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 칼럼] 공정한 불평등 vs 가치 너머의 가치관
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1981년 시작한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에 따르면, 한국인 대다수는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고 더는 믿지 않는다. 1990년(2차 조사)에선 응답자의 73%가 노력을 통한 성공을 믿었지만, 2010년(6차 조사)엔 54%로 떨어졌고 2018년(7차 조사)엔 30%로 줄었다. 반면, “운이나 연줄이 있어야 성공한다”고 느낀 이는 1990년 14%에서 2010년 25%, 2018년 37%로 늘었다. 특히 1990년 8.4%였던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느낀 청년(1020세대)은 2018년 20.8%로 늘었다. 무려 2.5배다. 갈수록 ‘노~오력의 배신’이다!
그만큼 자기 노력에 대한 차별적 보상을 원한다. 이는 소득불평등에 대한 지지, 즉 미시적 차별의식이기도 하다. 예컨대, “소득이 더 평등해져야” 한다는 이는 1990년 45%에서 2010년 24%로, 2018년엔 12%로 줄었다. 반면 “노력에 따른 보상 차이가 더 벌어져야 한다”는 이는 1990년 39%에서 2010년 59%, 2018년 65%로 급등했다. 일본 28%, 미국 30%, 중국 39%, 독일 44%, 홍콩 51%보다 높다.
같은 설문에 대한 세대별 차이도 크다. 2010년 6차 조사 때 평등주의:차별주의 비율은 1020세대 11%:40%, 3050세대는 16%:33%, 60살 이상 20%:42%였다. 평등보다 차별주의가 대세인데, 젊을수록 더 차별에 찬성했다. 당시 1020세대는 지금의 2030세대다.
요컨대, 한국에선 갈수록 ‘소득차별에 찬성’하는 이가 는다. 중국, 일본, 미국, 독일과 견줘도 평등주의 성향은 최저, 차별주의 성향이 최고다. 평소에 우리는 한가족 또는 운명공동체를 강조하지만, 막상 경제적 이익과 관련해서는 평등보다 차별을 선호한다. 세대 문제라기보다 ‘세태’가 변했다.
대체 어떻게 해서 우리 가치관이 이렇게 변했나? 이는 경쟁의 내면화와 경제가치 맹신 탓이다. 여기엔 사회적 배경이 있다.
첫째, 1960년대 경제개발 이전만 해도 자본주의 경제가치(돈벌이)보다 사회가치(인간관계)나 생명가치(만물 존중)를 중시했다. 그러나 산업화 과정에서 가치관이 뒤틀린다. 돈벌이를 위한 새마을운동과 수출 공업화는 인정스러운 농어촌 공동체를 해체했고, 각종 개발 사업은 자연생태계를 파괴했다. ‘가치(돈) 너머의 가치들’이 버림받은 것!
둘째, 자본주의 산업화 과정은 1960~80년대 성장기와 1987~1996년 최고조기를 지나 1997년 ‘아이엠에프(IMF·국제통화기금) 체제’를 경과하면서 포화기에 들어섰다. 성장기나 팽창기 때는 전체 부의 크기가 증대하고, 또 노동자의 조직된 힘이 세질수록 부의 분배도 비교적 순조로웠다. 당시 평등주의 의식이 확대된 배경이다. 그러나 경제 전반이 포화기에 들고 자본의 분할지배 전략과 경쟁의 세계화 탓에 분배의 토대와 결과가 악화했다. 이제 약 20%에 이르는 대기업,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은 상대적 기득권층이 됐지만, 80%의 중소기업, 비정규직, 여성, 노인, 청년, 장애인, 이주민의 삶은 열악하다. 이 상황은 다수에게 ‘노~오력의 배신’을 안겼고 평등보다 차별을 내면화하게 했다.
