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매립지에 파종한 복음… 성도 50여명 신앙 공동체 ‘결실’
<2부> 복음 들고 땅끝으로
② 김수길·조숙희 그리스 선교사 부부
그리스 테살로니키 국제공항에 내린 건 지난달 15일이었다. 이곳에서 차를 타고 남동쪽으로 1시간가량 이동해 도착한 곳이 카테리니 마을이었다. 안개가 낮게 내려앉은 마을에서 2918m 높이의 그리스 최고봉 ‘올림포스산’이 멀리 희미하게 보였다.
이곳에서 ‘집시 선교사’로 알려진 김수길(68) 조숙희(65) 선교사 부부를 만났다. 27년 동안 그리스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부부와 함께 비탈진 좁은 길을 따라가는 동안 곳곳에서 쓰레기를 태울 때 나는 메케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양철로 만든 집들 옆으로 줄지어 걸린 빨래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깔리메라(안녕하세요).” 간신히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가에 선 이들이 김 선교사 부부에게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이들은 ‘로마족’으로 불리는 집시들이었다. 환대 속에서 5분쯤 더 가니 ‘카테리니 로마교회’가 모습을 드러냈다. 집시들의 마을 한복판에 신앙 공동체를 세운 주인공이 바로 김 선교사 부부다.
로마족은 1000년 전 인도에서 유럽으로 이주한 종족으로 오랫동안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로 살았다. 그리스에서 만난 이들의 모습도 흡사 인도인과 비슷해 보였다. 로마족이 정식 명칭, 집시는 이들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소매치기나 사기꾼으로 악명이 높았던 이들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그리스 내 로마족의 정확한 수는 파악되지 않지만 50만명을 웃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 선교사는 “카테리니 마을은 그리스 정부가 로마족에게 어쩔 수 없이 떼어준 땅이지만 공식적으로는 불법”이라며 “탄 냄새가 진동했던 건 이 마을이 쓰레기 매립지 위에 세워졌기 때문인데 조금만 땅을 파도 여전히 쓰레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김 선교사는 1990년 10월 이스라엘에서 유학 중 오순절 방학을 맞아 그리스를 처음 방문했다고 했다. 당시 소련 붕괴와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으로 테살로니키에 많은 난민이 유입됐었다. 역에서 만난 피란민들이 선교사로서의 소명을 재확인해줬다고 말했다.
“그때 만난 난민들을 위한 사역을 하려고 7년 뒤 파송을 받아 테살로니키에 도착했어요.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보내주신 종족이 바로 로마족이었습니다.” 이곳에 파송받은 김 선교사가 처음 만난 사람은 만삭의 몸으로 추운 날씨에 구걸하던 십대 소녀였다. 그렇게 선교가 시작됐다.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 카테리니 마을의 교회는 소외된 이들의 신앙 공동체로 성장했다. 이날 늦은 오후 교회에서 리더들을 위한 성경공부가 시작됐다. 한 시간가량 이어진 성경공부를 마친 후 김 선교사 부부와 현지인 리더 8명은 주일을 앞두고 거리 전도에 나섰다. 마을에서 만나는 주민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면서 찬양을 부르고 복음을 전하는 방식이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방문은 마을 끝자락에 있는 한 가정에서였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한 집에 가구라고는 침대 하나뿐이었다. 마약에 중독된 가장은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딸은 자폐증세로 머리가 헝클어진 채 침대에 겨우 누워있었다. 딸의 곁을 지키던 엄마는 연신 눈물을 흘렸다. 전도팀원들은 두 손을 모으고 이 가정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다. 이날만 10여 가정을 방문한 이들은 주일 준비를 위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저 멀리 해가 지고 있었다.
이튿날은 주일이었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예배는 찬양으로 시작했는데 1시간 남짓 이어졌다. 조 선교사와 현지인들로 구성된 찬양팀은 뜨겁게 찬양했다. 어린아이들은 모두 앞으로 나와 복음을 노래했다.
예상치 못한 순서가 이어졌다. 현지인 리더는 주일예배에 참여한 기자에게 로마족 다음세대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 “140년 전 복음 들고 이 땅에 온 선교사들로 인해 한국이 하나님을 알게 된 것처럼, 로마족들에게도 하나님을 아는 은혜가 더해지길 소망합니다.” 기도를 마치자 성도들은 “아멘”을 연이어 외쳤다.
김 선교사는 그리스어로 설교했고 현지인 리더는 로마족 언어로 옮겼다. 올림포스산 아래, 쓰레기 매립지 위에 세워진 작은 교회에서 50여명의 성도와 함께한 주일예배는 특별했다.
이날 찬양팀을 이끌고 통역을 했던 에반겔리 깔리오라스(35)씨는 선교사 부부의 가장 큰 열매 중 하나라고 했다. 23세에 예수님을 영접한 뒤 도둑질을 멈추고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 그는 “고물만 줍던 인생이었는데 이제는 닭 농장에 필요한 일꾼을 제공하는 회사를 운영한다”며 선교사 부부에게서 배운 ‘십일조’를 삶의 전환점으로 꼽았다. 깔리오라스씨는 오는 9월 회사 운영을 직원들에게 맡기고 아테네 신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다. 그는 “선교사님들이 제게 복음을 전해주신 것처럼 동족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테살로니키(그리스)=글·사진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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