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달은 맛있고, 은하는 빙글빙글 [시선]
‘큰 인간’은 따분하고 진지하다. 오직 ‘작은 인간’만이 달을 보고 “맛있어 보인다”라는 발칙한 상상을 한다. 지난해 전남 화순군에 있는 동복초등학교 천체사진반 학생 15명은 서충현 선생님(38)과 함께 카메라로 우주를 탐험했다.
2023년 가을, 전교생 17명의 동복초등학교에 천체사진교육 프로그램이 처음 생겼다. 그해 봄, 서충현 선생님이 학교에 부임하면서다. 마을에 또래가 적어서 혼자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는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다. 때마침 방과후 교육을 맡을 교사가 필요했다. 어릴 적부터 천체 사진을 좋아하던 그는 이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자원했다.
서충현 선생님과 천체사진반 학생들은 매주 금요일 밤에 모여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이들은 별자리를 그리고, 고사리손으로 셔터를 눌러 별밤을 카메라에 담았다. 선생님은 때때로 아이들을 앉혀놓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사진 제목은 무엇인지, 의도가 뭔지, 찍을 때 마음은 어땠는지를 물어보고 글로 정리하게끔 했다. 아이들의 문장을 다듬기는 했지만, 통통 튀는 표현들은 그대로 살렸다. 그렇게 모인 글과 사진으로 도록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구멍 난 달은 맛있어 보였고, 쏟아지는 은하수는 황홀했다. 싱그러운 아이들의 감성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난해 촬영한 작품 사진과 활동 사진 일부를 동복초등학교에서 제공받았다. ‘달의 맛’을 잊어버린 어른들을 동복초 천체사진반의 우주로 초대한다.
우주의 한가운데
일주운동이 그리는 원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선생님께서 보여주시는 작품을 보고 나도 빨리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원래하기로 한 날에 비가 와서, 교육이 계속 미뤄졌다. 선생님께서는 매일 오후 세 시까지 날씨를 보면서 할까 말까 고민을 하셨다. 그러다 다행히화요일에 잠깐 구름이 걷히니까 수업을 하자고 하셨다. 날씨 지도를 보니까 흐림이었는데, 실제로 선생님 말씀이 맞을지 김치볶음밥을 먹는중에도 걱정됐다. 그런데 진짜로 딱 두 시간 정도 하늘에 구름이 걷혔다.
일주 사진 첫 장을 찍는게 어려웠지만, 나머지는 자동 클릭이 돼서 좋았다. 나는 선생님께서 찍은 사진처럼 북쪽 하늘을 찍었다. 별이 동그랗게도는 모습과 산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자동 시간에는 매트에서 친구들과 별을 보고, 스마트 망원경으로 은하를 봤다. 이날은 아크투루스와안타레스도 떴는데 진짜 멋있었다. 안타레스는 내 탄생 별자리인 전갈자리에 있는데, 진짜 예쁜 주황색이다.
※학년은 촬영 당시 기준
쌍안경을 지난 달빛이 나뭇잎을 스치고
나는 혼자 있을 때 집에서 하늘이나 산을 찍고 논다. 잘 나온 풍경사진을 보면 상쾌한 기분이 들어 좋다. 그래서 사진에 대해 배울 수 있는천체사진교육을 작년부터 신청하고 싶었는데, 공부가 끝나고 집에 갈 차가 없어서 신청을 못 했었다. 올해는 다행히 선생님들께서 차로데려다주시기도 하고, 엄마도 데리러 오실 수 있다고 해서 교육에 참여하게 됐다.
처음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는 어려웠다. 그냥 버튼만 누르는 스마트폰과 다르게 제대로 사진을 찍으려면 감도, 노출시간 등을 알아야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선생님들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찍다 보니 점점 쉬워지고, 더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이 사진은 한천리 손두부체험관에서 쌍안경으로 찍은 달이다 . 쌍안경을 조금 움직여서 초승달과 나뭇잎이 함께 있는 모양으로 만들었는데,달만 덩그러니 찍으면 왠지 허전해 보일 것 같아서 그랬다. 선생님께서도 이 사진에 대해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내가 찍은 작품이 칭찬을받으니 정말 기쁘다.
은하수가 있는 정자
우리도 은하수를 찍을 수 있다고? 선생님이 찍어오신 사진만 보고는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잘 안 들었다.
그런데 궁수자리랑 전갈자리만 찾을 줄 알면 사진 찍는 건 의외로 쉬웠다.
나는 요즘 엄마랑 밤길을 걸을 때 은하수가 어디 있다고 설명을 자주 해드린다. 엄마는 요즘 변한 내 모습을참 좋아하신다.
비석 위의 달
2023년에 참여했던 천체사진교육은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다. 우리 은하수와 외계 은하수, 토성과 목성을 보고 사진도 찍으면서 우주에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선생님이랑 밤에 남아 하늘을 보면서 날씨가 좋을 때도 있었고, 구름이 껴서 아무것도 못 볼 때도 있었다.선생님께서는 그럼 다음 기회에 보면 된다고 늘 말씀하셨다.
그런데 사진은 그 순간이 아니면 찍지 못할 때도 있다. 이 작품은 비석의 위쪽 가운데에 달이 위치했던 장면을 찍은 것이다. 달은 매일움직이니까 아마 이때가 아니었으면 찍지 못했을 것이다. 이때를 놓쳐서 달과 비석이 어긋났으면, 달이 외로워 보여서 좋은 작품이 안만들어졌을 것이다.
반달은 차갑다
평소에 선생님께서 쓰시는 별 추적기는 무겁고 사용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가져온 스마트 망원경은 쉽게 쓸 수 있어서 좋다. 이사진은 내가 우리 학교 최초로 스마트 망원경으로 찍은 사진이다. 우리 누나도 디지털 카메라로 달을 찍었는데, 내 달이훨씬 더 크게 나왔다. 달의 구멍들을보고 있으면 맛있어 보인다.
구름 물결 사이를 지나는 달빛이
나는 사진에 별 관심이 없다가 내가 좋아하는 세븐틴 전원우의 취미가 사진인 걸 알고디지털 사진에 입문하게 됐다.
이 사진은 일주 사진을 찍던 날, 구름이 많이 껴서 그나마 잘 보이는 달을 겨누고 찍은 것이다. 달이 구름 속에 한번 들어갔다가 나왔더니 일주 사진이 독특하게 찍혔다.
달은 별과 다르게 밝아서 노출시간을 짧게 줘야 한다고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셨다.
사진 동복초교 천체사진반·글 문준영 수습기자 juny@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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