 정부가 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 )의 과거 패턴이 반복될 것으로 믿었다.
◇ 과도한 자신감 검증 테스트
= 나폴레옹은 탁월한 직관으로 숱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더건 교수가 '나폴레옹의 직관'이라는 책을 쓸 정도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에서 대패하고 실각한다. 나폴레옹의 패전은 과도한 자신감이 빚은 잘못된 직관의 결과라는 게 더건 교수의 분석이다. 잇단 승리에 도취된 나폴레옹은 '어떤 전쟁이든 이길 수 있다'는 잘못된 자신감에 빠져 러시아 원정을 감행했다.
이처럼 지나친 자신감은 잘못된 직관을 낳는다. 카너먼 교수도 경영자의 잘못된 의사결정의 핵심 원인으로 '경영자의 과도한 자신감'을 꼽는다.
CEO의 과도한 자신감이 인수ㆍ합병 등 투자 결정을 왜곡한다는 연구 보고는 매우 많다. 율리케 말멘디에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에 따르면 과도한 자신감을 지닌 CEO가 인수ㆍ합병에 나설 확률은 그렇지 않은 CEO보다 무려 65%나 높다. 또 자신감이 과도한 CEO의 인수ㆍ합병 시도는 그렇지 않은 CEO보다 평균 500만달러씩 주주에게 손해를 끼친 것으로 조사됐다.
애모스 트보츠키 전 스탠퍼드대 교수 등에 따르면 판단의 정확성과 자신감은 상관관계가 높지도 않다. 결국 CEO가 자신감을 느낀다고 직관이 맞다고 볼 이유는 없는 셈이다.
문제는 자신감이 과도한 직원들이 최고경영자로 승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과도한 자신감과 결단력을 혼동하는 기업문화 때문이라는 게 카너먼 교수의 지적이다. 맥킨지 서베이에 따르면 CEOㆍCFO(최고재무책임자)등 C레벨 임원들은 일반 임원보다 자신감이 훨씬 크다. '실수를 인정하고 성과가 나쁜 프로젝트를 제때 중단하느냐'는 질문에 C레벨 임원은 무려 80%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일반 임원은 52%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 이해관계 테스트
= 최근 세종시를 기업도시로 건설하자는 세종시법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한나라당에서 친이계 의원들은 찬성표를, 친박계 의원들은 반대표를 던졌다. 양측은 이해관계에 따라 직관적으로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 입장을 정한 다음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거만을 수집하는 '증거 찾기의 함정'에 빠지는 모습을 보였다. CEO라고 다르지 않다. 직관적 의사결정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영향받지 않았는지 검증해야 한다.
◇ 체크리스트 테스트
= 직관은 다양한 상황에서 나온다. 어떤 상황은 매우 단순하지만, 어떤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 CEO가 직관을 얻는 상황과 중간관리자가 직관을 얻는 상황은 다른다.
따라서 상황에 맞는 체크리스트를 마련해 잘못된 직관을 검증하는 것도 방법이다. 카너먼 교수는 경영저널인 '맥킨지 쿼터리'와 최근 인터뷰에서 상황이 복잡하고 모호할수록 체크리스트를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카너먼 교수는 △정보의 원천이 다양한지 여부 △집단 사고가 가능한지 여부 등 항목별로 체크리스트를 만들기를 권했다. 그러나 체크리스트에 반대하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게리 클라인 박사는 패턴을 인식하기 힘든 복잡한 상황에서는 체크리스트는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선택은 경영자의 몫이다.
[김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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