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노벨상] AI가 휩쓴 노벨 물리학상·화학상 | 딥러닝 이끈 ‘AI 대부’ ‘알파고 아버지’… 응용 과학 이례적 수상
“오랫동안 과학의 변방에서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자금도 지원받지 못했던 인공지능(AI)이 마침내 햇볕을 받을 때가 왔다.”
2024년 노벨상에서 AI 연구자들이 수상자로 발표되자 AFP통신이 내놓은 평가다. 1901년 시작된 노벨상은 그간 주로 순수 학문 분야에 수여돼 왔다. 그런데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AI 원리를 세계 최초로 정립한 연구자들에게, 노벨 화학상은 AI를 활용해 단백질 비밀을 풀어낸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AI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노벨 화학상 수상자 명단에는 이세돌을 이긴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를 만든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데미스 허사비스도 이름을 올렸다. 이제는 AI가 인간 삶에 직접적이고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분야로 발전하면서 앞으로도 노벨상 무대의 중심에 AI가 서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AI 대부’에게 돌아간 노벨 물리학상
10월 8일(이하 현지시각)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인공 신경망’을 활용해 AI 원리를 세계 최초로 정립한 존 홉필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를 선정했다. 노벨위원회는 “우리가 AI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인공 신경망을 이용한 머신러닝을 의미하는 경우가 보통”이라면서 “이들은 물리학적 도구를 이용해 오늘날 강력한 머신러닝의 기초가 된 방법론을 개발했다” 고 밝혔다.
두 사람은 1980년대부터 인공 신경망을 연구해 왔다. 홉필드 교수는 고체물리학자 출신이지만, 노년에 생물학 분야에 관심이 생겨 기억의 작동 원리를 탐구했다. 이후 1982년 신경망을 물리적으로 해석한 ‘홉필드 네트워크’란 개념을 제안했다. 인공 신경망의 근간으로 평가받는 개념이다.
신경과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인 힌턴 교수 역시 뇌의 학습 원리를 연구했는데, 홉필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볼츠만 머신’을 만들었다. 볼츠만 머신은 주어진 데이터에서 패턴을 발견하고 이를 확률적으로 계산해 결과를 출력한다. 지금의 생성 AI(Generative AI) 전신이라고 보면 된다. 볼츠만 머신에 대한 연구를 이어간 힌턴 교수는 마침내 2006년 볼츠만 머신을 겹겹이 쌓아 네트워크를 미리 훈련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것이 지금의 ‘딥러닝’이다. 노벨위원회는 “이들의 연구 덕분에 입자물리학, 재료과학, 천체물리학 등 다양한 물리학 주제의 연구가 발전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노벨 화학상도 AI… ‘알파고 아버지’도 수상
10월 9일 발표된 노벨 화학상 수상자도 AI 분야에 돌아갔다. 컴퓨터와 AI를 통해 단백질 설계에 기여한 미국 생화학자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 단백질 분석 AI 모델을 개발한 AI 기업 딥마인드의 CEO 허사비스와 연구원 존 점퍼 박사였다. 노벨위원회는 “베이커 교수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단백질을 구축하는, 거의 불가능한 위업을 이루는 데 성공했고, 허사비스와 점퍼는 단백질의 복잡한 구조를 예측하는 AI 모델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I와 단백질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사실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며 “이번 수상자들이 생명의 기반이자 독창적 화학 도구인 단백질의 비밀을 풀어냈다”고 덧붙였다.
미국 워싱턴대 생화학 교수인 베이커 교수는 생체공학, 화학공학, 컴퓨터공학, 물리학 겸임교수까지 맡고 있는 인물이다. 노벨위원회에 따르면, 베이커 교수는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 컴퓨터를 이용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실제로 그가 탄생시킨 다수의 단백질은 완전히 새로운 기능을 가진 것이었다고 한다. 통상 단백질은 20개의 다른 아미노산으로 구성되며 이는 생명체의 구성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베이커 교수는 2003년 이러한 구성 요소를 이용해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베이커 교수 연구 그룹은 제약, 백신, 나노 소재 등에 사용될 수 있는 창의적인 단백질을 하나씩 만들어냈다.
또 다른 공동 수상자인 허사비스는 영국의 컴퓨터공학자이자 딥마인드 CEO다. 점퍼 박사는 미국 화학자이자 딥마인드 연구원이다. 딥마인드는 허사비스가 2010년 셰인 레그, 무스타파 쉴레이만과 함께 영국에서 설립한 신경과학 기반 AI 기술 회사다. 설립 4년 만인 2014년 구글에 4억달러(약 5400억원)에 인수됐다. 노벨위원회는 두 사람이 2018년 내놓은 ‘알파폴드’라는 AI 모델 덕분에 2억 개에 달하는 단백질 구조를 예측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지난 50년간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것은 굉장히 악명 높은 작업이었는데, 이들의 AI 모델이 돌파구가 됐다고 한다. 실제로 알파폴드를 활용하면 2억 개에 달하는 단백질 구조를 비교적 쉽게 예측할 수 있어, 전 세계 190개국 200만 명이 사용 중이다. 노벨위원회는 “단백질 구조에 있어 알파폴드는 구글의 검색엔진과 같은 역할을 했다”며 “덕분에 과학자들은 항생제 내성을 더 잘 이해하고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Plus Point
“AI 통제해야” vs “모든 질병 AI가 치료”
노벨상 수상자들의 엇갈린 시선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홉필드 교수와 힌턴 교수 모두 AI 대부로 불리지만, 동시에 ‘AI 두머(doo-mer·파멸론자)’로도 통한다. 홉필드 교수는 노벨상 수상 직후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물리학자로서 통제할 수 없고 한계를 파악할 수 없는 AI 기술 발전에 강한 불안감을 느낀다”며 “AI가 세상의 모든 정보와 결합하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그렸던 통제 사회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홉필드 교수는 AI가 상상할 수 없는 높은 수준에 도달하면서 인간이 그 작동 원리를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봤다. AI가 인간의 이해 범위를 벗어나 통제 불능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힌턴 교수 역시 수상 직후 노벨위원회와 전화 인터뷰에서 “AI의 잠재적 위험은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위기와 맞먹는다”며 “수년 안에 AI의 위협을 다룰 방법이 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고 밝혔다. 과거 구글에서 부사장까지 올랐던 힌턴 교수는 2023년 돌연 회사를 떠났는데,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AI의 위험성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AI 분야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구글에서 벗어나야 AI가 인류에게 미칠 나쁜 영향을 자유롭게 경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그는 “내가 (AI를) 연구하지 않았어도 결국 다른 사람이 연구했을 것”이라며 자신이 평생 이룬 성과가 후회스럽다는 말까지 했다.
반면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는 ‘AI 부머(boomer·개발론자)’로 불린다. 그는 노벨상 수상 전인 10월 2일 영국 더 타임스가 주최한 ‘테크 서밋’ 행사에서 “AI는 전 세계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10년 내 모든 질병을 치료할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인간 수준의 인지능력을 갖춘 ‘인공 일반 지능(AGI)’이 10년 내 등장해 모든 질병을 치료하고, 기후 위기와 에너지 문제까지 해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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