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약초 품은 보물창고 [백약이오름]

이승태 여행작가, 오름학교 교장 2025. 4. 23. 07: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주, 어디까지 아세요]
하늘에서 본 백약이오름. 뒤로 한라산이 보인다.

독립된 화산체인 제주 오름은 대부분 나름의 굼부리를 가지고 있다. 어떤 것은 형태가 동그랗고, 분출한 용암이 화구벽 중 약한 쪽을 터뜨려 말굽 모양을 한 것도 많다. 어떤 오름은 굼부리를 찾을 수 없이 일반적인 산처럼 보이기도 한다. 산방산이 대표적이다. 때로 너무 거대한 굼부리의 한쪽 화구벽만 남아서 그곳이 굼부리였는지 짐작조차 어려운 곳도 있다. 대정의 바굼지오름이 그렇다. 이처럼 다양한 얼굴을 한 오름 중 보는 이를 압도할 만한 거대한 굼부리를 가진 게 몇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조천읍 교래리의 산굼부리와 제주 오름의 랜드마크로 통하는 다랑쉬오름, 그 인근의 아부오름과 백약이오름이다.

백약이오름 탐방로. 초지대가 끝난 곳에서 갈지자로 길이 이어진다.

예쁜 진입로, 능선 조망은 더 압권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의 백약이오름은 최근 제주를 찾는 여행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능선에 올라선 후 조망이 좋은 평평한 화구벽을 따라 거대한 굼부리를 한 바퀴 돌 수 있어 무척 매력적이다. 완만한 경사로 비교적 오르기도 편하다. 들머리에서 화구벽으로 오르는 길에는 완만하고 넓은 초지대를 곧장 가로지르는 통나무계단이 이어져 있다. 여간 멋있는 게 아니다. 웨딩화보 촬영지로도 인기가 좋다. 최근 인스타그램 열풍을 타고 젊은 여행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오르내리며 카메라에 담느라 목 좋은 곳에서는 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할 정도다. 겨울날 눈이 내린 직후엔 이곳에서 눈썰매를 즐기기도 한다.

백약이오름의 두 봉우리. 오른쪽이 휴식년제가 시행 중인 정상이다. 

예부터 이 오름에 온갖 약초가 많이 자라서 '백약이오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자로는 '百藥山백약산', '百藥岳백약악'이라 표기한다. 들꽃과 약초에 대한 안목이 밝지 못한 이에겐 모두 그냥 들녘에 흔히 자라는 '풀'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귀한 약초로 가득한 보물창고다. 제주 사람들이 '가믄탈낭'이라 부르는 복분자딸기와 층층이꽃, 향유, 떡쑥, 쇠무릎, 호장근, 고비, 참마, 하늘타리, 초피, 예덕나무, 청미래덩굴 등 온갖 약초가 자란다.

옛날, 제주사람들이 장만해 놓고 겨울철 두고두고 먹던 '백초탕百草湯'이라는 상비약이 있었다. 백초탕은 산과 들에 자라는 풀 100가지쯤을 캐서 뿌리째 말렸다가 가마솥에 넣고 오래 달인 것이다. 저마다 약효를 지닌 들풀 100가지가 모였으니 약 중의 약이었을 터. 백초탕에 들어가는 재료가 이곳 백약이오름에 특히 많았다고 한다.

초지대를 가르는 백약이오름 탐방로. 이곳은 원래 목장지대다.

백약이오름은 바로 앞으로 송당리 입구에서 수산리까지 이어지는 금백조로가 지나기에 접근하기가 편하다. 전에는 금백조로 양쪽에 간이주차장이 있었는데, 2023년 말에 오름 입구의 사유지에 현대 시설의 민영 유료주차장이 들어섰다. 주차료가 비싼 편이라 관광객의 원성이 자자하다.

넓고 깊은 굼부리에 깜짝

큰 덩치에 비해 탐방로는 단순하다. 들·날머리가 한 곳인 원점회귀 코스다. 능선에 오른 후 화구벽을 한 바퀴 돌고 올랐던 길로 내려선다. 금백조로에서 시작되는 탐방로는 소를 방목하는 초지대 사이를 일직선으로 가로지른다. 오름 자락까지 간 후 능선에 닿기까지 사면을 따라 커다랗게 갈지자를 그린다. 길이 가파르지 않아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오르는 동안 구좌와 성산의 내로라하는 오름이 늘어선 주변 풍광이 예쁘다. 능선에 닿은 후엔 왼쪽이나 오른쪽 아무 곳을 택해도 좋다.

소와 사람이 어우러진 여름날의 오름 진입로. 지금은 탐방로를 따라 울타리가 설치되어 목장 진입이 불가하다.

