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배운’ 국민의힘이 버려야 할 착각

문상현 기자 2025. 6. 16.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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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은 계엄과 탄핵을 외면하고 양당 대결 구도 복원에 사활을 걸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움직임과 비슷하다. 과거의 경험은 미래를 담보하지 않는다.
제21대 대통령선거일인 6월3일 저녁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개표 상황실 자리가 상당수 비어 있다. ⓒ시사IN 박미소

의석 107석을 가진 소수 야당이 된 국민의힘이 대수술을 앞두고 있다.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라는, 조기 대선 기간 애써 덮어두고 외면해왔던 깊고 굵게 파인 상처가 있다. 스스로 아물 만한 크기가 아니다. 여러 갈래로 갈라져서 봉합하기도 쉽지 않다. ‘심리적 분당 상태’란 말이 나올 정도로 계엄·탄핵 사태를 둘러싼 내부 분열이 심각하다.

정당 내 주도권을 잡은 주류 세력이 공간을 내주지 않으면 소장파는 이탈한다. 이탈이 시작된 정당이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은 떨어진다. 그러나 소장파의 이탈이 크고 빨라질수록 주류 세력의 주도권은 단단해진다. 정당과 진영 전체 경쟁력이 떨어져도 주류 세력은 내부 지배권을 더 공고하게 가져간다. 이번 조기 대선 기간에 당권 경쟁을 벌인 국민의힘이 정확히 이 흐름을 따라갔다(〈시사IN〉 제923호 ‘대선보다 당권? 국민의힘 이중 전선’ 기사 참조).

낯선 장면이 아니다. 국민의힘은 경험이 있다. 2017년 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가 발생하면서 한국 보수를 대변해오던 새누리당이 붕괴하고 갈라졌다. 당시 새누리당 내부에서 탄핵을 찬성한 세력이 이탈해 신당(바른정당)을 창당했다. 곧바로 ‘박근혜 탄핵 반대’ 여론을 잡으면 내부 주도권을 쥐는 역설적인 구도가 등장했다.

당시 바른정당은 두 가지 기획을 동시에 추진했다.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보수의 적통’ 주장 전략과 새 인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내세운 변화였다. 두 기획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적통 전략은 보수 지지층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혀 외면받았다. 반기문 전 총장을 앞세운 변화는 대선 출마 선언도 못하고 물거품이 됐다.

바른정당이 이륙부터 실패하면서, 자유한국당(새누리당이 당명 교체)은 기존 보수층의 지지만 확보해도 보수 내부 경쟁에서 이길 수 있게 되었다. 바른정당과 달리 이탈하는 대신 광장에 나가 태극기 부대와 손잡고 보수 진영의 주류로 자리를 굳혔다. 자유한국당은 2017년 조기 대선에서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지만 강성 지지층의 결집을 이끌어냈고 결국 보수 진영 내전에서 승리했다. 그 결과 3년 뒤인 2020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라는 보수 진영 ‘빅텐트’가 펼쳐질 때도 주도권이 자유한국당에 있었다.

2025년 봄, 8년 전과 비슷한 장면이 국민의힘에 그려졌다. 윤석열이 탄핵됐고 조기 대선이 열렸다. 국민의힘은 윤석열의 비상계엄 사태 직후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조기 대선 국면에선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내세웠다. 탄핵 반대로 기존 지지층 이탈을 막는 동시에 ‘새 인물’로 변화를 시도한다는 전략이었다. 과거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각각 내세웠던 기획의 종합판이다.

서로 결이 다른 두 기획은 이른바 ‘친윤(친윤석열)’으로 불리는 기존 국민의힘 주류 세력이 주도권을 쥐고 추진했다. 당 안팎에서 나온 내란을 옹호하고 동조한다는 지적은 외면했다. 정당 역사상 최초이자 민주주의 후퇴로 기록된 ‘대선후보 교체 시도’도 불사했다. 내부에선 반성 대신 주류 세력과 소장파들의 당권 경쟁이 노골적으로 이뤄졌다. 탄핵 이후 흐름과 펼쳐진 장면은 비슷했지만 그 품질은 2017년보다 더 나빠졌다.

‘단일 대오 형성’ 전략의 재탕

국민의힘에 이번 대선은 정권 재창출보다 ‘내전’의 성격이 더 컸다. 대통령 당선자를 내지 못한다고 해도 내부 주도권 경쟁에서는 앞서야 했다. 그래야 대선 이후 쇄신이든 재편이든 변화의 주도권을 쥘 수 있고, 2026년 지방선거 공천권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공천과 당선 성적표는 2028년 총선 준비의 뿌리가 된다.

김문수 전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경선에 나섰던 후보들과 6월2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특히 국민의힘 주류 세력 일각에선 내년 지방선거를 생존과 부활의 승부처로 보고 있다. 이들은 입법과 행정을 모두 틀어쥔 최대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탄생했지만, 그만큼 반작용도 크리라 기대하고 있다. 정부·여당의 힘이 센 만큼 모든 행보와 실책이 도드라져 보일 수 있으니, 국민의힘에도 다시 기회가 돌아와 1년 뒤 지방선거에서 ‘심판’할 수 있을 것이란 취지다. 2017년 보수정당의 주류들도 이러한 시도를 했다.

