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모습 안보이려 표정관리… 흔들릴땐 맘속 클래식 틀어요”

박구인 2025. 4. 20.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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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인] ‘최초의 우승 여성 감독’ 기록 여자농구 부산 BNK 박정은
박정은 감독이 지난 15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 감독은 “선수들이 나를 여자농구 선배가 아닌 지도자로 봐주길 바랐다”며 “선수들에게 안정감을 심어줘야 한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박정은 부산 BNK 감독은 지난달 여자프로농구 WKBL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거머쥔 이후 쉴 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부임 4년 만에 여자 사령탑 최초의 우승이라는 새 역사를 쓰면서 관심이 집중된 터다. 박 감독은 “고생 끝에 하나의 업적을 만든 건 맞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현역 시절 WKBL 최고의 슈터로 명성을 쌓았던 그는 고향 부산이 연고지인 BNK가 전국적 사랑을 받는 것은 물론 한국 여자농구 전체가 한 단계 도약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BNK의 창단 첫 우승과 함께 2024-2025시즌은 지난달 20일 막을 내렸지만 박 감독은 여전히 많은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하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만난 박 감독은 “현역 시절에 우승했을 때보다도 더 바쁜 것 같지만 괜찮다. BNK의 첫 우승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많은 덕분에 기분 좋게 고생한다는 생각을 한다”며 밝게 웃었다.

박정은 감독은 지난달 챔프전 우승 트로피를 따내며 WBKL에서 선수와 지도자로 모두 정상을 밟았다. WKBL 제공


BNK는 지난달 20일 시리즈 3연승을 거두며 챔프전 우승 트로피를 따냈다. 박 감독은 여자 사령탑 최초의 우승에 더해 WKBL에서 선수와 지도자로 모두 정상을 밟는 첫 번째 사례를 남겼다. 그는 용인 삼성생명에서 뛴 현역 시절 다섯 차례 우승을 경험했다. 2013년 은퇴 후 삼성생명 코치, WKBL 경기운영본부장 등을 거쳐 2021년부터 BNK 지휘봉을 잡았다.

박 감독은 “무엇보다도 여자농구 BNK라는 팀의 존재를 제 고향 부산에 알린 계기가 된 것 같아 매우 기쁘다”며 “여성 지도자 최초라는 타이틀을 떠나 동등하게 경쟁해서 우승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 더 의미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선수 때보다 감독으로 우승한 것이 더욱 값지다고도 했다. 그는 “감독은 팀 전체를 꾸리고 조립해 나간다는 생각으로 시즌을 치른다. 우리 선수들이 코트에서 춤을 출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줘야 하지 않나”라며 “개인적인 부분을 먼저 생각하는 선수 때보다 힘든 게 더 많았다”고 털어놨다.

BNK의 우승을 두고 박 감독의 ‘언니 리더십’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시간이 나는 대로 티타임을 적극 활용해 선수들과 끊임없이 소통했다. 선수들마다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소통 방식도 달리했다고 한다. 때로는 진짜 친구나 언니인 것처럼 감독의 무게감을 내려놓고 먼저 다가갔다. 직접 선수들을 웃기면서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챔프전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한 안혜지는 장·단점이 명확했다. 신장은 164㎝로 작지만 스피드와 체력, 빼어난 패스 센스를 갖췄다. 슛에 대한 약점이 부각될수록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경우가 많았다. 박 감독은 “팀을 이끌어야 하는 가드 안혜지와 얘기를 많이 나눴다. 상황에 따라 슛이나 패스를 결정하는 능력을 강조했던 것 같다”며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스스로 자신의 공격 단점을 깨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올 시즌 가장 많이 성장한 선수”라고 말했다. 안혜지는 BNK가 우승을 확정한 경기에서 3점포 3방을 꽂는 강심장의 모습을 보여줬다.

많은 대화에도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했다. 평소 훈련에서만큼은 양보가 없었다. 박 감독은 “선수들이 저를 여자농구 선배가 아닌 지도자로 봐주길 바랐다. 단호하게 혼을 낼 때도 많았지만 단순히 감정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스스로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어떤 상황에서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가장 힘들었단다. 챔프전은 지도자로 우승 경험이 없었던 박 감독에게도 정말 어렵고 긴장감이 넘치는 무대였다. “선수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안정감을 심어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1차전에서 16점 차로 지고 있을 때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으려고 마음속에서 클래식을 틀고 있었다.”

