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한 벌도 못 팔아, 언제 짐 싸야 할지 몰라요”…‘핫플’ 가로수길이 어쩌다
“여기 한 달 임대료가 270만원인데, 저 앞 메인거리는 2~3배는 더 줘야 해요. 장사는 안 되고, 임대료는 비싸니 상인들은 다 나가고 공실만 남은 거죠.”
인근 신발가게 업주도 “5~6년 전엔 여기도 장사가 괜찮았다. 코로나19로 매출이 반 토막 날 때도 버텼는데, 지금은 3분의1토막 수준”이라며 “이쪽 거리에 있던 옷 가게들이 싹 빠지고, 화장품 가게도 다 문을 닫았다”고 했다.
장기화된 불황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 최근엔 정치·경제적 불확실성까지 커지면서 소비를 더 줄이는 모습인데, 특히 의류·신발·악세사리 등을 취급하는 상점들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18일 세계일보가 서울 소재의 일반의류 상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일반의류숍과 유아의류숍 상점 수가 급감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반 의류숍 업체 수는 2019년 4분기 기준 6만1842곳에서 2021년 6만2185곳, 2023년 6만2139곳으로 유지되다 2024년 5만8706곳으로 크게 줄었다. 1년 새 3433곳이 폐업한 것이다.
유아의류를 취급하는 상점도 상황은 비슷했다. 2019년 4분기 1861곳이던 점포수는 2021년 1840곳, 2023년 1807곳으로 유지되다 2024년 1718곳으로 줄었다. 지난해 서울에서만 1161곳이 문을 닫았다.
지난 17일 찾은 가로수길은 한산했다. 한때 연예인도 자주 ‘출몰’한다며 젊은층과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주목받던 가로수길의 명성은 잊혀진 듯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손님들로 북적였던 거리 초입 카페 건물 전체가 비워져 방치되고 있었다. 먼지만 쌓인 유리창엔 ‘임대 문의’ ‘전층 임대’ 스티커만 남았다. 그 옆으로도 건물 절반은 공실이었다. 철거할 때 떼어낸 간판 흔적만 이곳이 의류숍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골목 안쪽으로 걸어가며 50개의 상점을 지나는 동안 20곳 정도가 비어 있었다. 간간이 문을 연 상점 안도 손님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골목 안쪽 건물 1층과 2층 모두 의류숍이었던 이곳은 규모를 줄여 1층만 영업 중이었다.
개강시즌이면 활기가 돌던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지하철역 입구부터 이대 앞까지 즐비하던 의류숍과 네일숍, 화장품숍이 있던 자리는 텅 비어 흉물로 변한 지 오래다. 건설자재들이 쌓여있는 입구에는 ‘철거 예정’, ‘절대 출입금지’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이대역 4번 출구 앞에서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30대 강씨는 이대역 인근 의류숍이 사라지는 이유에 대해 “2023년 ‘업종제한이 풀리면서 의류숍이나 네일숍이 있던 건물을 통으로 허물고 오피스텔이나 타 업종으로 변경하는 곳들이 많다”고 했다. 상점 앞에 붙은 ‘임대문의’ 현수막에 대해선 “공실 대부분 계약이 끝났고, 지난해 인테리어 비용이 늘면서 잠시 공사가 중단된 곳은 몇 군데 있다”면서 “공사 재개까지 ‘단기임대’를 받는 것이고, 상권이 다 죽은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거리에서 의류숍이나 악세사리숍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는 불황에 당장 지출을 하지 않아도 되는 ‘꾸밈비(의류·화장품·미용)’ 항목부터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1일 통계청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 2월 준내구재 소매판매액지수(계절조정)는 전월보다 1.7% 감소했다. 준내구재는 예상 사용수명이 1년 내외인 의류, 신발, 소형가전 등을 뜻하는데, 의류는 1.7%, 신발 및 가방은 8.7% 줄었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제품을 찾는 불황형 소비가 늘었고, 코로나19 이후 구매 패턴이 ‘비대면’으로 옮겨간 것도 이유로 꼽힌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서민층은 꼭 필요한 상품만 ‘온라인 최저가’로 구입하고, 프리미엄 제품을 소비하는 계층은 고가의 브랜드 위주로 구매한다”면서 “소비 양극화로 소상공인 폐업률도 늘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불황과 고물가 기조, 계엄 등의 영향으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임대료와 인건비 감당에 허덕이는 소상공인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면서 “정부 예산의 조기 집행 등 소비 진작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윤희 기자 py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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