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사라진 '대남 오물 풍선'...그런데, 한덕수 왜 이러나
'12.3 윤석열 내란 사태'로 인해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로 시작한 2025년의 대한민국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기획 '넥스트 대한민국'을 통해 조기 대선 상황에서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 남은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해 새 정부 출범을 앞둔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편집자말>
[정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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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6월 수도권 곳곳서 발견된 북한 오물 풍선. 왼쪽부터 서울 잠실대교 인근, 인천 앞바다, 파주 금촌동, 이천 인후리 밭에서 발견된 대남 풍선. 2024.6.9 [합참, 세븐스타호, 독자 제공] |
ⓒ 연합뉴스 |
일단 우리가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에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남북관계는 윤석열 정부 시기엔 아예 다리마저 무너졌다. 이 사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은 핵과 미사일을 고도화하고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해 버렸다. "대한민국 안보의 근간"이라던 한미동맹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로 뿌리부터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의 파고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도 걱정거리이다.
한국의 안보는 이중 구조를 갖고 있다. 조선은 한국 안보를 가장 위협하는 세력으로, 미국은 이런 조선을 상대로 한국의 안보를 지켜주는 수호자로 간주되어왔다. 동시에 우리에게 있어서 최선의 안보는 한미와 조선 사이의 적대적인 관계를 평화적인 관계로 전환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이는 조선을 '공동의 적'으로 삼아온 한미동맹 관성과 상당한 긴장 관계에 있다. 노태우 정부 이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번번이 실패를 반복해 온 핵심적인 요인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이에 따라 '넥스트 대한민국'의 안보는 이러한 이중 구조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상상력과 지혜를 요하고 있다. 핵심은 대북 안보 수요와 미국의 안보 공급을 동시에 낮추는 데에 있다. 한국에선 조선의 위협에 대처하는 안보 수요가 발생하고, 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자체적인 국방력 강화와 더불어 미국으로부터 안보를 공급받는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은 안보 딜레마와 군비경쟁을 격화시키고 한국의 대미 의존도를 심화시킨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선순환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조선을 한미동맹의 '공동의 친구'로 만들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한미의 안보는 튼튼해지고, 한국이 지정학적 도전에 대처할 수 있는 자율성도 커진다.
'자강'을 자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북핵 고도화와 한미동맹의 불확실성이 맞물리면서 '자강'의 논리가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한국은 이미 3년 연속 비핵 군사력에 있어서 세계 5위를 기록할 정도로 군사력이 엄청 강해졌다. 부족한 것은 군사력이 아니라 외교력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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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북자가족모임이 23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납북자기념관앞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예고한 가운데, 평화와연대를 위한 접경지역 주민-종교-시민사회 연석회의와 평화위기파주비상행동 회원들이 대북전단 살포 저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권우성 |
그럼 무엇이 있을까? 힌트는 이미 나오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 남북의 무력 충돌 위험을 높였던 대북 전단 살포와 대남 오물 풍선 살포의 악순환이 12·3 계엄 사태를 거치면서 거의 사라진 것이다. 그 이유는 윤석열 탄핵 사태와 트럼프 행정부 출범이 맞물린 데에서 찾을 수 있다.
12.3 계엄 사태 직후부터 통일부는 대북 단체에 전단 살포 자제를 지속적으로 요청해 왔는데, 이는 이전에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방조했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또 이전까지 대북 전단 살포의 자금줄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일었던 미국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이러한 이유들로 대북 전단 살포가 크게 줄어들었고, 조선도 지난해 11월 말을 끝으로 오물 풍선을 더 이상 날려 보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북 확성기 방송과 대남 괴음 방송은 계속되고 있다. 접경지역 주민이 아무리 피해를 호소해도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땅히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에서 조속히 중단해야겠지만, 이게 이뤄지지 않으면 차기 정부의 첫 번째 대북 조치는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조선도 괴음 방송을 중단하게 될 공산이 크다. 아울러 차기 정부는 '평양 무인기 파동'의 진상을 조사해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고, 남북 무력 충돌 방지와 신뢰 구축에 큰 기여를 했던 9·19 군사 합의의 복원도 선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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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만나고 있다 |
ⓒ 연합뉴스 |
만약 한미동맹이 먼저 크게 다뤄지면 악순환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방위비 분담금, 한국의 국방력 강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한미(일) 연합훈련, 미국의 전략 자산 전개 등이 한미동맹의 핵심 의제가 될 터인데, 이러한 논의가 가속화될수록 조선의 반발도 커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반발이 커질수록 대북 위협 인식도 높아져 한국이 한미동맹 현안을 다루는 데 있어서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점도 자명하다.
이에 반해 북미정상회담을 한미 정부, 특히 정상 간 대화의 핵심 의제로 삼으면, 선순환을 도모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북 안보 수요와 미국의 안보 공급 축소를 통한 튼튼한 안보 구현'에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김정은 위원장과의 친분을 강조하면서 관계를 "재구축"하겠다고 말해온 것에 비춰볼 때, 이는 '가능한 선택'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당장 중요한 것은 8월 한미연합훈련 및 미국의 전략 자산 전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미가 올해 말이나 내년 초를 목표로 북미정상회담을 추진한다면, 이를 위한 최적의 선택은 한미 정상이 이들 조치의 유예를 선언하는 데에 있다. 트럼프도 과거에 한미연합훈련 및 전략 자산 전개가 "돈도 많이 들고 도발적"이라고 말했었고 지금도 김정은과의 재회를 원하고 있는 만큼, 이는 한미가 충분히 합의할 수 있는 영역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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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8월 11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남한 대성동 태극기와 북한 기정동 인공기가 펄럭이고 있다. |
ⓒ 연합뉴스 |
이에 더해 '넥스트 대한민국'이 공론화해 볼 수 있는 새로운 대북 전략으로 '주권과 평화의 교환'을 제안하고 싶다. 이는 한국이 조선의 국가성을 인정하고 조선의 적대성을 완화해 나가자는 뜻이다. 조선이 들고 나온 '적대적 두 국가론'에 '평화적 두 국가론'으로 대응해 '상호 주권 존중과 평화 공존'의 새로운 남북관계를 설계해 보자는 것이다.
물론 단번에 남북관계를 전환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양측의 전단 살포와 확성기 방송의 '쌍중단'은 상호 간 적대성과 긴장을 완화하고 주권을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에 더해 전쟁이 발발하거나 "북한급변사태" 발생 시 조선을 무력으로 점령해 통일을 완수하겠다는 '전시 목표'를 내려놓는 것도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아울러 공식 국호를 사용하고, 헌법의 영토 조항 및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는 문제도 국민적 공감대를 이뤄나가면서 차분히 검토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선택이 우리를 이롭게 하면서 남북관계도 이롭게 할 수 있다고 본다. 조선을 변화시키거나 유사시 무력흡수통일을 달성하겠다며 쏟아부어 온 역량을 우리 내부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에 사용할수록 우리의 역량도 강해지고 남북관계도 안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강해진 한국의 역량과 안정화된 남북관계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율성과 선택지도 높여줄 수 있다.
그 출발점은 '조선은 조선이고, 한국은 한국이다'라는, 어쩌면 당연하면서도 우리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깨달음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평화네트워크 대표이자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 쓴 책으로는 <달라진 김정은, 돌아온 트럼프> <청소년에게 전하는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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