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바라는 ‘포스트 12·3’, 구체적 모습은?
조기 대선이 6월3일로 확정됐다. 윤석열 파면 뒤 ‘다시 만난 세계’는 무엇이 달라야 할까? ‘포스트 12·3’을 둘러싸고 개헌론, 정권교체 우선론, 사회대개혁론 등 논의가 분출하고 있다. 〈시사IN〉이 지난 2월3~5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와 공동으로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웹조사 결과에도 국민들이 바라는 ‘다시 만난 세계’의 실마리가 될 만한 내용들이 있다(자세한 조사 개요는 기사 말미 참조).
우원식 국회의장은 윤석열 탄핵 인용 이틀 만인 4월6일 ‘이번 대통령 선거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시행하자’고 제안했다. “대통령에게 제왕적 권력이 집중되어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까지 낳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넓다”라면서, 구체적으로는 “여야 정당들 사이 ‘4년 중임제’에 대한 공감대가 넓은 것 같다”라고 했다. 현행 5년 단임제보다는 4년 중임제가, 대통령이 재선이라는 ‘중간평가’를 염두에 두고 조금 더 연속성 있게 정책을 추진하고 야당과도 협력하려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였다.
우원식 의장과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사전에 만나 ‘단계적 개헌’에 어느 정도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장 민주당 내부에서 반발이 거셌다. 정청래 의원은 “개헌 논의를 하게 되면 개헌 특위가 구성될 테고 그럼 해산해야 할 내란당(국민의힘을 말한다)이 동등하게 논의 테이블에 앉게 된다”라면서 “백가쟁명식 개헌 논의로 내란 세력의 내란 행위를 시선 분산하거나 덮어버리는 역사적 과오를 저지르지 말자”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전 대표도 4월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개헌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내란 종식이 먼저다”라며, 권력구조 관련 개헌은 각 후보가 공약하고 대선 뒤 시행하자고 했다. 권력구조 개편부터 먼저 하자는 우원식 의장 제안과는 결이 달랐다. 개헌 논의를 환영했던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4월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이재명 대표가 개헌 논의를 거부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 양손에 의회와 정부를 쥐고 총통처럼 절대 권력을 휘둘러보겠다는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정말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인가
그런데 4월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가 선출한 마은혁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뒤늦게 임명하면서, 동시에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두 명도 지명하는 일이 일어났다. 대선을 56일 앞둔 시점에서 “새로운 대통령의 권한을 선제적으로 잠탈하는 월권적·위헌적 행위(헌정회복을 위한 헌법학자회의)”라는 비판이 일었다.
심지어 한덕수 권한대행이 지명한 두 명 중 한 명은 비상계엄 다음 날인 2024년 12월4일 삼청동 안전가옥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 김주현 민정수석과 회동한 뒤 휴대전화를 바꿔 내란 방조 혐의로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는 이완규 법제처장이다. 위헌·위법적 비상계엄에 대한 내란죄 단죄와 이를 위한 정권교체가 우선순위로 떠오르자, 우원식 의장은 “안정적 개헌 논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한발 물러섰다. 개헌은 새 정부에서 논의될 전망이다(4월17일, 헌법재판소는 한덕수 대행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했다).
지난 2월 진행한 〈시사IN〉·한국리서치 웹조사에서 개헌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63%로 과반 이상이었고, ‘불필요하다’ 14%, ‘모르겠다’는 23%였다. 가장 선호하는 권력구조는 ‘대통령 4년 중임제’라는 응답이 46%로 가장 높았고,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21%)’ ‘외치(外治)는 대통령이, 내치(內治)는 총리가 담당하는 이원집정부제(11%)’ ‘의원내각제’(6%)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모르겠다’ 16%)(〈그림 1〉참조). 4년 중임제를 가장 선호한다는 응답은 진보층(54%)과 보수층(49%) 내에서 모두 높은 편이고 중도층(37%)은 두 그룹에 비해 유보적이었다.
지금은 국회의원 선거가 4년마다 있어서 5년마다 치러지는 대선과 시차가 생긴다. ‘4년 중임제’를 하게 되면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가 4년으로 일치하게 된다. 이 경우 대선과 총선의 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물은 결과,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동시에 치러야 한다’는 응답이 38%로 가장 많았고, ‘국회의원 선거를 대통령 임기 중간에 치러야 한다’는 응답이 33%로 그다음이었다. ‘국회의원을 두 그룹으로 나눠서 대통령 선거 때 절반, 대통령 임기 중간에 절반을 선출해야 한다’는 응답은 15%, ‘모르겠다’는 14%로 나타났다.