능선삼거리를 중심으로 양쪽에 비슷한 높이의 둥그런 봉우리가 두 개 보이는데, 남쪽의 것이 정상이다. 정상부는 훼손이 심해져 2020년 8월부터 2년간 출입을 통제하는 휴식년제에 돌입했다. 그러나 복원이 더딘 탓에 기간이 연장되었고, 지금은 별도 고지가 있을 때까지 휴식년제가 진행 중이다. 통제 구역은 정상부 봉우리 일대로, 넓지 않아서 탐방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보통은 삼거리에서 남쪽(왼쪽)의 정상 쪽으로 올라 화구벽을 따라 한 바퀴 돈다. 양쪽으로 풀이 무성한 길은 높낮이가 거의 없이 평탄하게 이어진다.

백약이의 거대한 굼부리는 어안렌즈가 아니고는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굼부리 안은 소나무가 울창하다. 10여 년 전만 해도 민둥산에 가깝던 백약이오름도 여느 오름처럼 소나무로 덮여 가고 있다. 가끔 주변 목장에서 방목한 소가 굼부리 바닥 초지대에서 풀을 뜯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상에서 굼부리 바닥까지의 깊이는 49m다.

이 코너만 돌아 오르면 능선삼거리다.

100개의 오름이 보이는 능선 둘레길

백약이오름은 그 형태가 이웃한 아부오름과 빼다 박은 듯 서로 닮았다. 백약이오름이 조금 더 높을 뿐이다. 두 오름은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을 떠올리게 하는 넓고 깊은 굼부리를 품은 채 하늘을 향해 뻥 뚫려 있다. 이 굼부리를 오름 바깥에서는 짐작이나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백약이오름 진입로는 최고의 포토스폿이다.

화구벽 둘레는 1.3km쯤이다.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동쪽 제주의 내로라하는 숱한 오름을 만나게 된다. 약초가 많아 백약이라는 이름을 얻었다지만 능선을 한 바퀴 돌며 보이는 오름 숫자도 그에 뒤지지 않을 만큼 많다. 서쪽으로 비치미오름과 성불오름, 큰사슴이오름을 지나 붉은오름, 물찻오름, 불칸디오름, 성널오름이 한라산의 품에 안긴 듯이 아스라한 풍광을 만든다. 부대오름과 부소오름, 거문오름, 안돌·밧돌오름, 체오름 등이 시선을 사로잡는 북쪽의 파노라마도 압권이다. 높은오름과 동검은이오름, 다랑쉬를 지나 지미봉, 성산일출봉까지 뻗어가는 동쪽 또한 가슴 뛰는 절경이다.

오름을 한 바퀴 돈 후 만나게 되는 북쪽 봉우리는 백약이오름의 핫스폿이다. 온통 초지대여서 사방 조망이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봉우리 한쪽, 풀밭에 털썩 주저앉아 그 속에 빠져든 이가 여럿이다. 좌보미와 동검은이오름, 그 사이로 멀리 지미봉과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것이 특히 좋다.

송당본향당.

Info

교통

제주시 버스터미널에서 성산항을 오가는 211, 212번 간선버스와 대천환승정류장에서 고성환승정류장을 오가는 721-2번 지선버스가 백약이오름 앞에 선다.

주변 볼거리

송당본향당

송당리의 당오름은 해발 274m에 오름 자체의 높이가 69m에 불과하다. 그러나 '濟州神堂之元祖 松堂本鄕堂제주신당지원조 송당본향당'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이름의 신당이 오름 북서쪽 기슭에 있다. 신당은 제주 무속신앙의 성소로, 송당본향당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열사흘에 당을 책임지고 있는 무당인 매인심방[당에 매여 있는 심방]에 의해 대대적인 당제가 치러진다. 마을의 안녕과 생업의 풍요를 기원하는 이 당제를 위해 타지로 이주한 이들도 돌아와 참배를 한다고 한다. 송당본향당의 당신은 여신 '금백조(백주또)'인데, 금백조와 남편인 '소로소천국'의 자식들이 제주도 곳곳에 당신으로 좌정했다고 하며, 현재 신당의 원조로 여겨지고 있다. 이 당의 당굿은 1986년 제주도 무형문화재로, 본향당은 2005년에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맛나식당 섞어조림.

맛집

고등어와 갈치조림은 흑돼지와 함께 제주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요리다. 문제는 무척 비싸다는 것. 갈치와 고등어조림의 최고 가성비 식당으로 통하는 곳이 성산읍 고성리의 '맛나식당'이다. 아침 8시에 문을 열고, 재료가 소진되는 오후 2~3시면 문을 닫는다. 예약은 안 되며, 누구나 온 순서대로 입장할 수 있다. 점심때는 대기가 기본이다. 고등어조림 1만1,000원, 갈치조림 1만3,000원. 2명 이상 찾으면 십중팔구는 메뉴판에도 없는 '섞어조림'을 시킨다. 두 조림을 적절히 섞어서 내놓는데, 값은 똑같다. 문의 064-782-4771. 매주 수요일 휴무.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