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대법원…‘이재명 선거법 사건’ 대선 전 결론내나
조희대 ‘신속 선고’ 의지 담긴 듯…6월3일 전 결과 도출 가능성
대법원장과 대법관 11명, ‘무죄 확정’ 또는 ‘파기환송’ 다수결 결정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운명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에 달렸다. 대법원이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사건과 관련해 예상을 뛰어 넘는 속도전을 벌이면서 6월3일 대선 전에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법원의 선고 시점과 그 결과에 따라 대선 정국은 또 한번 요동칠 전망이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하는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의 두 번째 속행기일을 24일 진행할 방침이라고 23일 밝혔다.
전날(22일) 이 전 대표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후 당일 오후에 곧바로 첫 합의기일을 연 대법원이 본격 심리 착수 이틀 만에 추가 기일을 열어 후속 합의 검토에 나서는 것이다. 통상 대법원의 합의기일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열리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결정이다.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유력 대선주자의 정치적 운명과 동시에 대선 구도를 뒤흔들 수 있고, 여론의 주목도가 높은 만큼 전원합의체에서 판단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전원합의체 회부 결정 시점과 그에 따른 후속 절차가 전례 없는 보폭으로 진행되면서 예상을 깬 속도전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당초 대법원은 이 전 대표가 검찰 상고이유서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한 지 하루 만인 22일 오전 오경미·권영준·엄상필·박영재 대법관으로 구성된 2부에 배당하고 주심(박영재)을 정했다. 이로부터 불과 2시간 후 조 대법원장이 전원합의부 회부를 결정했고 첫 합의기일까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물리적 시간을 감안할 때 첫 심리에서는 절차에 대한 논의를 중점적으로 하고, 쟁점에 대한 대법관들의 의견 교환 등은 두 번째 심리부터 본격화 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을 조 대법원장의 강력한 신속 선고 의지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2023년 12월 취임 직후부터 재판 지연 문제의 심각성과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사실상 사문화 된 공직선거법 사건의 6·3·3 강행규정(1심 6개월 내, 2·3심 3개월 내 선고)을 원칙대로 적용해야 한다며 신속 선고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대법원 관계자는 "조 대법원장 취임 후 대법원 소부에서 처리된 공직선거법 사건의 평균 처리 기간이 90~91일 정도로 추산된다"며 "이 전 대표 건을 전원합의체에서 다룬다는 차이가 있지만, 다른 사건도 6·3·3 규정을 지켜 신속히 처리해 온 점에 비춰볼 때 이례적으로 빠른 것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표 사건에 6·3·3 규정을 적용하면 대법원 선고기한은 6월26일이 된다. 전원합의체 심리 속도가 이대로 간다면 대선일인 6월3일보다 먼저 결론이 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죄냐 파기환송이냐…시점·결과따라 대선정국 영향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을 재판장으로 한다. 13명의 대법관 가운데 법원행정처장을 맡고 있는 천대엽 대법관을 제외한 12명이 모두 참여한다. 이 전 대표 사건의 경우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는 노태악 대법관이 중립성 시비 차단을 위해 스스로 '회피'를 신청, 인용되면서 조 대법원장을 포함해 총 12명이 심리를 진행한다. 최종 결론은 합의기일을 거쳐 다수결로 정해진다. 이번처럼 전원합의체 참여 대법관이 짝수인 상태에서 대법관들의 의견이 6대5 등으로 갈리면 대법원장은 다수 쪽에 서는 게 관례로 알려졌다.
만일 대선 전 대법원이 선고를 한다면 그 결과에 따라 대선 정국에 미칠 영향은 상당할 전망이다. 대법원이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이 전 대표의 무죄를 확정하면 이 전 대표는 사법리스크를 털고 대선을 치르게 된다. 현직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규정한 '헌법 84조' 해석을 둘러싼 논란도 예상보다 빠른 대법원의 결정으로 잦아들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결정해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면 이 전 대표의 출마 자격을 둘러싼 공방부터 헌법 84조 논란까지 혼란이 불가피 할 전망이다. 대선 전 파기환송 결정이 나더라도 물리적으로 최종 판결은 대선 이후에 날 수밖에 없어 이 전 대표의 피선거권은 박탈되지 않는다. 이 경우 대법원이 이 전 대표의 당선 여부에 따른 형사재판 진행 여부에 대한 법리 해석도 명시적으로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파기자판'은 현실성이 낮다는 게 중론이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열려 있다. 파기자판은 대법원이 2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이를 원심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직접 판결하는 경우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 간 대법원이 처리한 1612건의 공직선거법 사건 가운데 파기자판이 이뤄진 것은 2014년 1건(공소기각)이 유일하다. 이 전 대표처럼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건을 파기자판해 유죄로 뒤집은 경우는 전무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재명 전 대표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는 확실히 보여준 것 같다. 대법원 재판은 원심 판결의 법리에 잘못이 있는지 여부를 따지는 법률심이기 때문에 5월 내 선고도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다"며 "다만 결과가 파기환송일 경우 대법원이 선거에 개입하는 모양새가 돼 엄청난 부담을 짊어져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결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 전 대표는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2021년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 및 성남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의 용도변경 특혜 의혹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공표해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김문기와 골프 친 사진은 조작됐다'와 백현동 개발과 관련해 '국토부 협박이 있었다'고 한 이 대표의 발언을 당선을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김문기 관련 발언은 '행위'가 아닌 '인식'에 관한 발언으로 허위사실 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고, 백현동 발언도 전체적으로 의견 표명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이 전 대표의 발언을 사후적 추론으로 확장해 해석해선 안되고,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 유리하게 해석하라'는 형사법 대원칙을 따라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1·2심 판단이 엇갈린 이 전 대표의 각 발언별 해석과 해당 발언을 허위사실 공표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를 쟁점으로 보고 있다.
이 전 대표 측은 지난 21일 검찰 상고 이유서에 대한 답변서를 냈고, 전날 추가 답변서와 의견서를 제출했다. 답변서에는 '상고심은 법리에 잘못이 있는지를 살피는 법률심인데 검찰에서는 사실오인 주장을 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은 상고심 대상이 아니다'는 주장이 담겼다.
민주당 "정치적 고려에 의한 결정 의심…독립성 훼손 위험"
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이날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의 이례적 속도전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민주당 법사위 의원들은 "처음부터 전원합의체 회부를 염두에 두고 소부 심리를 형식적으로 지나친 것은 그간 목격하지 못한 관행이며 예외적인 패턴"이라며 "국민은 법리적 측면보다는 정치적 고려에 의한 결정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대법원은 국민의 주권 행사가 임박한 시점, 즉 현직 대통령 파면에 의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원칙을 앞세워 또 다른 변침을 시도한 셈"이라며 "유력한 대통령 후보라는 이유만으로 그 피고 사건을 특별히 다르게 취급하는 건 그것이 가져올 정치·사회적 파장을 고려하면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법원 스스로 그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할 위험성이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길 바란다"며 "재판 기간 내 선고라는 절차에 매몰돼 실체적 진실을 외면하는 주객전도 판결이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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