우승 감독이 됐지만 그는 “부족한 부분이 참 많았다”고 되돌아봤다. 박 감독은 “매 경기 최선을 다해 겨우 정상에 올랐지만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마음뿐이다. 주전은 물론 후보 선수들까지 상황에 따라 적재적소에 기용할 수 있는 경기 운영 노하우를 터득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수의 전술적 활용이나 교체에 능한 경험 많은 지도자 선배들을 보면서 느낀 점이 많다. 아직 제가 내공이 안 쌓여서 미흡한 부분들이 많은데 다음 시즌엔 그런 부분들을 배워서 보완하고 싶다”고 말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한국과 러시아의 예선 경기에서 레이업슛을 성공시키고 있는 박 감독.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제공


현역 때 4회 연속 올림픽에 나섰던 박 감독은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이 ‘여랑이(여자 호랑이)’로 불리던 시절의 주역이었다. 리그 행정과 지도자 경험을 모두 갖춘 그는 자신이 선수로 몸담았던 여자농구 전체의 발전에도 관심이 많다. 올 시즌 도입됐던 아시아쿼터 제도에 대한 생각도 드러냈다.

박 감독은 “일본 선수들이 리그에 많이 들어왔는데 하나의 자극제가 돼야 한다. 유소년기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서 많은 경기를 소화한 일본 선수들은 정말 기본기가 좋다”며 “농구를 대하는 열정이나 진지한 자세가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선수들이 절대 위축될 필요는 없다. 우리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영리하고 틀에 박히지 않은 창의적인 농구를 하는 능력이 좋다”며 “엘리트 체육의 인프라가 좁아지다 보니 기본기가 떨어진다는 우려가 많은데, 차근차근 해결될 문제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 감독은 WKBL이 발전하려면 코트 위 선수들이 더욱 빛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각자가 실력 성장을 이루는 것은 기본이고, 프로다운 자세로 팬들과 마주해야 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감독인 그가 BNK의 유니폼과 슈팅저지 디자인, 선수 프로필 사진 촬영 등까지도 직접 섬세하게 챙겼던 이유다.

박 감독은 “프로 종목도 시대에 따라 트렌드가 바뀐다. 우리 선수들이 조금 더 멋지고 세련된 스타처럼 보이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했다”며 “팬을 대할 때도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고, 받은 관심과 사랑을 실력으로 보답하길 기대했다. 올 시즌엔 제 상상이 현실이 됐다”며 미소를 보였다.

박 감독이 지난달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 하나은행 2024-2025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 3차전 아산 우리은행과의 경기에서 작전을 지시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다음 시즌엔 한국 여자농구의 최전성기 주역들이 지도자로 WKBL 무대에 대거 발을 들인다. 기존 박 감독과 전주원 아산 우리은행 코치, 이미선 삼성생명 코치에 더해 최윤아 인천 신한은행 감독과 정선민 부천 하나은행 코치가 새롭게 합류한다. 박 감독은 “처음 코치를 할 땐 여성 지도자가 많지 않았다. 우려의 시선이 많았고 외롭기도 했지만, 다들 하나씩 부딪치고 배우면서 능력을 인정받는 것 아닌가 싶다”며 “여자농구 경험을 갖춘 분들이 이제 현장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현상이라 본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시즌 내내 ‘에너지’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BNK가 우승 직전 시즌 정규리그 최하위에 그쳤던 탓에 침체한 선수단 분위기를 바꾸고자 애를 썼다. 그는 올 시즌 BNK의 에너지 레벨을 ‘80점’으로 평가했다.

박 감독은 “베테랑 김소니아가 코트에서 에너지를 잘 뿜었고, 주장 박혜진은 경기장 안팎에서 팀을 잘 돌봤다. 여기에 안혜지와 이소희, 이이지마 사키가 잘 녹아들었다”며 “나머지 20점은 앞으로 제가 분발해서 채워야 할 것 같다. 선수들이 더 흥이 나도록 도와야겠다”고 말했다.

박 감독이 장차 바라는 BNK의 모습은 ‘전국구 구단’이다. 연고지 부산 밖에서도 큰 사랑을 받는 팀으로 거듭나는 게 목표다. 박 감독은 “위기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농구, 승리에 목마른 BNK 선수들이 보여주는 근성 있는 플레이에 반해 여자농구에 입문하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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