셋째, 1997년 이후 ‘아이엠에프 트라우마’는 이 경향을 가속했다. ‘아이엠에프 체제’란 사실상 국가부도 상황에서 아이엠에프 등 국제금융기관이 긴급 구제금융을 하는 대신 ‘글로벌 스탠더드’란 이름 아래 한국의 사회경제 구조를 세계자본에 유리하게 재편한 것! 100년 전 일제 식민지 체제가 조선을 제국주의 아래 복속시킨 것이라면, 25년 전 아이엠에프 체제란 세계자본주의가 한국을 포섭한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강압 통치 위주였는데 후자는 합의 통치인 점! 전자는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색채를 띠게 했지만 아이엠에프식 합의 통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개방화, 탈규제, 민영화, 유연화)을 통해 온 사회에 ‘아이엠에프 트라우마’를 남겼다. 즉, 사회 전반이 전례 없는 대량해고와 고용불안에 충격받았다.
해고는 노동자에게 죽음이고 공포다. 이제 실업은 물론, 비정규, 알바, 취업대란이 일상이 됐다. 민주노총이 저항하고 진보정당이 국회에 입성해도 대세는 역부족! “해고는 살인이다” “차라리 우리를 죽여라!” “잘리기 전에 실컷 벌자”…. 모두 ‘아이엠에프 트라우마’의 결과다. 이게 한 세대 이상 지속되자 이제 다수는 마침내 자본주의 공정성 논리, 즉 ‘공정한 차별’을 지지한다.
그러나 숨 쉴 구멍은 있다! 희망의 여지는 모순의 틈새에서 생긴다. 위 조사에서 “경쟁은 열심히 일하게 하고 새 아이디어를 촉진한다”고 본 이는 1990년엔 81%에서 2010년 64%, 2018년 48%로 줄었다. 반면, “경쟁은 사람들에게 최악을 부른다”는 이는 1990년 8.5%에서 2010년 12%로, 2018년 17%로 늘었다. 여전히 절반 정도가 ‘경쟁의 내면화’ 상태이나, 갈수록 경쟁에 지치고 실망한 이들이 는다. 또 2018년 조사 때 “환경 침해가 좀 있어도 경제성장이나 고용창출을 우선”하는 이가 43%였지만, “성장이나 일자리에 일부 손실이 와도 환경보호를 우선”하는 이는 57%나 됐다! 노~오력의 배신이나 이상기후 등 삶의 위기 앞에 가치관도 꿈틀댄다!
이런 지표 변화는 미시적 차별의식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근면성실·경쟁신화와 심리적 거리두기를 하거나 또 성장·고용보다 환경·생태를 우선시하는 등, 거시적 사회의식이 고양됨을 뜻한다. 희망의 실마리다. 이는 자본의 위기가 커질수록, 분배의 물적 토대가 약할수록, 또 지구 생태위기가 심해질수록 증폭할 가능성이 크다. 만일 이런 점에 착안해 여러 사회운동이 연대해 사람과 사람(사회가치), 사람과 자연(생명가치)의 공생을 보장하는 새 사회경제 시스템에 동의한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
그러나 성급한 낙관은 금물! 변화를 만들 주체가 이미 경제가치를 깊이 내면화하고 있다면 아무리 투표를 잘해도 결과는 뻔하다. 노조나 노동자 시위를 “소음”이라 한 일부 청년만 문제가 아니다. 솔직히 “빨갱이”나 “암세포” 논리로 노동운동을 적대시한 어른들은 더 많다. 모두, 자본과 권력의 시선일 뿐! 따라서 근본적인 변화의 첫걸음은 남녀노소 불문, 우리가 맹신해온 경제가치를 철저히 성찰하는 것, 또 여럿이 둘러앉아 무엇이 두려운지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다. 자본의 가치에 기초한 ‘공정한 불평등’ 너머에 ‘좋은 삶’이 있다. 경쟁이나 중독으로부터 자유로운, ‘가치 너머의 가치관’이 절실하다. 기껏 ‘성공한 노예’는 결코 우리의 미래가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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