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잘못된 삶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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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19일 국민일보 지면에는 '장애 대물림 알았지만 우린 부모가 됐습니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앞을 제대로 못 보는 아이 두 명을 낳아 기르는 시각장애인 부부의 이야기였다.
장애아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해 장애아의 부모나 장애아가 산부인과 의사 등을 상대로 제기하는 것이 잘못된 삶 소송이다.
그런데 장애인의 삶을 '잘못된 삶'이라고 단정해버릴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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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19일 국민일보 지면에는 ‘장애 대물림 알았지만 우린 부모가 됐습니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앞을 제대로 못 보는 아이 두 명을 낳아 기르는 시각장애인 부부의 이야기였다. 이들은 기사를 통해 자식에게 무상(無償)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날로달로 쌓이는 육아의 기쁨을 전했다.
하지만 기사가 나간 뒤 온라인에는 온갖 악플이 주렁주렁 달렸다. 댓글창에는 장애가 유전될 수 있음을 알고도 아이를 낳은 부모를 비난하는 댓글이 간단없이 이어졌다. 그나마 옮겨 적을 수 있는 몇몇 악플만 소개하자면 이런 식이었다. “내 부모가 장애를 알면서도 낳았다고 생각하면 엄청 큰 화가 끓어오른다”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과연 장애를 물려받을 걸 모르고 태어난 애가 행복할까”….
저들이 무슨 생각에서 저런 댓글을 달았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악플을 쓴 사람들은 장애를 형벌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 형벌을 대물림하는 것은 부모라면 해서는 안 될 짓이고, 그래서 기사 속 시각장애인 부부는 천인공노할 죄를 저지른 이기주의자일 뿐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외국엔 ‘잘못된 삶(wrongful life) 소송’이라는 게 있는데, 이 소송도 비슷한 성격을 띤다. 장애아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해 장애아의 부모나 장애아가 산부인과 의사 등을 상대로 제기하는 것이 잘못된 삶 소송이다. 그런데 장애인의 삶을 ‘잘못된 삶’이라고 단정해버릴 수 있는가.
공공연하게 드러내진 못하지만 많은 이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생각할 듯싶다. 인류 역사만 봐도 그렇다. 예컨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중반까지 지구촌을 휩쓸며 현대사에 진한 얼룩을 남긴 우생학을 떠올려보자. 우생학을 떠받든 나치는 장애인을 대량 학살극의 첫 번째 타깃으로 삼았고, 장애인을 없애야 한다는 슬로건 탓에 20만명 넘는 장애인이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었다.
국가 권력이 우생학의 칼날을 휘두르는 일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장애인을 ‘걸러내는’ 작업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태아의 장애 여부를 판단해 임신 중절을 선택하는 것은 얼마쯤 자연스러운 일이 된 지 오래다. 그런 결정을 하는 사람을 비난할 수도 없다. 장애인을 낳아 기른다는 것은 끝 모를 돌봄 노동의 짐을 걸머지는 일이 되니까. 심지어 달라이 라마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장애가 있는 태아를 낙태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라고. 하지만 선택적 임신 중절이 욕먹을 일은 아니라고 해서 장애가 있을 가능성이 큰 아이를 출산하는 게 비난받을 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약 10년 전 뉴욕타임스에는 장애인들이 직접 전하는 장애인 이야기가 연재된 적이 있다. 그중 일부는 ‘우리에 관하여’라는 제목을 달고 국내에 단행본으로 출간됐는데 여기엔 이런 글이 등장한다. 글쓴이는 인을 흡수하지 못해 키가 작고 뼈가 약한 ‘X염색체 유전성 저인산혈증’(XHL) 환자다. 그는 자신의 질환이 자녀에게 유전될 수도 있음을 알았고 많은 이가 만류했지만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 그리고 그중 2명은 XHL 질환이 있었다.
사람들은 아이들이 난망한 미래를 한탄하면서 한숨의 세월을 보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부모의 욕심 탓에 ‘잘못된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넘겨짚었다. 그러나 무럭무럭 자란 아이들은 누구보다 평범하게 살아왔다. 글쓴이는 이 같은 이야기를 전한 뒤 이런 글을 적어두었다. “나는 ‘맞춤 아기’가 뭘 의미하는지 안다. 아름다움과 큰 키, 지성과 같은 장점을 겸비하고 태어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들을 믿을 자신이 없다. 삶은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박지훈 디지털뉴스부장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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