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며 부딪히며 ‘까르르’… 다문화 엄마들의 ‘유쾌한 농구’

이준호 기자 2025. 4. 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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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첫 결혼이주여성 농구단 ‘글로벌 마더스’
11개국 25명 매주 목요일 훈련
기초 체력 다지며 기본기 익혀
양육 정보·교육 노하우도 공유
“생활체육대회서 모두 패했지만
기량 늘고 있어 곧 1승 거둘 것
같은 처지 엄마들 모두 가족같아”
지난달 27일 다문화가정 어머니 농구단 글로벌 마더스가 서울 용산구문화체육센터 체육관에서 드리블 훈련을 하고 있다. 백동현 기자

“자, 이제 러닝 10바퀴 돌아요”라는 지시가 떨어지자 여기저기서 “에휴∼”라는 한숨 소리가 터져나왔다. “맨날 엄살만 부리네, 살 빼야지!”라는 감독의 불호령, 아니 격려에 분위기는 금세 바뀌었고 ‘까르르’ 웃음소리와 함께 오와 열을 맞춰 씩씩하게 달리기를 시작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문화체육센터 체육관. 국내 첫 결혼이주여성 농구단 ‘글로벌 마더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유쾌하게 훈련일정을 소화했다.

글로벌 마더스는 한국농구발전연구소가 지난해 10월 미국 포위드투재단의 후원을 받아 창단했다. 11개국 25명의 다문화가정 어머니들이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이곳에서 훈련하고 친분을 나눈다. 한국농구발전연구소는 지난 2012년 다문화가정 어린이와 청소년들로 구성된 글로벌 프렌즈 농구단을 창단했다. 초등 1∼3학년이 참가하는 파스텔 프렌즈와 초등 4학년∼중 3학년까지 참여하는 글로벌 프렌즈로 나뉘었고, 글로벌 마더스까지 삼각체계를 갖췄다.

글로벌 마더스는 햇병아리. 게다가 막내가 34세이고, 평균 나이는 40대 초반이다. 그래서 기초체력을 기르고, 농구 기본기를 익히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천수길 한국농구발전연구소장 겸 감독은 “어울리고 소통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지만,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뜨거워 곧 ‘실력파’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2023년 국내 전체 결혼 중 다문화혼인은 10.6%였다. 10쌍 중 1쌍은 다문화가정인 셈. 다문화혼인은 2만431건이었고, 다문화가정은 41만6000가구에 이르렀다. 다문화가정은 증가 추세이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특히 다문화가정 엄마들에게 자녀 육아와 교육은 기울어진 운동장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동료애, 자매애로 뭉친 글로벌 마더스는 소중하다. 캄보디아에서 온 막내 이수민(34) 씨는 “초등 1, 3학년인 아들 형제를 양육하느라 집 밖으로 나갈 일이 드물었기에 아는 게 거의 없었다”면서 “함께 운동한 뒤 점심과 차를 같이 하면서 경험 많은 언니들로부터 어떤 병원이 좋고, 어떤 교육기관이 좋은지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민 씨

이상윤 IB스포츠 해설위원은 글로벌 마더스의 든든한 조력자. SK 농구단 등에서 감독을 맡았던 이 해설위원은 재능기부로 글로벌 마더스를 지도하고 있다. 이 해설위원은 “엄마들이 다치지 않고, 농구의 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면서 “체력이나 기술은 초급 수준이지만, 투지와 열의는 상급”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온 사채령(37) 씨는 가장 먼저 코트에 도착하고, 팀훈련에 앞서 슈팅과 드리블 등 개인훈련을 실시한다. 사 씨는 “아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바로 이곳으로 달려온다”면서 “언니, 동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연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마더스는 생활체육대회에 5차례 출전했고 모두 패했다. 일본에서 온 나카지마 아오이(46) 씨는 “농구를 위해 목요일 아침이면 집이 있는 인천에서 용산까지 이동한다”면서 “지금은 동네북과 마찬가지지만, 기량이 늘고 있기에 곧 1승을 거두고 강한 팀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문화어머니 농구단이지만, 한국 엄마가 주장이다. 다문화 엄마들과 한국 엄마가 함께 운동해야 진짜 더불어 지내는 것이란 소신 때문.

김유연(43) 씨는 2008 베이징올림픽 출전 사격국가대표였던 경력을 살려 캡틴의 중책을 맡았다. 김 씨는 “운동 끝나면 도란도란 모여앉아 아이들 이야기, 물가 이야기 등을 주제 삼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웃음꽃을 피운다”면서 “우리는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같은 처지의 엄마들이고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라고 말했다.

천수길 한국농구발전연구소장이 초등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한국농구발전연구소 제공

“인종·성별 차별없이 양보와 협력의 힘 키웁니다”

■ 어린이·청소년 농구단도 ‘눈길’

초등 1~3학년 ‘파스텔 프렌즈’
초등4~中3학년 ‘글로벌 프렌즈’
최근 후원 중단돼 운영에 애로

한국농구발전연구소가 운영하는 다문화가정 농구단은 3개다. 지난 2012년 다문화가정 어린이와 청소년들로 구성된 글로벌 프렌즈 농구단이 1호. 참가자가 늘어나면서 초등 1∼3학년이 대상인 파스텔 프렌즈와 초등 4학년∼중 3학년이 대상인 글로벌 프렌즈로 분화했다. 2023년엔 결혼이주여성 농구단을 조직했고, 지난해 10월 글로벌 마더스라는 이름으로 창단했다.

파스텔 프렌즈는 8개국 다문화가정 어린이 20명, 글로벌 프렌즈는 16개국 40명, 글로벌 마더스는 11개국 25명이 참가하고 있다. 파스텔 프렌즈는 매주 토요일 용산청소년센터, 글로벌 프렌즈는 매주 월요일 이태원초등학교, 글로벌 마더스는 매주 목요일 용산구문화체육센터에서 농구를 익히고 즐긴다.

한국농구발전연구소는 농구 외에 다문화가정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현충사 견학 등 역사문화탐방, 겨울철 동계스포츠교실 등을 통해 역사의식을 고취하고 신체의 균형성장을 꾀한다. 천수길 한국농구발전연구소장은 “다문화가정 어린이·청소년 농구단은 올바른 가치관, 건강한 신체, 긍정적인 자아정체성 확립을 지향하고 있다”면서 “인종, 성별을 가리지 않고 스포츠를 통해 양보와 협력, 소통의 힘을 익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천 소장은 배재고, 단국대에서 농구선수로 활약했고 대한농구협회 이사를 지냈다.

다문화가정 어린이·청소년뿐만이 아니라 한국가정의 어린이·청소년도 함께 운동한다. 어려서부터 어울리면 더불어 산다는 것의 의미를, 차별의 부작용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기 때문. 2013년부터 매년 다문화-유소년 어린이 농구대회를 개최하는 등 다른 농구클럽과의 교류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천 소장은 “농구인 출신들이 재능기부로 다문화가정 농구단을 지도하며, 용산구청(구청장 박희영)은 체육관을 무상으로 대여해 주고 유니폼을 제공하는 등 지원하고 있다”며 “그런데 지난해까지 다문화가정 어린이·청소년 농구단을 후원하던 메인 스폰서가 경기 침체 등을 이유로 후원을 중단하면서 운영이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이준호 선임기자 jh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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