이념 성향에 따른 차이도 일부 관찰됐다. 진보층 내에서는 ‘대통령 임기 중간 총선’ 42%, ‘대선·총선 동시 실시’ 34%로 나타났다. 보수층에서는 ‘대선·총선 동시 실시’ 43%, ‘대통령 임기 중간 총선’ 30%였다(〈그림 2〉 참조). 상대적으로 진보가 중간 선거를 선호하고 보수가 동시 선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대통령 임기 중간 선거였던 2024년 4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한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보수로서는 윤석열이 당선된 2022년에 대선과 동시에 총선을 치르는 편이 더 유리했으리라고 판단할 수 있다.
다만 ‘포스트 12·3’의 과제가 개헌이라는 논리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비상계엄의 원인이기 때문에 4년 중임제로 가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말이 안 된다”라고 평했다. 일단 비상계엄의 원인이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명제부터 틀렸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윤석열이 대통령의 계엄선포권을 헌법에 맞지 않게 남용해서 발생했다. 물론 일정 시간 동안 국회 승인을 받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계엄이 해제되도록 하는 등 대통령 계엄선포 요건을 지금보다 더 강화하는 방향의 개헌은 고려할 수 있겠지만, 현행 헌법도 대통령의 제왕적 계엄선포권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윤석열은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국회의 (헌법과 법률에 근거한) 탄핵과 법안 추진·반대, 예산 삭감 때문에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국민의힘은 ‘제왕적 대통령’뿐 아니라 ‘제왕적 국회’의 권한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야가 공히 말하는 4년 중임제란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려는 것인가, 약화하려는 것인가?
‘4년 중임제를 하면 중간평가가 가능해져서 책임정치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전제도 생각만큼 단단하지 않다. ‘중임제의 2기에서는 다시 ‘전광판을 보지 않는(여론을 신경 쓰지 않는)’ 대통령이 되지 않나? 이것은 결국 8년 단임제나 매한가지 아닌가? 그러면 더 강력한 제왕적 대통령을 만들지 않겠나?’라는 비판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대선·총선 주기를 일치시키자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은 하원의원 임기가 2년, 상원의원은 6년, 대통령은 4년이다. 미국 건국의 주역들은 의도적으로 이 선거들의 주기가 맞지 않도록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한순간의 대중적 열정이 대통령과 상하원을 한꺼번에 장악하지 못하게 해서 견제와 균형을 도모한 것이다.
“여소야대가 되면 행정부와 입법부가 싸우고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니 한쪽으로 몰아줘야 하나?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의회 권력도 다 몰아줘야 했다는 얘긴가? 비상계엄은 우리 ‘헌법 때문’이 아니라 우리 ‘헌법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일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에 계엄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제왕적 개인이 자신을 제한하는 제도적 틀이 답답해서 혹은 제도가 충분히 ‘제왕적’이지 않아서 일으킨 사건인데, 갑자기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쳐야 한다고 하면 틀린 말이다(박원호 교수).”
물론 한국의 대통령이 유독 ‘제왕적’이라고 이야기되는 측면이 없지는 않다. 예컨대 서울대 총장이나 한국마사회장을 꼭 대통령이 임명해야 하는 건 아닌데도 과도하게 여러 영역에서 인사권을 행사한다거나,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장관보다 대통령실 비서관들의 권한과 규모가 비대해지는 현상이 그것이다. 이런 구조는 대통령 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될 가능성을 높이는데, 이는 꼭 개헌이 아니어도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바꿀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증세 이야기해야 하는 진짜 이유
사실 헌정 질서 회복은 최소한의 과제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국회의장이나 부통령 같은 선출직으로 해서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거나, 헌법재판관 임기 만료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거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상 내란죄 수사권 근거를 보완하는 일 등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정치란 무엇보다 시민 개개인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사회대개혁’ 이야기가 나온다. 이번 윤석열 퇴진 집회를 이끈 시민단체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현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정의로운 경제와 민생이 안정된 사회’ 등 119개 사회대개혁 과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문제는 현재 한국의 재정 여건이 최악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105조원으로 GDP의 4.1%를 기록했다. 윤석열 정부가 재정지출을 적극적으로 늘려서가 아니다. 세입 기반이 악화한 탓이 크다. 조세부담률은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인 2022년 GDP 대비 22.1%였는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2023년 19.0%, 2024년 17.7%로 떨어졌다. 반도체 기업 실적 부진 등으로 법인세 세입이 줄어든 데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종합부동산세와 법인세 감세,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가상자산 과세 세 번째 유예에 민주당도 합의했다.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근로소득세와 상속세 감세를 경쟁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김경수, 김동연 대선 예비후보가 증세 필요성을 거론한 가운데, 이재명 예비후보는 4월18일 대선 경선 첫 TV 토론에서 “정부의 부담을 민간에 떠넘기는 증세를 추진하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라고 선을 그었다.
