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중국, ‘트럼프 관세’로 화해 무드?…한시적 오월동주 가능성 [최준영의 글로벌 워치]
‘중국산 덤핑’에 대한 유럽 두려움 여전…근본적인 관계 개선은 미지수
(시사저널=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취임 이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과를 통한 무역 불균형 해소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해 왔지만 거의 모든 국가에 최대 50% 관세를 부과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상호관세 발표 이후 세계 각국은 나름의 방식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베트남을 비롯한 일부 국가는 미국산 제품에 대한 무관세 적용 및 항공기 등 미국 제품 대량 구매를 약속하면서 협상에 나서고 있다. 중국의 경우 보복관세를 부과하며 타협의 뜻이 전혀 없음을 공개적으로 내비치면서 끝까지 해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일단 미국과의 협상을 희망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보복관세를 비롯한 상응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음을 밝히고 있다. 모두가 미국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는 상황이다.
EU, 中 전기차 관세 대신 최저가 설정 검토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는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점점 멀어지던 EU와 중국을 가깝게 하고 있다. 노골적으로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기존 규칙을 무시하는 미국에 맞서기 위해서는 서로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양측은 작년에 EU가 부과한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과세를 폐지하고 대신 최저가격 설정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U는 2024년 10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최대 45.3%의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일반 자동차에 대해 10%의 관세를 적용하고 있는데, 여기에 더해 전기차 회사별로 17~35%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세 대신 최저가격을 설정하는 데 양측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중국은 즉각 이런 사실을 공개했고, EU 역시 최저가격이 관세만큼 효과적일 경우 얼마든지 협상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통상적으로 최저가격은 단순하며 동질적인 제품에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다. 자동차의 경우 제품 특성·품질·가격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최저가격을 적용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돼 왔다. EU의 입장 변화에 대해 주요 자동차 업체들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독일의 경우 작년 자동차 매출의 3분의 1을 중국에서 거뒀다. 무역 갈등이 격화될수록 수출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상징하는 전기차에 대한 합의에 대해 중국과 EU가 긴밀한 동맹세력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아직까지 양측이 함께 미국에 맞서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정학적 측면에서 두 세력은 여러 가지 협력의 필요성이 존재하지만 기존에 형성돼온 무역 및 경쟁 관련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양측 모두 수출 주도형 경제 체제라는 것이다.
최근 중국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전기차와 친환경 기술 부문에서 양측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EU 입장에서 보면 중국은 미국 다음의 교역 상대국이지만, 그동안 여러 차례 관세와 보복 조치를 반복해 왔다. EU는 중국이 전기차, 이차전지, 철강, 알루미늄 등 핵심 산업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시장을 왜곡하고 유럽 기업들에 피해를 주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작년에 시행된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는 이러한 갈등 속에서 이뤄졌다. EU의 관세에 대해 중국도 EU산 돼지고기 등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시작하는 등 양측은 갈등을 빚어왔다.
미국의 관세 부과 이후 EU 산업계는 중국산 제품이 대거 유럽으로 진입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미국 관세의 간접적 영향을 우려하면서 중국산 제품의 흐름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유럽 시장에 세계적인 과잉생산을 흡수할 여력이 없음을 강조하면서 어떠한 덤핑도 용납할 수 없다고도 강조했다.
미국의 관세 부과는 양측의 갈등 관계를 완화하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지만,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분석이 많다. 근본적으로 중국의 과잉생산 능력이 정리되지 않는 이상 양측의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적 이슈에 더해 중국의 인권에 대한 EU 의회 차원의 집요한 문제제기와 비난은 양측의 불신을 깊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로 생긴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중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높다. EU 입장에서 보면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서 일방적으로 미국을 지원하기보다는 균형을 잡아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아나 전쟁에서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이중용도(민간과 군사 용도로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이나 기술) 제품 수출을 줄이고 중국 내수 진작과 관련한 시장 개방 및 비관세 장벽 폐지 등을 얻어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해관계 복잡한 EU…빈틈 파고드는 中
문제는 EU 내부의 분열이다. 중국에 대한 입장은 회원국별로 크게 다르다. 중국은 이러한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다. 개별 회원국에 대한 설득을 통해 통일된 입장을 약화시키고 있다. 당장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4월11일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회담하면서 미국 관세에 대한 대비를 위해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독일 역시 중국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EU 회원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 전기차 업체 BYD를 비롯한 중국 대기업들이 유럽에 현지 공장을 건설하면서 창출할 수천, 수만 단위의 고용을 마다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양측의 근본적인 관계 개선과 변화를 위해서는 2023년 2910억 유로(약 471조원)에 달했던 유럽의 대중 무역적자 축소가 필요하다. 미국이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이유로 고율의 상호관세를 부과한 것처럼 EU 역시 유사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독주와 횡포에 맞서기 위해 서로 친밀함을 강조할 수 있지만 EU 집행부는 중국에 대해 체제적 경쟁자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미국 시장 접근이 어려워지면서 대체시장으로서 유럽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가격 인하를 통한 유럽 시장 점유율 확대는 또 다른 긴장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상호관세가 협상을 통해 최종적으로 어떻게 정리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이 유럽과 더불어 중국을 견제해 왔던 구도가 크게 손상됐다는 점이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기술 영역에서 미국과 협조해 왔던 유럽이 중국과 손을 잡게 된다면 미·중 갈등 양상은 중국 우위로 한순간에 전환될 수 있다. 미국이 상호관세라는 명분을 고수하면서 유럽과 대립을 이어갈지, 아니면 대화 국면으로 전환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양측의 균열을 활용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