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거부할 자유를 드립니다 [편집국장의 편지]

변진경 편집국장 2025. 4. 21. 07:5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장면 하나.

국회 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마치고 나온 그에게 〈뉴스타파〉 기자가 질문을 던지자 취재를 거부한 데 더해 강제로 기자의 손목을 잡고 수십 미터를 끌고 갔다.

홍 전 시장은 '적대적 언론사' 기자의 질문을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질문당하는 사람은 질문을 거부할 자유도 있다. 그래야 공평하다." 맞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매주 〈시사IN〉 제작을 진두지휘하는 편집국장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우리 시대를 정직하게 기록하려는 편집국장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4월17일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1차 경선 토론회 미디어데이에 참가한 후보자들. ⓒ국회사진취재단

장면 하나.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앞 계단에 섰다.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출마 선언문에서 나 의원은 자신을 ‘의회주의자’라고 표현했다. 한 기자가 질문했다. “계엄군이 바로 이 국회의사당에 진입할 때, 시민들이 계엄군을 막고 군용차량을 막아설 때 의원님은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고 탄핵안 투표에도 불참했다.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부터 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얼굴이 굳어진 나 의원은 “의견은 다양하니까··· 이런 정도로 답변하겠다”라며 급히 기자회견을 끝냈다. “비상계엄이 위헌이라는 판결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추가 질문이 허공 속에 메아리쳤다.

장면 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기자들 앞에 섰다. 역시 대권 출사표를 낸 그는 정책 발표를 마치고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오마이뉴스〉 기자가 손을 들고 소속을 밝히자 “‘적대적인 언론’은 마지막에 질문해주면 좋겠다”라며 순서를 뒤로 미뤘다. 전날 행사 때도 홍 전 시장은 〈뉴스타파〉 기자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됐어, 저기랑 답 안 할래”라며 자리를 떴다.

장면 셋.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여성 기자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마치고 나온 그에게 〈뉴스타파〉 기자가 질문을 던지자 취재를 거부한 데 더해 강제로 기자의 손목을 잡고 수십 미터를 끌고 갔다. 그 과정에서 “출입금지 조치하라 해” “너네들 여기 있어. 도망 못 가게 잡아” “〈뉴스타파〉는 언론사가 아니다, 지라시다”라고도 말했다.

언론의 자유, 질문할 권리, 공정성과 차별 금지 뭐 이런 거창한 말까지도 필요하지 않다. 솔직히 꽃단장 하고 나와 2025 대선 비전 같은 걸 발표하는 그들에게 동등하게 ‘대선후보’니 ‘공당 대표’니 대우를 해주는 데 심각한 회의감이 들던 참이다. 누가 보면 이 사람들, 마치 원래부터 헌법 질서와 민주주의 규칙을 준수하고 수호해온 아주 상식적인 국민의 대변인이라도 되는 줄 알겠다.

대선 분위기에 휩쓸려 깜빡하기 십상이겠으나, 불과 한두 달 전으로 돌아가 보자. 권성동 원내대표는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왜 그런 조치가 내려졌는지 한 번쯤 따져봐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전광훈 목사와 전한길 한국사 강사에게 “우리를 대신해 아스팔트 투쟁을 해주니 참 고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경원 의원은 지난 3월1일 “빨갱이는 죽어도 돼” “너(문형배 헌재 재판관)는 나한테 죽어!” “헌재는 산산조각 날 것이다!”와 같은 극우 발언이 난무하는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 무대에 올라 참석자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잊지 말자. 애초 이 조기 대선이 왜 시작됐는지.

홍 전 시장은 ‘적대적 언론사’ 기자의 질문을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질문당하는 사람은 질문을 거부할 자유도 있다. 그래야 공평하다.” 맞다. 다만 조건은 있다. 그가 공인이 아니고, 정치인이 아니고, 대통령을 꿈꾸는 이가 아닐 때 이야기다. 기자의 불편한 질문을 회피하고 거부하고 막아서고 무력까지 휘두르는 자들은 공인의 자격이 없다. 대권을 꿈꾸면 안 된다. 정치를 하면 안 된다. 그래야 정의롭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