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국민 신임 박탈할 정도의 중대한 헌법 위반”…‘5개 탄핵 사유’ 반대 의견 한 건도 없었다

김정연.최서인 2025. 4. 5.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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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파면] 헌재 판결 분석
김영옥 기자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는 위헌·위법하다.”

헌법재판관 8명은 4일 오전 11시22분 전원일치 의견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하며 이같이 판단했다. “피청구인은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해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 헌법 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면서다. 이는 12·3 비상계엄 선포 후 4개월여 만에 내려진 첫 사법적 판단이다. 헌재는 계엄 선포에 이은 ‘포고령 1호’와 국회 군 투입, 선관위 불법 압수, 법관 위치 추적 지시 등 다섯 가지 탄핵 사유 모두 “위헌·위법”이라고 판단했다.

헌법 77조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병력으로써 군사상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비상계엄 선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헌재는 그러나 “피청구인은 헌법·계엄법이 정한 위기 상황이 현실적으로 발생했다고 볼 근거가 없었음에도 현저히 비합리적이거나 자의적인 판단으로 계엄을 선포했다”며 계엄 선포의 실체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윤, 국회를 협치 아닌 배제 대상 삼아”
국회 측 변호인단이 4일 헌법재판소 심판정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의 이유라고 주장한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서도 “‘의혹’만으로 중대한 위기라 볼 수 없고, 이는 정치·제도·사법으로 해결해야지 군대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의 줄탄핵 등 야당 전횡’에 대해서도 “선포 당시 국회가 발의한 22건 소추안 중 실제 진행 중이던 사건은 2개뿐이었다”며 “법률안은 재의요구권 등을 행사할 수 있고, 국회의 탄핵소추·입법과 예산안 심의 등 권한 행사가 비상계엄을 선포할 만큼 ‘중대한 위기 상황’을 발생시켰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헌재는 비상계엄 선포 절차도 위법했다고 판단했다. “국무회의 심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계엄 선포문에 국무위원이 부서(서명)도 하지 않았으며 계엄의 이유·종류·시행일시·지역 및 계엄사령관을 공고하지도 않았다. 국회에 통고도 빠뜨렸다”는 이유에서다. 헌재는 이어 “우리나라는 과거 군사정변을 통해 군이 직접 정권을 수립하거나 정치권에서 군을 동원해 정치에 영향을 미친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며 “헌법·계엄법이 정한 절차를 지켰다면 계엄 선포까지 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국군통수권 남용과 군대의 정치적 중립을 위배했다”고 지적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헌재는 “‘경고성 계엄’ 또는 ‘호소형 계엄’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도 못 박았다. 헌재는 “선포 즉시 국민의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제한하게 되는데 ‘경고’나 ‘호소’는 계엄법이 정한 목적에 맞지 않는다”며 “반면에 결국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국회를 방해했는데 ‘경고성’이었다는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모순을 짚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이 국회에 병력을 투입해 계엄 해제 요구권 행사를 방해했다는 점도 인정했다. ‘국회로 군대를 출동시켜라’ ‘국회 안의 인원들을 끄집어내라’ ‘국회 출입자를 전면 차단하라’ 등의 지시를 내린 사실도 모두 인정됐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과 조지호 경찰청장 등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항변했지만 헌재는 “피청구인의 지시가 없었다면 곽종근이 ‘150명이 넘지 않게 할 방법’을 논의할 이유가 없고, 용어를 고려하면 끄집어낼 대상은 국회의원이라 해석될 수밖에 없으며, 곽종근은 일부 용어 차이만 있을 뿐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며 “피청구인의 주장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헌법상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권과 국회의원 심의·의결권 및 불체포특권, 정당 활동 자유 침해”라며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 침해 및 헌법이 정한 국군통수의무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또 변론 과정에서 가장 심하게 다퉜던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등을 통해 주요 인사들에 대한 위치 확인을 시도한 데 대해서도 “피청구인은 처음부터 홍장원에게 계엄 상황에서 방첩사령부에 부여된 임무와 관련된 특별한 용건을 전하고자 한 것이라 봐야 한다”고 인정했다.

