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진까지 3분’ 전민철, 사뿐히 뛰어올라 새처럼 날았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35번 ‘앙트리샤 시스’에…객석 박수갈채
홍향기와 함께 한 파드되는 ‘환상적’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가뿐히 날아올랐다. 탄성 좋은 고무공처럼 튀어 올라 재빠르게 교차하는 두 개의 발. 빨리 감기를 한 것처럼 순식간에, 그러면서도 정확한 세 번의 동작 뒤 새처럼 지상에 발을 딛고 다시 도약한다. 발레의 고난도 기술로 꼽히는 앙트르샤 시스. 너무도 가혹하고 아름다운 형벌이었다. 지젤을 배신한 알브레히트에게 주어진 이토록 질긴 형벌은 스무살의 발레리노 전민철과 만나 아름다운 춤이 됐다. 누군가의 지옥은 누군가에겐 천국이었다.
용수철을 매단 것처럼 거뜬하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동작에 객석은 일찌감치 함성과 박수로 뒤덮였다. 앙트르샤 시스 2회차부터 터져 나온 함성은 같은 동작이 35번이나 이어지자, 환호는 경이로 달라졌다. 전민철은 35번의 점프 내내 단 한 번의 흔들림도 없었다. 2년 전 한국을 찾았던 ‘파리오페라발레의 별’ 기욤 디옵의 앙트르샤 시스보다 3번이나 많았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지젤’이 마침내 막을 올렸다. 지난 18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오는 27일까지 이어지는 무대에서 전민철은 두 번의 무대(4월 18, 20일)로 관객과 만났다. 전민철이 출연하는 무대는 불과 3분 만에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전민철은 현재 발레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아이콘이다. 지난해 세계적인 발레단인 러시아 마린스키 입단을 확정하며 단숨에 ‘발레 아이돌’로 떠올랐다.
그의 성장은 놀랍도록 빠르다. 이전부터 전민철이 꼭 해보고 싶었던 무대로 꼽혔던 ‘지젤’은 지난해 9월 유니버설 발레단의 ‘라 바야데르’를 통해 전막 발레 무대에 데뷔한 이후 5개월 만에 다시 서는 대형 무대다. 전민철은 감정 연기는 물론 기술에서도 이전보다 한층 성숙한 모습이었다.
객석은 사실 전민철의 등장과 동시에 함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라 바야데르’ 공연 당시부터 ‘발레계 변우석’으로 불리며 스타성을 입증한 그의 무대는 전율의 연속이었다. 최고 수준의 기량을 선보이는 어린 무용수는 발끝에 용수철을 매단 듯 거침없이 날아올랐고, 솔직한 감정 표현으로 매만진 연기는 서툰 사랑의 상실을 그렸다.
전민철의 기량을 끌어낸 최고의 조력자는 유니버설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홍향기였다. 사랑에 빠진 순수한 소녀에서 사랑을 잃고 배신에 몸부림치다 미쳐가는 여인의 삶이 홍향기의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몸짓, 절절한 감정선으로 이어지며 파트너의 기량을 끌어냈다.
1막에선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만남이 사랑스럽게 그려졌다. 전민철은 굳이 성숙하고 깊은 사랑을 연기하지 않았다. 앳된 귀공자의 모습으로 등장해 귀여운 플러팅으로 풋풋한 사랑을 쌓아갔다. 약혼녀의 존재와 신분을 속인 장난스러운 사랑의 끝은 비극이었다. 알브레히트의 거짓말에 미쳐 춤추다(매드신) 결국 숨이 끊어지는 지젤을 마주하는 전민철의 알브레히트는 ‘미성숙한 인격’의 미성숙한 사랑을 만들었다.
압권은 2막이었다. 낭만 발레 지젤의 정수를 보여주는 ‘윌리의 군무’부터 알브레히트와 지젤의 2인무, 알브레히트가 추는 ‘형벌의 춤’까지 쉴 새 없이 볼거리가 이어졌다.
푸른 달빛 아래 새하얀 튀튀를 입은 20명의 무용수는 오차 없이 완벽한 군무로 관객을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아라베스크 동작을 한 채, 발소리와 다리는 물론 손의 각도까지 맞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는 장면은 유니버설 발레단 군무의 정수를 보여줬다. 40개의 발이 만들어내는 정교한 군무는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사랑과 구원의 판타지, 어김없는 여성의 희생을 그리는 막장 스토리의 발레가 몽환적인 동화로 치환하는 장면이다.
전민철과 홍향기의 파드되(2인무)는 서로를 완전히 신뢰한 두 무용수의 온전한 호흡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전민철은 홍향기가 비극의 처연을 표현하도록 든든히 그를 받쳐줬다. 남성 무용수가 여성 무용수를 안정감 있게 지지할 때, 발레리나가 만들어내는 ‘춤의 미학’은 극대화된다. 전민철과 함께 홍향기의 지젤은 손끝, 발끝의 우아한 균형감으로 섬세한 감정을 쌓았다.
공연의 백미는 단연 전민철의 테크닉이었다. 고난도 ‘앙트리샤 시스’를 정석으로 소화했고, 오케스트라의 음악에 맞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아오르다 마지막 박자와 함께 완벽히 무너졌다. 사무치는 비애는 후회와 통탄의 춤으로 이어졌고, 결국 절규로 끝을 맺자 객석에도 비극은 휘몰아쳤다. 발레계의 슈퍼스타가 자신을 또 한 번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지젤’은 유니버설 발레단의 간판 작품이다. 1985년 초연 이후 지난 40년 동안 정기공연만 약 1500회를 올렸다. 초연 당시 ‘지젤’을 연기한 발레단의 문훈숙 단장은 지금도 ‘영원한 지젤’로 불리고 있다. 공연 전 10분간 들려준 문 단장의 해설과 동작 시연은 유니버설 발레단 작품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다. 이때 관객들은 자연스레 감탄을 보내게 된다. 오는 27일까지 열흘간, 11회차로 이어지는 공연엔 강미선, 이동탁 등 유니버설 발레단의 스타 무용수를 비롯해 임선우, 이유림 등 UBC의 미래가 될 신예들이 데뷔 무대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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