국민의힘 내부에 ‘포스트 친윤 체제’를 둘러싼 권력 재편 작업은 피하기 어렵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만들어져 있다. 다만 재편 방향과 규모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소장파는 윤석열 정부 실패에 책임 있는 세력의 전면 퇴진과 대대적인 인적 쇄신 등 전면 개편을 요구하지만, 영남 기반 주류 세력은 기존 체제 내 안정적 재건을 선호한다. 이들은 윤석열 탄핵 이후 5개월 이상 지속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하반기까지 더 끌고 가는 방안을 꾸준히 주장해왔다. 조기 대선 이후에도 이재명 대통령과 득표율 격차가 한 자릿수(약 8%)에 그치고 영남 지역 지지층 이탈이 우려했던 규모보다는 크지 않은 ‘애매한 패배’를 앞세우고 있다.

주류 세력의 기존 체제 고수는 단순히 당권 수성 목적에만 머물지 않는다. 본질은 ‘관성’에 있다. 국민의힘 주류 세력은 진보·보수 양당 대결 구도만 복원하면, 당장은 예전만 못해도 언제든 다시 과거의 영광을 복원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단일 대오 형성’에 공을 들였던 2017년의 경험에 따른 기대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지만 보수의 가치를 지지하는 유권자층은 두꺼웠다. 이어진 조기 대선에서 보수정당은 ‘붕괴’ 수준의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으나 지지층이 모두 등을 돌리고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과거 보수정당은 이 유권자층을 기반으로 3년 동안 ‘단일 대오 형성’에 공을 들였고, 2020년 범보수 진영이 뭉치면서 양당 대결 구도가 다시 만들어졌다. 이후 서울시장 선거(2021년)과 대통령 선거(2022년)에서 승리했다.

단일 대오 형성 시도는 2025년 국민의힘에서도 확인된다. 윤석열 탄핵 국면에선 내부에서 탄핵을 찬성하는 목소리를 밀어냈고, 조기 대선 과정에선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반성, 윤석열과 거리 두기 대신 ‘반이재명’ 캠페인을 내세웠다. 강성 지지층 이탈을 막고 화살을 경쟁 상대에게로 돌리는 방식이다. 과거 3년에 걸쳐 만든 양당 대결 구도를 60일 사이(조기 대선 기간) 압축적으로 재현했다. 이를 주도한 국민의힘 주류 세력이 과거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다. 주류 세력은 선거에선 패배했지만 생존을 건 ‘정략, 프레임 베팅’에는 성공했다.

윤석열 지지자들 품을지 밀어낼지

그러나 조기 대선 패배와 이후 내부 권력 재편 등 8년 전과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국민의힘이 이러한 처지에 놓인 원인이 해소되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와 이어진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한국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를 수 없는 위치까지 밀어낼 수도 있었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핵심 가치로 내걸어온 보수에게 혁신은 더 이상 퇴행이 없으리라는 보장과 헌정 체제 및 법치주의 원칙, 민주적 다원주의 원리를 훼손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어야 했다. 기존 지지층뿐만 아니라 퇴행을 막아낸 유권자들에게도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했다. 이는 관성에 따른 단순 양당 대결 구도 복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2025년에는 새로운 숙제가 제시됐다. 세분화된 지지층이다. 국민의힘 주류 세력으로부터 이탈한 지지층은 국민의힘 소장파의 주축인 친한계(친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조기 대선에서 독자 노선을 고수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국민의힘에서 은퇴’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 등으로 갈렸다. 보수 진영 재편과 재정렬 등이 거론된다. 다만 각자의 방식으로 ‘변화’와 ‘쇄신’을 주장해온 이들 역시 결과적으로 ‘반이재명’ 전선을 펼치며, 큰 틀에서 주류 세력과 다르지 않은 양당 대결 구도 복원 전략에 집중한 측면도 있다.

윤석열 지지자들이 3월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탄핵 반대 집회를 열었다. ⓒ시사IN 박미소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이후 윤석열을 지지한 일부 극우 세력은 2017년 자유한국당과 태극기 부대가 한 몸처럼 움직였던 모습과는 결이 다르다. 윤석열 지지자들은 조기 대선 막판 김문수 후보를 지지하긴 했지만, 전반적인 선거 기간 윤석열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인 국민의힘 주류 세력을 비판하면서 별도의 세력을 확장해왔다. 과거 자유한국당은 범보수 빅텐트(미래통합당)를 치면서 강성 지지층인 태극기 부대를 밀어냈다. 국민의힘은 기존 지지층과 다른 길에 들어선 윤석열 지지자들을 울타리 안으로 받아들일지 밀어낼지도 정해야 한다.

미래는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구성과 원칙 위에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단일대오 형성과 양당 대결 구도 복원에 따른 정권교체 전략은 이미 한 차례 작동했던 과거의 유산이다. 그러나 두 번째 대통령 탄핵과 두 번째 보수진영 붕괴는 그 유산에 기댔던 결과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2025년 6월, 국민의힘은 과거 유산 복원과 새로운 미래라는 갈림길에 섰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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