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거부할 자유를 드립니다 [편집국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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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하나.
국회 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마치고 나온 그에게 〈뉴스타파〉 기자가 질문을 던지자 취재를 거부한 데 더해 강제로 기자의 손목을 잡고 수십 미터를 끌고 갔다.
홍 전 시장은 '적대적 언론사' 기자의 질문을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질문당하는 사람은 질문을 거부할 자유도 있다. 그래야 공평하다."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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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하나.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앞 계단에 섰다.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출마 선언문에서 나 의원은 자신을 ‘의회주의자’라고 표현했다. 한 기자가 질문했다. “계엄군이 바로 이 국회의사당에 진입할 때, 시민들이 계엄군을 막고 군용차량을 막아설 때 의원님은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고 탄핵안 투표에도 불참했다.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부터 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얼굴이 굳어진 나 의원은 “의견은 다양하니까··· 이런 정도로 답변하겠다”라며 급히 기자회견을 끝냈다. “비상계엄이 위헌이라는 판결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추가 질문이 허공 속에 메아리쳤다.
장면 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기자들 앞에 섰다. 역시 대권 출사표를 낸 그는 정책 발표를 마치고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오마이뉴스〉 기자가 손을 들고 소속을 밝히자 “‘적대적인 언론’은 마지막에 질문해주면 좋겠다”라며 순서를 뒤로 미뤘다. 전날 행사 때도 홍 전 시장은 〈뉴스타파〉 기자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됐어, 저기랑 답 안 할래”라며 자리를 떴다.
장면 셋.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여성 기자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마치고 나온 그에게 〈뉴스타파〉 기자가 질문을 던지자 취재를 거부한 데 더해 강제로 기자의 손목을 잡고 수십 미터를 끌고 갔다. 그 과정에서 “출입금지 조치하라 해” “너네들 여기 있어. 도망 못 가게 잡아” “〈뉴스타파〉는 언론사가 아니다, 지라시다”라고도 말했다.
언론의 자유, 질문할 권리, 공정성과 차별 금지 뭐 이런 거창한 말까지도 필요하지 않다. 솔직히 꽃단장 하고 나와 2025 대선 비전 같은 걸 발표하는 그들에게 동등하게 ‘대선후보’니 ‘공당 대표’니 대우를 해주는 데 심각한 회의감이 들던 참이다. 누가 보면 이 사람들, 마치 원래부터 헌법 질서와 민주주의 규칙을 준수하고 수호해온 아주 상식적인 국민의 대변인이라도 되는 줄 알겠다.
대선 분위기에 휩쓸려 깜빡하기 십상이겠으나, 불과 한두 달 전으로 돌아가 보자. 권성동 원내대표는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왜 그런 조치가 내려졌는지 한 번쯤 따져봐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전광훈 목사와 전한길 한국사 강사에게 “우리를 대신해 아스팔트 투쟁을 해주니 참 고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경원 의원은 지난 3월1일 “빨갱이는 죽어도 돼” “너(문형배 헌재 재판관)는 나한테 죽어!” “헌재는 산산조각 날 것이다!”와 같은 극우 발언이 난무하는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 무대에 올라 참석자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잊지 말자. 애초 이 조기 대선이 왜 시작됐는지.
홍 전 시장은 ‘적대적 언론사’ 기자의 질문을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질문당하는 사람은 질문을 거부할 자유도 있다. 그래야 공평하다.” 맞다. 다만 조건은 있다. 그가 공인이 아니고, 정치인이 아니고, 대통령을 꿈꾸는 이가 아닐 때 이야기다. 기자의 불편한 질문을 회피하고 거부하고 막아서고 무력까지 휘두르는 자들은 공인의 자격이 없다. 대권을 꿈꾸면 안 된다. 정치를 하면 안 된다. 그래야 정의롭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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