병력 투입에 대해 윤 전 대통령은 “질서 유지 목적”이라고 주장했지만, 헌재는 “대테러 작전을 하는 부대가 출동할 이유가 없으며 ‘중과부적으로 원하는 결과가 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봐도 단순 질서 유지 목적이 아니었다”며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받은 ‘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 편성’ 쪽지를 봐도 질서 유지를 위한 병력 파견이었다는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했다.

헌재는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발표된 ‘포고령 1호’의 위헌성도 인정했다. 국회·정당 활동 전면 금지, 언론·출판 통제, 의료인 48시간 이내 복귀 등이 담긴 포고령은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당의 자유, 단체행동권, 직업의 자유, 신체의 자유 침해이며 영장주의 위반”이라고 판단하면서다. 윤 전 대통령이 ‘포고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썼고 자신은 야간통행 금지 조항만 삭제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헌재는 “국민에게 불편을 줄 우려 등으로 야간통행 금지 조항을 삭제했다는 건 오히려 포고령이 실제로 집행되는 걸 용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변호인단이 4일 헌법재판소 심판정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병력을 보내 청사 내에 진입하게 하고 영장 없이 직원의 핸드폰을 압수한 것에 대해서도 “영장주의 위반, 선관위 독립성 침해”가 인정됐다. 헌재는 “선관위에 대한 영장 없는 압수는 계엄하에서도 불가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 및 권순일 전 대법관, ‘이재명 무죄 준 판사’ 등 법관에 대한 위치 추적을 지시한 것도 “이는 현직 법관에게 ‘언제든 행정부에 체포될 수 있다’는 압력을 받게 해 사법권 독립 침해”라고 헌재는 판단했다.

재판관 여덟 명 전원은 이 같은 다섯 가지 위헌·위법 행위가 “헌법 수호를 위해 파면으로 국민의 신임을 박탈해야 할 정도의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그러면서 “이 사건의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에 해당한다”며 “피청구인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게 된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봤다.

윤 전 대통령 측은 “비상계엄은 고도의 통치행위로 사법 심사의 대상이 아니다”거나 “국회 법사위 조사 없이 한 번 부결된 탄핵안을 다시 발의한 것이라 위법한 탄핵소추”라며 절차적 위법 주장도 폈지만 이 또한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탄핵심판 절차는 고위 공직자가 권한을 남용해 헌법·법률을 위반한 경우 그 권한을 박탈함으로써 헌법 질서를 지키는 헌법재판인 점을 고려하면, 비록 계엄 선포가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행위라 하더라도 탄핵심판 절차에서 그 헌법 및 법률 위반 여부를 심사할 수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봤다.

헌재, 윤측 절차적 위법 주장 모두 수용 안해
헌재는 그러면서 윤 전 대통령이 “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22대 국회와의 대립 상황을 병력을 동원해 타개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헌재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헌법이 정한 권한 배분 질서에 따른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했어야 하는데 배제의 대상으로 삼았고 이는 민주정치의 전제를 허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야당이 중심이 된 국회의 권한 행사가 다수의 횡포라고 판단했더라도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며 22대 총선 등 국민을 설득할 2년의 시간이 있었고 국민투표, 헌법개정안 발의, 헌재에 정당 해산 제소 검토 등 자구책도 있었다고 짚었다. 그 결과 헌재는 “계엄의 목적이라고 주장하는 ‘야당의 전횡에 관한 대국민 호소’나 ‘국가 정상화’ 의도가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에 헤아릴 수 없는 해악을 가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관들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 재발의 횟수를 제한하는 입법이 필요하다”(정형식 재판관), 검찰 진술 조서의 증거 인정과 관련해 “탄핵심판에선 형사소송법을 완화해서 적용할 수 있다”(이미선·김형두 재판관), “앞으로는 더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김복형·조한창 재판관) 등의 보충의견을 각각 냈다.

김정연·최서인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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