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얘기 없이 재정은 과감히 동원하겠다? [6·3 대선, 주목할 의제]

대선이 코앞이지만 공약집은 아직이다. 각 후보 캠프가 밝힌 일정에 따르면, 각 정당의 대선 공약집은 사전투표(5월29~30일) 직전에나 발표될 전망이다.
유권자가 공약의 현실성을 판단할 만한 기초 정보도 부실하다. 공약을 실현하려면 ‘재원 조달 방안’이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그 방안이 있으나 마나 한 수준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10대 공약’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정부 재정지출 구조 조정분, 2025~2030 연간 총수입증가분(전망) 등으로” 공약 이행의 재원을 마련한다고 설명한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세제 개편과 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성장으로 세수 증대” “비효율 지출 구조조정” 같은 표현을 반복한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10대 공약에도 “기존 예산 재편성”을 강조할 뿐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을 찾아보기 어렵다.
‘증세’는 지금까지 발표된 각종 공약에서 빠져 있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만이 1호 공약으로 ‘증세를 통한 불평등 해소’를 전면에 내세울 뿐이다.
흐릿한 재원 마련 구상과 달리, 재정을 동원하겠다는 목소리는 크고 선명하다. 거대 양당 후보인 이재명·김문수 두 후보의 ‘우선순위’가 조금 다를 뿐이다. 이재명 후보는 적극적인 확장 재정을 천명하며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재정의 역할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5월18일 대선후보 1차 TV 토론(경제 분야)에서도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부채가 늘어났다는 점을 강조하며 “국가부채를 감수하고라도 다른 나라들처럼 소상공인 코로나 극복 비용 부담을 정부가 떠안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국가 재정 측면에서 이재명 후보의 공약 중 눈여겨볼 포인트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산업 분야에 대한 재정 동원이다. 이 후보의 ‘10대 공약’ 중 첫 번째 공약은 ‘산업 육성’이다. 인공지능(AI) 관련 예산을 증액하고, 민간 투자도 늘리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주장한다. 방산 수출기업에 대한 연구개발(R&D) 세제 지원 등 ‘국가첨단전략산업에 대한 대규모 집중 투자’를 다른 모든 공약보다 앞서 내밀었다.
전 세계 산업정책의 새로운 흐름
이런 접근은 최근 금융권에서도 제기되는 ‘신(新)산업에 대한 재정 투입’ 논의 방향에 가깝다. 전 세계 기술 패권 경쟁이 사실상 국가적 자원을 동원하는 경쟁으로 확대되면서 미국·중국·타이완·일본·유럽에서 재정을 통한 산업 지원이 전개되고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기술개발의 재원’을 바라보던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정부의 개입 최소화(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관점에서는 기업 활동에 대한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되 정부가 재정을 동원하며 산업 경쟁력을 챙기는 것은 불공정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칩스법(반도체 기업의 미국 내 공장 증설을 유도하는 법)’에 사활을 걸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관세 부과를 통해 자국 내 제조 시설 확보를 유도하면서 산업정책이 국가 전략과 결합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딥시크 충격’, 타이완 정부의 TSMC 지원, 일본 정부의 키옥시아(KIOXIA) 지원 등 거대 기술 기업의 성장을 국가 단위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환경이 촉발됐다. 기업의 자유 경쟁을 중시하던 금융권에서조차 정부가 과감한 재정 투입을 통해 AI·반도체·이차전지·바이오 등 첨단산업 중심으로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재명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GPU 5만 개 확보’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반면 김문수 후보는 재정 동원에 대해 전통적인 시장주의적 접근을 보여준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인하하고, 종합소득세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는 한편,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50→30%), 종합부동산세 개편 등 감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산업 전략 측면에서도 펀드 조성과 기술개발 지원 등을 공약했지만, 국내 민간기업과 글로벌 기업의 투자 유치를 앞세우는 등 전통적인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모습은 유지한다. 이런 기조에서 강조되는 것은 역시 감세를 통한 민간 중심의 경기 활성화다.
적극적인 재정 동원을 주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재정의 원천을 더 상세하게 설명해야 하는 쪽은 이재명 후보다. 최근 이 후보는 자신의 재정 동원 공약을 현실화하는 방법론으로 적극적인 국채 발행을 강조하고 있다. 5월21일 인천 계양구 유세에서도 이 후보는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내수를 진작해야 한다. 새로운 정부가 국채 발행한다고 비난해선 안 된다. 나라 빚을 지면 안 된다는 무식한 소리 하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경기 활성화를 위해 부채 증가를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23년 결산 기준 우리나라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D2 기준)은 50.7%다. 기축통화국으로 부채 비율이 100% 이상인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서는 낮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발표한 ‘재정점검 보고서(Fiscal Monitor)’ 4월호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GDP 대비 국가채무는 54.5%, 향후 2030년까지 59.2%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구조적으로 부채가 늘어나는 흐름을 전망했다.
한국과 같은 비기축통화국은 달러, 엔, 유로와 같은 기축통화를 쓰는 나라에 비해 채권 수요가 낮아 건전성 관리에 보다 유의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재정이라는 카드를 과감하게 꺼내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급속한 고령화라는 정해진 미래 때문에 재정 소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재정 동원에 조심해야 한다는 관점이 있다. 반면 경기침체, 산업 쇠퇴, 기술 산업에 대한 국가적 경쟁 확대라는 특수 상황을 감안해 과감하게 재정을 동원해야 한다는 관점도 나름의 논리를 갖는다.
결국 증세 없이 확대 재정에만 나설 경우, 한국 경제에 남은 마지막 카드인 ‘정부 부채 감당 여력’을 조기에 소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표가 아쉬운 선거에서 증세는 때때로 감추고 넘어가야 하는 목소리에 해당한다. 집권 후 적극적이지 않았던 증세가 실제로는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제21대 대선 국면에서 정치권은 여야 모두 윤석열 정부가 각종 감세 정책을 통해 3년 동안 재정을 어떻게 흔들어 놓았는지 직시하지 않고 있는 건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는 ‘카르텔’ 운운하며 R&D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일까지 벌였지만,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매년 관리재정수지는 80조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했다. 감세와 재정건전성 확보를 동시에 추진한 결과는 이렇게 참혹했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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