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사건파일
공매도는 개미들에게 언제나 공공의 적이었다. 주가가 떨어져야 돈을 버는 공매도가 언제든 내 주식을 향할 수 있다는 불안은 투자를 망설이게 했다. 막강한 자본력의 기관들이 휘두르는 칼날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왔다는 오랜 분노도 함께였다. 이런 여론을 의식한 금융당국은 불법 공매도를 뿌리 뽑겠다며 징계 철퇴를 휘둘렀다. 그런데 이에 맞선 금융사들의 줄소송을 두고 법원이 엇갈린 판단을 내놓고 있다. 당국과 금융사 사이의 치열한 법정 다툼은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각 판결문에 담긴 천차만별 공매도 사례와 불법의 경계선을 톺아본다. <편집자 주>
불법 공매도 과징금이 부당하다며 퀀트인자산운용이 제기한 불복 소송에서는 금융당국이 승소했다. 시정 조치를 했다는 등의 금융사 주장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았다. 앞서 외국계 금융사들이 제기한 두 건의 불복 소송에서 당국이 패소한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1월 퀀트인자산운용이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증선위 승소 판결을 했다. 퀀트인자산운용의 항소로 다음달 서울고법에서 2심이 진행된다.
퀀트인자산운용은 2021년 8월 A펀드가 보유한 SK아이이테크놀로지 5570주를 매도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담당자가 매도 주문을 입력하는 과정에서 B펀드 계좌에서 매도 주문을 제출했다. 같은 날 담당자는 이를 알아채고 B펀드 계좌에서 동종 주식을 매수하고 A펀드가 보유하던 SK아이이테크놀로지 주식을 매도했다.
이에 대해 증선위는 2023년 5월 퀀트인자산운용이 소유하지 않은 주식을 매도했다며 과징금 3억5090만원을 부과했다. 이후 퀀트인자산운용이 과징금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이 사건은 법정으로 넘어갔다.
재판에서 퀀트인자산운용은 매도 당시 SK아이이테크놀로지 주식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본시장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설령 공매도라고 하더라도 단순 착오에서 비롯된 사건이며, 이를 인지하고 주식을 매수해 오류를 수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B펀드가 SK아이이테크놀로지 주식 5570주를 소유하고 있지 않았던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고, 이번 매도는 퀀트인자산운용이 증권사에 B펀드가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상장증권의 매도를 위탁한 것으로 자본시장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담당자의 과실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재판부는 "(담당자는) 실무를 담당하는 전문가로서 해당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높은 주의 의무가 요구된다"며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 특정 주식의 매도 위탁 주문을 입력하는 일은 기초적인 절차에 해당하는데 그 과정에서 착오를 일으켜 매도한 것이 의무 위반에 대한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판결문에 따르면 증선위는 담당자의 과실로 인한 사정을 고려해 과징금 부과 비율을 하향 조정했다.
'시정 조치를 했는데 증선위가 과징금 감면을 하지 않았다'는 퀀트인자산운용의 주장 역시 인정되지 않았다. 공매도의 시정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자본시장법 제180조는 공매도의 성립 시점에 대해 규정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관련 내용을 고려하면) 공매도의 청약 또는 주문이 제출되는 순간 위반 행위가 발생하고 종료되기 때문에 시정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퀀트인자산운용이 실수를 깨닫고 B펀드 계좌로 동종 주식을 매수한 사실을 시정조치로 볼 수도 없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경우) 무차입공매도로서 증권을 매입해 거래를 결제해야 하기 때문에 당일이 아니더라도 퀀트인자산운용은 B펀드 계좌로 동종 주식을 매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어 "A펀드 계좌로 주식을 매도한 것도 퀀트인자산운용의 당초 계획에 따른 것이지 이번 매도와 반드시 관계가 있는 행위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이번 사안과 달리 외국계금융사 케플러 슈브뢰와 ESK자산운용이 증선위를 상대로 제기한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는 금융당국이 패소했다. 이들의 과징금 산정 방식에는 잘못이 있다며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박선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