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보이밴드의 롤모델, 샤이니의 여덟 번째 빛
아이즈 ize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2000년대 초까지 한국의 대중음악 평단은 아이돌을 무시했다. 다시. 그들은 '아티스트라면 자신의 노래는 직접 쓰고 불러야 한다'는 오래된 강박에 사로잡힌 끝에 남이 준 곡을 부르고 그에 맞춰 춤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이유로 아이돌들을 폄훼해 왔다. 이는 영화평론가가 감독의 각본과 연출로만 작품이 완성된다 주장하는 것과 같은 단편적 착각이었다. 배우의 열연이 없는 명화란 있을 수 없음에도 그들은 그것들이 없어도 '아트'가 성립된다고 우격다짐으로 주장했던 것이다. 가창을 비롯한 퍼포먼스와 멤버들의 존재 자체에서 번져 나오는 이미지, 이야기의 매력이 수용자들에게 얼만큼 큰 의미를 갖는지 옛날 평론가들은 관심이 없었거나 몰랐다. 저들이 그럼에도 케이팝 아이돌의 시발점이라 볼 수 있을 서태지와 이현도(듀스)만은 반드시 챙기는 건 그런 싱어송라이터에 대한 가치 잣대의 절대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글의 주인공인 샤이니의 종현이 과거 샤이니를 위한 곡을 못 만드는 게 아닌 '안 만든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Odd Eye'를 증거로 제출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도 아이돌 음악을 아래로 보는 평론가들은 더러 있겠지만 더는 케이팝으로 통칭되는 아이돌 음악을 비평의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용감한 사람은 없다. 가요는 음악도 아니라고까지 했다는 사람이 '케이팝의 첨병'으로서 구석구석 활약하는 씁쓸한 현실만 빼면 이제 케이팝은 대중음악 평론가라면 싫어도 알아야 할 현재의 세계,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보이밴드로만 한정할 때 지금은 너나없이 'BTS 세상'이 되어 버렸는데, 사실 고지식했던 평단이 아이돌 음악을 진지하게 대하게 한 팀은 샤이니였다. 샤이니는 아이돌 음악은 가볍다고 으레 치부해 버리던 고상한 양반들의 콧대를 알앤비 데뷔 넘버 '누난 너무 예뻐'부터 단박에 꺾어버렸다. 무엇보다 저들이 높게 치는 라이브 실력까지 샤이니는 제대로 갖췄던 터라 그걸로 트집을 잡으려 했던 집단은 시작부터 머쓱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샤이니 음악의 전제가 "실제 연주가 가능한 아이돌 음악"이었다는 것도 그들을 공격하려던 일부 평론가들의 전의를 잃게 했을 요소였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15년 전 이수만이 "혁신적으로 업그레이드 한 최신 버전"으로 또 다른 보이밴드를 선보여야 했던 시기에 등장한 샤이니는 아예 케이팝 전체를 "혁신적으로 업그레이드" 시켰다. 그리고 정규 1집의 긴 도입부 'The SHINee World (Doo-Bop)'은 그 시작이었다. "받아들여봐, 이젠 샤이니의 세계." 팀 이름 샤이니(SHINee)란 '빛을 받는 사람'이란 뜻이다.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룹으로 성장해 달라는 이수만의 바람을 담뿍 담은 이름이었다. 만 열여덟 살로 맏형인 온유가 리더를 맡았고 만 열네 살인 태민이 막내였다. 슈퍼주니어가 나오고 3년 만, 소녀시대가 데뷔하고 1년 만에 선보인 SM산 보이밴드는 그렇게 케이팝 시장을 지배하고 대변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
샤이니는 데뷔 때 '중고생 컨템퍼러리 밴드'로 소개됐다. SM은 아이돌 세계에선 다소 낯설었던 그 용어를 "음악, 춤, 패션 모든 부분에서 현시대에 맞는 트렌드를 제시하고 이끌어 나가는 팀을 지칭"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정의는 샤이니의 미래에 대한 예견이기도 했다. 그것은 각각 마틴의 'Show The World'와 코빈 블루의 'Deal With It'을 리메이크 한 '산소 같은 너(Love Like Oxygen)', '줄리엣'에서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링딩동', '셜록', 'Dream Girl' 같은 포탄으로 진화해 케이팝 신의 음악 수준을 발전적으로 초토화시키며 본격화 됐다. 10여 년 전 한 인터뷰에서 방시혁이 "샤이니 같은 팀과 꼭 한 번 일해보고 싶다"고 말한 건 많은 걸 시사한다. 싫고 좋고를 떠나 SM과 샤이니는 케이팝의 핸들을 그 들어서기 힘들다는 예술성과 상업성의 길로 꺾은 최초의 길라잡이였다. 스트레이키즈보다 10년은 앞서 타 장르들을 팝에 버무린 하이브리드 성향을 선보인 샤이니라는 존재는 평단도 대중도 함께 사랑한 최초의 국내산 보이밴드였다.
