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감사합니다"…두봉 레나도 주교, 마지막 순간까지 빛났다

서믿음 2025. 4. 14.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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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는 두봉 레나도 주교님께서 생전에 가장 자주 사용하신 말씀입니다. 마지막에 남기신 말씀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였습니다."

6·25 전쟁 직후 한국 땅을 밟아 71년간 사목한 프랑스 출신 두봉 레나도 주교는 세상과 작별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감사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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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두봉 레나도 주교 장례미사
지난 10일 선종
마지막 순간까지 "감사"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는 두봉 레나도 주교님께서 생전에 가장 자주 사용하신 말씀입니다. 마지막에 남기신 말씀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였습니다."

14일 경북 안동시 목성동주교좌성당에서 두봉 레나도(프랑스명 르네 뒤퐁) 주교 장례미사가 엄수되고 있다. 연합뉴스

6·25 전쟁 직후 한국 땅을 밟아 71년간 사목한 프랑스 출신 두봉 레나도 주교는 세상과 작별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감사를 잊지 않았다. 14일 오전 경북 안동시 소재 천주교 안동교구 주교좌 목성동성당에서 열린 장례미사에서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두봉 주교의 마지막 순간을 위와 같이 전했다.

두봉 주교는 지난 7일 뇌경색으로 안동병원에서 긴급 시술을 받고 의식을 회복했으나 10일 마지막 고해성사를 남기고 선종했다. 선종 당일 오전 고해성사를 하길 희망했고, 비록 힘에 겨워 많은 말을 남기진 못했으나, 고해성사를 마친 후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오후 4시경 호흡이 급격히 불안정해지더니 오후 7시경 마지막 기도 후 숨을 거뒀다.

장례미사에서 권 주교는 두봉 주교에 대해 "마음으로도 몸으로도 가난하게 사시면서 가난한 이들과 조건 없이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살며 함께 하셨다"며 "믿는 사람에게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하느님 나라와 복음을 있는 그대로, 진리와 가치 자체를 있는 그대로 전하고자 하셨다"고 말했다.

교황도 애도 메시지를 전했다. 주한교황대사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는 두봉 주교님의 선종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셨으며 주교님과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 그리고 안동교구 전체에 진심 어린 애도와 위로를 전하신다"고 말했다.

장례미사에서 두봉 주교가 지난해 4월10일 녹음한 음성이 울려 퍼질 때, 신자들은 두봉 주교의 특유의 웃음소리에 따라 웃고 또 울었다. "금년에 한국에 온 지가 70년이에요. 70년 동안 그래도 사랑하고 행복했다. 내가 참 복을 받았다."

장례미사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 염수정 추기경,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등 한국천주교 주요 인사와 가톨릭 농민회 관계자 및 신자들이 참석했다.

두봉 주교는 1929년 프랑스 오를레앙의 가톨릭 신자 가정에서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50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한 뒤 1953년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12월 한국으로 파송됐다. 천주교 대전교구 대흥동성당 보좌신부, 대전교구청 상서국장,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을 거쳐 1969년 초대 안동교구장으로 임명되고 주교품을 받았다.

14일 경북 안동시 목성동주교좌성당에서 엄수된 두봉 레나도(프랑스명 르네 뒤퐁) 주교 장례미사 고별식에서 신자들이 두봉 주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정희 정권 당시에는 가난한 사람과 농민을 위해 헌신하다 추방될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천주교 신자이며 농민회 영양군 청기 분회장이던 오원춘 씨가 감자 경작을 권하는 영양군의 제안을 받고 "종자가 불량해 싹이 나지 않는다"고 항의했다가 납치되자 사제들과 함께 박정희 정권에 맞섰다가 추방될 위기에 놓였다.

안동교구장을 맡던 1990년 12월에는 '한국인이 교구장을 맡아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정년을 14년 앞두고 물러났다. 근래까지 경북 의성에서 지내며 멀리서 찾아오는 신자들과 만나 교제했다.

저서로는 수필집 '사람의 일감'(문음사, 1989년)과 '가장 멋진 삶'(바오로딸, 2011년)을 남겼다. 1892년 프랑스 나폴레옹 훈장을 받았고, 2019년 법무부가 주관하는 올해의 이민자상(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대한민국 특별국적도 취득했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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