복지정책 연구자인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저성장 체제하에서 언제까지 국채 발행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 결국 윤석열 정부 시기의 감세를 되돌리는 걸 넘어 증세하지 않으면 민생 문제에서 큰 개선을 만들기 어렵고, 이게 다시 새 정부의 정치적 안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민주당이 집권했는데 윤석열 정부와 별반 달라진 게 없네’라는 민심이 생길 수 있다. ‘포스트 12·3’의 시대적 과제로 증세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지난 2월 〈시사IN〉·한국리서치 웹조사에서 복지와 세금에 관한 인식 조사 결과는 통념과 달랐다(〈그림 3〉 참조). 다음 중 어느 쪽 입장에 가까운지 물었을 때, ‘성장보다 복지를 우선해야 한다’는 응답이 40%, ‘복지보다 성장을 우선해야 한다’는 응답이 44%로 큰 차이가 없었다(‘모르겠다’ 16%). 중도층에서도 ‘복지 우선’ 40%, ‘성장 우선’ 39%로 비슷했다(진보층은 ‘복지 우선’이 56%, 보수층은 ‘성장 우선’이 62%였다). 여론은 일방적으로 경제성장만 우선시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복지 확대를 위해 세금을 올리는 데도 찬성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 해당 조사에서 세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복지 수준을 유지하고 세금도 유지한다’는 응답이 37%로 가장 높은 가운데 ‘복지 수준을 확대하고 세금을 인상한다’는 응답이 27%, ‘복지 수준을 축소하고 세금도 인하한다’는 응답이 26%로 팽팽했다(‘모르겠다’ 10%). 중도층에서는 ‘복지·세금 유지’ 응답이 39%로 가장 높았고 ‘복지 축소·세금 인하’ 25%, ‘복지 확대·세금 인상’ 21%, ‘모르겠다’ 15% 순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복지 확대·세금 인상’ 응답이 40%, ‘복지·세금 유지’ 35%, ‘복지 축소·세금 인하’ 18%였다(‘모르겠다’ 7%).
부동산을 포함해 보유하고 있는 재산에 부과하는 세금(보유세)을 폐지하거나 내려야 한다는 응답(폐지 10%+인하 22%=32%)과 지금보다 올려야 한다는 응답(인상 21%+훨씬 더 인상 9%=30%)도 큰 차이가 없었다. 현재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24%, ‘모르겠다’는 14%였다. 중도층 의견도 폐지·인하 32%, 인상 27%, 유지 23%, 모름 19%로 전체 여론과 비슷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인상 42%, 유지 25%, 폐지·인하 23%, 모르겠다 11% 순이었다. 집권 세력이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따라 증세에 동의하거나 감세에 반대할 그룹들이 상당 규모로 존재한다고도 볼 수 있다.
■ 이렇게 조사했다
- 조사 일시 : 2025년 2월3~5일 조사 기관:㈜한국리서치
- 모집단 : 전국의 만 18세 이상 남녀 표집틀 한국리서치 마스터샘플 (2025년 1월 기준 전국 96만6505명)
- 표집 방법 : 지역별·성별·연령별 기준 비례할당 추출
- 표본 크기 : 2000명
- 표본오차 : 무작위 추출을 전제할 경우, 95% 신뢰수준에서 최대 허용 표본오차는 ±2.2%포인트
- 조사 방법 : 웹조사(휴대전화 문자와 이메일을 통해 url 발송)
- 가중치 부여 방식 : 지역별·성별·연령별 가중치 부여 (셀가중, 2024년 12월 행정안전부 발표 주민등록 인구 기준)
- 응답률 : 25.2%(총 9812명에게 발송, 7941명 접촉, 2000명 최종 응답)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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