하지만 샤이니는 늘 최고였음에도 모두의 최고가 될 순 없었다. 데뷔 때 10대, 20대 여성 팬들이 대다수(지금은 20~30대가 됐을 여성 팬들)였던 그들의 인기와 영향력이 '안방'까진 이르지 못했다는 말이다. 무슨 얘기냐면 빌보드 앨범, 싱글 차트 1위를 밥 먹듯 하는 BTS가 지상파 뉴스와 각종 시사 매체를 통해 다뤄지며 세대 불문 가족 모두의 대화에 오르내릴 수 있는 존재가 된 반면 샤이니는 그렇진 못했다는 얘기다. 이는 언젠가부터 케이팝의 마케팅 포인트가 '국위선양'이 되면서 벌어진 상황이었다. 데뷔와 동시에 각종 신인상을 휩쓸었음에도 당시 '국가대표'급으로 떠오르던 원더걸스와 빅뱅의 아성에 맞서지 못했을 때부터 경험한 이 난감한 분위기는 샤이니에게는 조금 억울한 일이었을 수 있다. 실제 비틀스와 핑크 플로이드 같은 세계적인 거물 아티스트들이 거쳐간 애비로드 스튜디오(Abbey Road Studios)에 아시아 최초로 입성하는 등 케이팝의 글로벌화를 위한 멍석을 차근차근 깔아온 자신들이 시쳇말로 '너무 시대를 앞서 나간' 탓에 빌보드 차트 정상을 내리 차지한 후배 보이밴드에게 국민적 인지도를 양보해야 했던 건 쓰라린 아이러니로 보였다. 운도 실력이라는 말은 실력으로 운을 개척해 온 샤이니에겐 너무 가혹한 말이었다.
그럼에도 샤이니는 기죽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갈 길을 정했고 알았으며 또 계속 걸었다. 2017년의 비극으로 큰 위기를 맞았던 때에도 그들은 세 장의 미니앨범을 더한 6집을 보란 듯이 내놓았다. 2년 여 뒤엔 'Heart Attack'과 'CØDE' 등이 실린 7집 'Don't Call Me'로 샤이니는 팀의 롱런을 선언했다. 그리고 다시 2년 여가 흘러 8집이 나왔다. 여덟 번째 앨범 'Hard'는 샤이니의 빛이 꺼지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15년 차 보이밴드가 트렌드로 트렌드를 덮어버리는 이 드문 광경은 샤이니 이후 아이돌 그룹들이 음악을 놓지 않았을 때 어디에 이를 수 있는지, 또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등대처럼도 보인다. 레트로 비트, 트렌디 텍스처가 힙합의 그늘 아래 하나 되는 'HARD'와 이들의 강점인 '10X'의 그루비 펑키 스타일은 그 등대의 쨍쨍한 라이트다. 그룹 보컬의 아름다운 화음과 개인 보컬의 안정된 발성을 바탕으로 음악 장르 간 이상적인 합의를 이끌어내 온 이들에 걸맞게 앨범은 그런 식으로 서두르지 않고 범작 이상의 영역으로 조금씩 발걸음을 옮긴다. 'Identity'에서 'Sweet Misery'와 '불면증'을 지나며 더 견고해지는 그 여정은 음악으로도 팀으로도 레전드가 되고 싶은 멤버들의 예술가로서 욕망이 절대 헛된 것이 아니라는 걸 주장하는 듯 들린다.
아이돌 그룹의 생명은 길어야 7년이라는 업계 기준을 샤이니는 두 배로 연장시키며 깨버렸다. 콘텐츠(음악)와 플랫폼에 대한 꾸준한 고민으로 트렌드에서도 마케팅에서도 밀리지 않으면서 이들은 15년 동안 케이팝을 대표하는 보이밴드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마이클 잭슨과 디앤절로, 넵튠스를 좋아했던 고 종현의 "너무 큰 부재"는 분명 그룹의 큰 손실로 남아 있지만, 또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으로 활동 중단에 들어간 온유 없이 세 명만 콘서트와 8집 활동을 해나가야 하는 현실이지만 8집을 다 듣고 나면 그 모든 걱정이 기우가 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란 예감이 든다. "초심을 잃지 말자는 거다. 샤이니는 열심히 하지 않는 법을 모른다." 이제 팬들은 민호의 다짐을 믿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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