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조선통신사 한·일 우정 걷기…허남정 단장 동행기<6>

2025. 4. 1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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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33일차다.

피로가 누적되니 하나둘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단원이 나타나 마음을 졸이게 한다.

조선 제일의 일본통 외교관인 충숙공 이예 선생의 동상에 참배하고 교토 민단이 주최한 환영식에도 참석했다.

우리가 깃발을 들고 일본 열도를 걷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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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요도가와 강변 유채꽃이 만개한 둑길을 걸어가는 단원들.


오늘은 33일차다. 피로가 누적되니 하나둘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단원이 나타나 마음을 졸이게 한다. 하루 평균 30km를 걷고 있다.

조선통신사는 본진 400-500명에다 쓰시마에서 따라온 수행원 1000여 명을 포함한 대행렬이었다. 그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도쿄까지의 완보를 다짐한다.

오늘 출발 장소는 구사츠역. 이곳은 도쿄의 니혼바시에서 시작해 교토에 이르는 동해도길의 52번 째 역참이 있던 곳이다.

시가현의 미카즈키 다이조 지사가 나와서 격려 인사를 하고 출발 구호를 외쳐주었다. ‘GO GO LET’S GO!!!

목적지 오미하치만 시청까지는 24km. 비교적 가벼운 일정이다. 날씨도 구름이 끼어 걷기에 딱 좋았다.

50여 명의 인원이 마트의 주차장 바닥에 앉아 점심 식사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비 예보가 있어 걱정을 했는데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해 오미하치만 성 해자를 둘러보았다. 이 성은 16세기 히데요시의 누님의 아들인 히데쓰구의 거성이었다.

자식이 없는 히데요시가 조카를 양자로 삼아 관백의 자리를 물려주고 본인은 우리의 상왕에 해당하는 태합이 되었다.

그러나 뒤늦게 아들 히데요리가 태어나자 생각이 달라졌다. 죄를 씌워 그를 고야산으로 유배보내 할복케 하고 그의 피붙이들 38명을 참혹하게 처형했다.

히데쓰구의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 오미하치만성 해자길은 벚꽃이 만개했고 유람선이 유유이 떠다니고 있었다.

이번 제 10회 조선통신사는 4월 13일 개막하는 오사카 만국박람회 때문에 3주나 앞당겨 일찍 서울을 출발했지만 이것이 신의 한 수였다.

벚꽃 유채꽃 개나리 진달래 수선화 동백꽃 튤립을 비롯해 온갖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환하게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지난 1주일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토모노우라 그리고 우시마도 등 통신사들의 발자취를 둘러보며 세토내해의 절경에 감탄했다.

오사카 민단에서의 환영식도 잊을 수 없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수십 명의 어머니들이 건물 입구에 도열해 박수를 치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어머니 합창단의 노래를 들으니 그들의 신산했던 고난의 역사가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지막으로 모든 참가자가 손을 잡고 아리랑을 합창했다.

일요일 오사카의 요도가와 강변길에는 시민과 학생들이 한가롭게 각종 스포츠와 가족 단위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걸어가는 강변에는 쓰레기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줍는 사람들이 따로 있냐고 물으니 놀러나온 시민들이 자기 쓰레기는 자기가 책임지고 가지고 간다고 했다.

우리의 일인당 GDP가 재작년부터 일본을 추월했지만 다분히 환율효과다. 그들이 100년 이상 갈고 닦은 선진국의 의식의 수준에 도달하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교토 동지사 대학의 윤동주 시비 앞에서.


교토에서는 재일동포 정조문이 1700여 점의 조선 미술품을 사들여 1988년에 개관했다는 고려미술관을 둘러보았다.

동지사 대학의 윤동주 시비를 찾아 헌화하고 추모식도 가졌다. 교토부 우지시에도 윤동주의 시비가 있다고 한다.

7000여 명의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그의 탄생 100주년인 2017년 시인이 학과 친구들과 야유회를 갔던 우지강변에 시비를 세웠다. 불허하는 시 당국에 맞서 10년간 투쟁을 벌였다고 한다.

조선 제일의 일본통 외교관인 충숙공 이예 선생의 동상에 참배하고 교토 민단이 주최한 환영식에도 참석했다.

교토 국제고등학교에서 온 선생님들께 울산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부탁받은 선물과 편지를 전달했다. 그들도 작년 고시엔 아구대회 우승 기념품을 선물로 가져왔다.

구사츠로 향하는 좁은 언덕길에서는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다. 스포츠카 한 대가 전속력으로 달려내려 왔다.

단원들이 놀라 길 옆으로 바짝 붙어 피했다. 엔도 회장이 아마 조폭일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깃발을 들고 일본 열도를 걷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이틀이나 코스리더를 해주었던 87세 야마다 씨도 생각난다. 참 잘 걸었다. 축지법을 하는 게 아닌가 여겨질 정도다.

시간당 6km를 걷는다고 하니 젊은 사람의 걸음걸이이다. 시력도 양쪽 모두 1.2라고 하는데 작은 키에 몸이 가볍다.

몸에 안 좋은 곳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머리 나쁜 것 빼고는 다 좋다며 농담도 했다. 얼굴이 온화한 기인이다.

저녁에 숙소에서 교류회를 가졌다. 어제 시가현 민단 단장이 준 금일봉으로 단원들에게 맥주를 샀다. 이렇게 오늘 33일차 일정도 무사히 끝났다.

허남정 제10회 조선통신사 단장 겸 정사 (전 한일경제협회 전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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