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압도적 구대명" vs "李 대안 없나"…엇갈리는 민심
이재명 대세론에 "정권 교체해야"
국힘 반대하지만 李 반감도 팽배
"윤석열 내란을 보고도 호남에서 국민의힘을 찍을 사람이 있을랑가 모르겄네."
지난 23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주송정역에서 만난 시민 이기백(65) 씨는 다가올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약 4개월 간 가슴을 졸였던 광주의 민심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옹호한 국민의힘을 향해 날을 세우며 크게 호통쳤다.
특히 1980년 5월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기꺼이 거리로 나선 열사들의 숭고한 희생이 45년 뒤 다시 서울에서 악몽처럼 재연되면서다. 당시 계엄군의 만행을 직접 목도했던 이 씨는 "대통령을 잘못 뽑은 대가가 얼마나 큰 지 국민들도 깨닫게 됐을 것"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옆에서 이 씨의 성토를 듣고 있던 또다른 시민 정모(52) 씨도 "한밤 중에 난데 없는 튀어나온 계엄이라는 단어 때문에 한숨도 못 잤다"며 "보수당 출신 대통령이 잘하면 앞으로 찍어줄 마음도 없진 않았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완전히 마음을 돌리게 됐다"고 거들었다.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무대이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성지인 광주는 전통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지지 기반, '텃밭'으로 불린다. 그러나 지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광주를 비롯한 호남에서 역대 가장 낮은 지지를 받았던 만큼, 호남의 민심을 얼마나 사로잡느냐가 선거에 적지 않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정권 교체의 열망이 큰 가운데 다수의 광주시민들은 유력한 대선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에게 큰 지지를 보냈다.
박득재(62) 씨는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고, 이재명 후보가 지난 대선을 경험했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의 준비가 철저히 돼 있다고 생각한다"며 "호남에서 그간 민주당을 믿고 지지해준 만큼 앞으로 광주 군 공항 이전 등 지역 현안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직장인 김민주(34·여) 씨는 "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등을 거치면서 그간 어느 정도 능력을 입증했다고 본다"며 "호남 홀대론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지역 균형 발전에도 힘써달라"고 했다.
자영업자 신정민(48·여) 씨는 "윤석열이 탄핵됐음에도 비상계엄으로 무너진 서민 경제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손님이 없으니 가게 문 열러 나오는 것조차 고역처럼 느껴진다"면서 "김동연이든 김경수든 이재명이든 당적이나 여론을 떠나 후보들이 내놓은 민생 정책을 꼼꼼히 살펴서 신중히 투표하겠다"고 다짐했다.
아울러 시민들은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에 대한 반감 정서 속에서도 이재명 후보 이외엔 대안이 될 인물이 마땅치 않다는 데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수의 여론조사가 말해주듯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구대명(90% 지지율 대선후보는 이재명)'이라는 수식어가 이 후보에 따라붙고 있지만, 압도적인 정권 교체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일부 지적도 나오기 때문이다.
시민 유모(51) 씨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대통령이 선출되는 것이 건강한 민주주의의 토대가 될 수 있다"며 "일극 체제가 지속되며 한 곳으로 권력이 몰리면 또다른 병폐가 발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본다"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다만, 젊은층 사이에선 현 정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하면서도 무조건적으로 '이재명 대세론'을 따르지도 않는 분위기였다.
조선대학교에 재학 중인 정모(25) 씨는 "국민의힘은 찍기 싫은데, 그렇다고 민주당도 썩 내키지 않는다.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인물을 보고 싶다"며 "정권 교체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재명 외에 눈길이 가는 인물이 없다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취준생 김모(29) 씨는 "요즘 정치 관련 소식을 접할 때면 내 편이 아니면 전부 적으로 간주해 극단적으로 싸우는 모습만 보게 돼 정치판에 환멸을 느낀다"며 "무조건 반목하기 보단 서로 화합해 국민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는 데 힘써줬으면 좋겠다. 그런 후보를 뽑고 싶고, 각 후보들의 공약을 자세히 들여다보겠다"고 전했다.
이재명 후보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가 모두 해소되지 않은 점도 지지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듯했다.
광주 서구 종합버스터미널에서 전남 여수행 버스를 기다리던 박모(52) 씨는 "이재명 전 대표가 추진력은 있지만, 말이 너무 많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사법 리스크도 있어 불안하다"며 "민주당이 진짜 정권을 바꾸고 싶다면 다른 후보가 선출돼야 여러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석·박준호 기자 pjs@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