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학생’ 낙인 찍어 군사교육…신군부 ‘중고생 순화교육’ 진실규명
전두환 신군부 시기 불량 학생을 ‘순화’하겠다며 당시 문교부 등이 중고등학생들을 학생수련원에 강제 입소시켜 군사훈련을 받게 한 ‘중고생 순화교육 사건’에 대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피해 확인) 결정을 내렸다. 당시 수련원에 입소한 학생들은 현역 군인에게 폭행, 성폭행 등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진실화해위는 23일 열린 제108차 전체위원회에서 박아무개씨 등 6명의 ‘중고생 순화교육 사건’ 피해자들이 진실규명을 신청한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을 결정하며 “국가가 학생순화교육에 반강제적 또는 동의없이 교육대상자로 삼은 점, 피해자들이 교육과정에서 폭행, 가혹행위를 당한 점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공식 사과하고, 이들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중고생 순화교육 사건은 1981년부터 1988년까지 문교부(현 교육부)와 시도교육위원회(현 시도교육청)의 지시에 따라 중고등학교에서 일부 학생들을 수련원에 강제 입소시켜 많게는 1년에 2번, 열흘씩 군인들에게 군사훈련을 받게 한 사건이다. 1981년 1000여명을 시작으로 교육 인원 기록이 없는 1983년을 제외하면 1988년까지 4700여명 이상 학생들이 순화교육을 받았다.
당시 문교부는 고등학생들의 폭력·불량서클 등이 사회문제로 여겨지자 순화교육을 계획하고 국방부에 특수훈련을 위한 육군 교관 44명의 파견을 요청했다. 이후 전국에서 소위 ‘불량 학생’을 뽑아 경북 경주 화랑교육원, 충남 아산 충무교육원, 서울 종로 서울학생수련원 등 9개 수련원에 입소시켜 군사 훈련을 받게 했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순화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교육의 목적과 내용에 대해 사전에 알지 못한 상태였고, 일부는 부모 동의도 받지 않고 수련원에 보내졌다. 조사 과정에서 한 피해자는 “담임교사가 학교 장학생도 가고 학생회장들이 가는 곳인데 네가 되었으니 고맙게 생각하고 다녀오라고 했다. 가면 활도 쏘고 말도 타고 윷놀이도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당시 학생부 선생님들이 바람도 쐴 겸 잠깐 학교를 대표해서 수련을 받고 오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당시 시도교육위원회는 ‘명단에 들어있지 않은 학생이 추후에 학교에서 사고를 내면 담임교사와 학교장을 문책할 것’이라며 순화교육 대상 명단을 제출하도록 학교에 독촉했다. 그 결과 일부 학교는 제출할 ‘불량학생’이 없어 추첨을 했고, 학생들에게 설문지를 돌려 학생끼리 친구를 고발하게 한 학교도 있었다. 1983년 5월 학생을 순화교육에 보낸 한 교사는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교육청 지시에 따라 무조건 학교에서 학생 1명을 보내야 한다고 들었고, 이것 때문에 서로 자기 반 학생은 못 보낸다며 교무회의를 수차례 했다”며 “당시 연차가 가장 적은 제가 떠밀려 결정에 따랐다. 별로 불량한 것도 아니었지만 의지력이 있어 순화교육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학생을 불러 상의라기보단 일방적 지시를 내렸다”고 진술했다.
순화교육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이어졌다. 유격, 제식훈련, 공수훈련 등 1980년대 삼청교육에서 실시했던 특수훈련이 포함돼 있었다. 당시 중고등학생이던 피해자들은 종일 특수훈련과 얼차려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수시로 군인 교관에게 군홧발로 신체 곳곳을 차이고 “사람 XX도 아니다”, “정신 개조해야 한다”, “인간쓰레기” 등의 폭언을 들었다. 특히 일부 피해자는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중고생 순화교육은 1988년 문교부 국정감사에서 순화교육이 삼청교육대와 같은 군대식 교육으로서 비교육적이라는 질타를 받으며 폐지됐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이어졌다. 순화교육 뒤 피해자들은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피해로 정상적인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이 어려워졌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퇴학을 당했고, 자신을 수련원에 입소시킨 선생님에 대한 불신으로 학교에 갈 수 없었던 피해자도 있었다. 훈련 과정에서 생긴 뇌진탕을 치료하느라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했던 피해자도 있었다. 한 피해자는 “순화교육을 받은 후 누우면 군인들 빨간 모자와 피가 튀는 장면이 계속 떠오르고 아직까지 ‘너희들은 인간이 아니다. 올빼미다’는 소리가 이명처럼 들린다”고 진술했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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