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대·의료진 손·발 묶고 조준사격”…이스라엘 전쟁 범죄, 막을 길도 없다

선명수 기자 2025. 4. 3. 16:3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구조대원 15명 숨진 채 발견
의도적 처형 정황…이 “불가피했다” 주장
‘ICC 체포영장’ 네타냐후는 헝가리 출국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소속 구조대원들이 가자지구 남부 텔알술탄 지역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은 뒤 모래더미에 암매장된 채 발견된 동료들의 장례를 치르며 애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최근 가자지구에서 동료를 구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모래더미에 암매장된 채 발견된 팔레스타인 구조대원 15명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처형됐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의료진과 구호요원까지 겨냥한 무차별 공격 등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에 고삐가 풀렸다는 비판이 빗발치고 있으나, 정작 제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전쟁 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3일(현지시간) 보란 듯 헝가리로 출국하며 ICC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날 가디언 등 보도에 따르면 집단 매장된 채 발견된 구조대원과 의료진의 시신을 검시한 법의학자 아마드 다헤르는 “총상의 위치 등으로 미뤄 봤을 때 이들은 먼 거리에서 총격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근거리에서 조준 사격을 받아 의도적으로 처형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살된 15명 중 8명은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소속이었으며 6명은 민방위 대원, 1명은 유엔 직원이었다. 이들은 지난달 23일 남부 라파 외곽 텔알술탄 지역에 출동했다가 연락이 끊겼고, 일주일 뒤인 지난달 30일 암매장된 채 발견됐다.

이들은 먼저 공습 현장에 간 구조대가 이스라엘군의 총격을 받아 의료진 2명이 숨졌다는 연락을 받고 동료들을 찾기 위해 출동했으나, 연이어 모두 희생됐다. 이들이 타고 간 구급차와 유엔 차량도 불도저에 의해 완전히 구겨져 모래더미에 파묻힌 채 발견됐다.

희생자 중 일부는 손과 발이 결박된 채로 총상을 입어 이스라엘군이 의도적으로 처형했다는 의혹이 증폭됐다. 이스라엘군이 전시 중에도 국제법상 보호를 받아야 하는 의료진과 구급대원을 차례로 살해해 집단 매장했다는 것이다.

적신월사는 공격 당시 차량에 타고 있던 의료진 한 명과 전화 연락이 닿았으며, 이 의료진이 총격으로 인한 부상 사실을 알리며 도움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몇 분 뒤 이스라엘 군인들이 다가와 “이들을 데려가서 결박하라”고 지시하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린 후 연락이 끊겼다.

2023년 10월 전쟁이 시작된 후 이스라엘은 국제인도법상 전시 중에도 공격이 금지된 병원과 학교 등을 무차별 폭격하며 비판을 받아 왔다. 개전 이후 가자 전역에서 1000명 넘는 의료진이 숨지는 등 무차별 공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의도적으로 처형한 것으로 보이는 15명이 한꺼번에 암매장된 채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국제사회의 비판이 빗발치자 이스라엘은 사건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무력 사용이 불가피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스라엘군은 이들을 태운 차량이 헤드라이트나 어떤 비상신호도 켜지 않은 채 작전 지역에 진입했으며, “수상하게 이스라엘군 쪽으로 다가오는” 차량 여러 대를 향해 발포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적신월사 소속 자원봉사자 문터 아베드는 구급차가 공격을 받았을 당시 차량 내외부 조명을 모두 켜는 등 안전 수칙을 준수했고, 차량 외관의 적신월사 표식과 구조대원 복장 등 구조대인 것을 분명히 식별할 수 있었다고 BBC에 밝혔다.

그는 이스라엘군의 첫 표적이 된 구급차 뒷좌석에 타고 있다가 살아남았고, 이후 이스라엘군에 구금돼 신문을 받은 뒤 풀려났다. 앞 좌석에 타고 있던 동료 2명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이들을 찾기 위해 13명이 차량 5대에 나눠타고 출동했으나 모두 총살당한 뒤 집단 매장됐다.

한편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정상회담을 위해 헝가리로 출국하며 ICC 체포영장에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유럽 방문은 ICC 체포영장 발부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헝가리는 이날 ICC를 탈퇴한다고 밝혔다.

ICC 설립 조약인 ‘로마규정’에 따르면 회원국들은 ICC가 발부한 체포영장을 집행할 의무가 있으나,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체포영장 발부 소식이 전해진 뒤 이를 집행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네타냐후 총리를 공식 초청한 바 있다. 더 나아가 미국은 지난 2월 ICC의 영장 발부를 비판하며 카림 칸 검사장을 특별제재 대상에 추가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