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교수에게 답함
※한겨레21 제1555호 표지이야기에 실린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교수의 글에 대해 이해영 한신대 교수가 반론을 보내와 싣는다._편집자
서로의 논지를 모르는 바 아닐진대, ‘익명’으로 ‘처리’되어 일방의 진술만 전달된 일은 유감이지만 이제라도 공론의 장이 열렸으니 다행이다.
박노자 교수는 이렇게 썼다. “한때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운동의 지도자였던 한 유명 지식인은 ‘다극화를 위한 전쟁’ ‘집단 서방과의 대결’ ‘우크라이나 나치들의 돈바스 인민 학살’ 등 러시아 정권 쪽 프로파간다를 거의 받아쓰기하듯 그대로 한국어로 재생산”했다. 박 교수의 글을 다시 읽으매 나 또한 그 언설에 “경악”하게 된다. 왜냐하면 박 교수의 의론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일파에 심하게 경사되어 있고 또 ‘루소포비아’(반러 인종주의) 증상에 관한 한 젤렌스키와 동맹한 ‘네오나치’와 차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근사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박 교수의 논지에 다음으로 답하면서, 그 이유를 살핀다.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침략은 침략 아닌가
첫째, 그에 따르면 “미국이든 중국이든 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하거나 그 변방 지역의 민주화나 자치 강화 운동을 강경 탄압한다는 것은 한국에서 자연히 비판의 대상”이 된다. 맞다. 이런 ‘약자 선망’은 탓할 바 아니다. 2014년 5월2일 오데사에서 우크라이나 네오나치들은 그해 초 일어난 ‘유로마이단’에 반대하는 러시아계 주민 수십 명을 방화 학살했다. 사건 발생 뒤 10년, 2025년 3월 유럽인권법원은 피해자의 주장을 받아들여 우크라이나 국가에 배상 판결을 내렸다. 박 교수가 말하는 “변방 지역의 민주화나 자치 강화 운동”을 우크라이나 정부는 ‘반테러작전’(ATO)이라고 부르면서 무자비한 살육으로 응답했고, 그렇게 돈바스를 ‘침략’했다. 전투원을 제외하고 1만 명 가까운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됐다. 우크라이나 나치 안드리 빌레츠키는 지금의 전쟁을 2014년 내전의 연장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2014년 우크라이나 정부의 돈바스 침략은 침략이 아니고, 2022년 러시아의 전면전 개입‘만’ 침략인가. 나는 박 교수의 잣대가 ‘이중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둘째, 러시아 쪽은 평화의 전제로 “근본 원인” 제거를 말한다. 즉 “나토 동진”이다. 하지만 박 교수에 따르자면, 누가 이를 말하면 “러시아의 침략 책임을 상대화시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의견을 타박하면서 “만약 친중국 방향으로 간 멕시코를 미국이 침략했다면 이들의 반응이 과연 이와 같았을지 묻고 싶을 뿐”이라 했다. 그렇다. 좋은 예를 들었다. 만일 중국 비밀정보부가 멕시코의 반정부단체에 자금과 무기를 조달하고, ‘칼라혁명’을 통해 친중국 정권을 세우고, 러시아 해외정보부가 캐나다 접경지대에 비밀군사기지를 건설했다면 미국은 어떻게 했을까. 나토 동진은 미국 외교의 치명적 실책이며 필시 전쟁을 부를 것이라고 수십 년 동안 저 수많은 서방 지성이 경고했다. 2024년 뉴욕타임스는 2014년부터 미 중앙정보국(CIA)이 러시아 국경지대에 12개의 비밀기지를 구축했다고 보도했다. 또 지난주 같은 매체는 이 전쟁을 독일 비스바덴의 미 육군 유럽사령부에서 지휘했다고 보도했다. 2022년 4월 양쪽 간 이스탄불 합의를 엎었던 영국의 전 총리 보리스 존슨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서방의 패권”을 위한 “대리전쟁”이었다고 말한다.
푸틴은 제국 복원 아닌 부국강병 추구
셋째,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를 대러 협상의 ‘카드’로 이용하는 장면을 보면서 우크라이나의 자주독립 투쟁이 본질상 ‘친미’와 관계가 없음은 누구나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박 교수는 썼다. 박 교수의 젤렌스키 ‘선망’은 선택이다. 하지만 이 전쟁이 우크라이나의 “자주독립 투쟁”이고 “친미와 관계가 없”는지는 검증 대상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네오나치의 지도부는 우선 미국을 끌어들여 러시아를 분쇄하고 그다음 서방의 ‘자유주의자’와도 일전을 치를 계획이 있었다. 그런 뒤 ‘흑해에서 발트해까지’ 즉 ‘인테르마리움’이라는 백인들만의 대제국을 건설하자고 했다.
나는 박 교수가 이 전쟁을 가리켜 “자주독립 투쟁”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절망감을 느낀다. 네오나치가 ‘자주파’란 말인가. 1991년 이후 우크라이나 독립 30년사의 한편에는 ‘갈리시아’라 불리는 서우크라이나가 있다. 이 서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주도하는 집단이 과거 나치에 부역해 수십만 폴란드인 등을 학살했던 반데라주의자(우크라이나 극우 민족주의자 스테판 반데라를 추종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민족주의는 ‘시민적’(Civic)이라기보다 ‘인종적’(Ethno)이다. 그런 점에서 나치즘과 맥을 같이한다.
또 다른 한편에는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인종적으로 러시아인이고, 그 말을 쓰는 ‘돈바스’가 있다. 서우크라이나 쪽이 2014년 권력을 장악하자 이들은 러시아어를 차별했고, 최근 그 사용을 아예 불법화했다. 2014년 전까지만 해도, 동서 우크라이나는 가까스로 균형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2014년 유로마이단은 이 균형을 붕괴시켰다. 즉 박 교수가 말하는 우크라이나의 “자주독립 투쟁”은, 돈바스에서는 선전포고와 동의어다. 우크라이나의 인종 구성으로 보자면 이 주장은 또 ‘제노사이드’ 리스크를 의미한다. 러시아계는 우크라이나에선 소수지만, 바로 뒤에 러시아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국제전화한다.
넷째, 박 교수는 “투쟁의 본질은 궁극적으로 푸틴 정권이 복원하고자 하는 러시아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에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푸틴이 “러시아 제국의 복원”을 목표로 하는가. 이 주장은 저 흔한 중·러 제국주의론과 궤를 같이한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에는 3가지 국가전략담론이 존재한다. 첫째는 옐친식 자유주의다. 둘째는 ‘제국’ 담론이다. 솔제니친과 최근의 알렉산드르 두긴도 여기에 포함된다. 러시아 제국의 복원이 목표다. 셋째는 부국강병론이다. ‘강한’(Strong) 러시아를 지향한다. 이 세 담론은 목표도 전략도 인물도 달리한다. 푸틴은 실용적 부국강병론자에 가깝다. 그리하여 박 교수의 주장은 과녁을 벗어난 것이다.
자주독립 투쟁? 반러 영구전쟁!
다섯째, 박 교수는 말한다. “진보마저도 ‘국익’을 내세운다는 것은 과연 어느 정도 사회적 보수화를 반영하는 것일까.” 즉 ‘국익=보수화’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그러면 이른바 진보는 국익이 아닌 반국익을 말해야 하는가. 한국 진보는 어떤 운명을 타고났기에 국익을 말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 그래서 진보는 미국, 일본 그도 아니라면 ‘사해동포주의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가. ‘국익’이란 개념은 실은 불편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개념을 민중의 이익이란 말로 재정의해 사용한다. 한국의 진보는 그것이 인류 보편적 가치에서 일탈되지 않는 한 누구보다 먼저 민중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나는 ‘역사학자’ 박 교수를 우리의 훌륭한 학문자산으로 본다. 하지만 그의 루소포비아는 아니다. 이 세계관은 친러/반러의 흑백에 강박되어 천연색 현실을 보지 못하는 단견이다. 박 교수는 이 전쟁이 우크라이나의 ‘자주독립 투쟁’이라고 했다. 이 말의 실제 함의는 반러 영구전쟁이다. 그런 한에서 이 규정은 잘못된 것이다. 박 교수의 치명적 오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