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식 말맛에 나이스온, 유머와 풍자에 홀인원하는 '로비'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나이스 온. 하정우가 주연과 감독을 맡고, 각본까지 참여한 영화 '로비'가 나이스하게 그린에 안착했다. 연구만 알던 스타트업 대표가 4조원에 달하는 국책사업을 따내기 위해 '접대 골프'에 도전하는 이야기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특한 캐릭터들이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말의 향연으로 쉴 틈 없이 웃음의 잽을 날린다. 주말마다 라운딩 약속이 촘촘히 잡혀 있는 이들은 물론이요, 골프를 1도 모르는 이들도 충분히 웃을 수 있다.
매립형 배터리 충전 기술을 개발한 스타트업 윤인터랙티브 대표 창욱(하정우)은 빼어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옛 친구이자 라이벌인 광우(박병은)의 회사에 번번이 기회를 뺏긴다. 이유는 광우의 빵빵한 자금력과 '삼성스토어에 애플 입점시킬' 로비력 때문. 4조원에 달하는 국책사업인 미래지향적인 스마트 주차장 입찰이 절호의 기회인데 또 광우의 회사와 부딪치게 된다. 창욱은 자신이 평생 바친 연구를 비수학적인 로비력에 기대고 싶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자신을 도발하는 광우를 보고 더러운 싸움에 뛰어 들기로 결심한다.
문제는 이 더러운 싸움, 로비의 매개가 골프라는 점. 입찰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실세는 국토교통부 장관 조향숙(강말금)과 조 장관의 최측근이자 실무를 쥐고 있는 실장 최우현(김의성)인데, 둘 다 모든 '딜'은 골프장에서 한단다. 공교롭게도 창욱은 대학 때 교양수업으로 골프를 배워본 게 전부인 '골린이'. 게다가 조 장관은 이미 광우에게 포섭당한 것으로 보이니, 깐깐하다고 소문난 최 실장을 어떻게든 골프장으로 데려와야만 한다.
창욱이 골프, 그중에서도 정교한 기술(?)과 섬세한 아부를 필요로 하는 접대 골프를 벼락치기로 배우는 과정과 최 실장과의 접대 라운딩을 '메이드' 하기 위한 과정이 전반에 펼쳐지는데, 이 과정이 제법 흥미진진하다. 오른팔인 김 이사(곽선영)의 정보와 조언에 따라 최 실장과 학연 및 지연으로 얽힌 문창일보 박 기자(이동휘)를 포섭하고, 최 실장이 열광하는 프로골퍼 진세빈(강해림)에게 스폰서십을 제안하며 결국 4인 라운딩을 성사시키는 창욱. 그러나 광우 쪽도 만만치 않다. 어거스트cc 골프장 대표 배민(박해수)의 아내이자 조 장관과 친숙한 관계인 다미(차주영)와 조 장관이 좋아하는 왕년의 톱스타 마태수(최시원)로 환상의 4인팟을 형성한다.
주요 소재는 골프지만 골프란 게임의 규칙과 용어를 잘 몰라도 되는 이유는 이것이 목표가 명확한 접대 골프이기 때문. 골프는 좋으나 싫으나 18홀을 돌면서 꼼짝없이 몇 시간 동안 함께해야 하는 스포츠다. 접대하는 자와 접대받는 바는 물론 조력자들까지 각자 이루고자 하는 바가 확실하니, 그 긴 시간 동안 자신의 민낯을 꽁꽁 숨기기란 무척 어려운 노릇이고. 아니나 다를까, 진세빈 프로에게 과한 관심을 보이는 최 실장의 참기 어려운 느글느글한 낯바닥과 꼿꼿한 프로골퍼의 말간 눈을 외면하며 양심을 저 멀리 OB구역으로 던져 버리는 창욱의 밑바닥, 콩고물을 얻기 위해 이 거래를 성사시켜야 하는 박 기자의 고군분투하는 혓바닥이 어우러지며 환장의 소동극을 펼친다.
창욱의 4인팟은 과장됐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느낌의 인간군상들이 빚는 블랙코미디의 느낌이다. 특히 '개저씨'의 표본이 아닐까 싶은 최 실장을 연기한 김의성의 비호감 연기는 압권. 그의 관심을 받는 프로골퍼 진세빈을 맡은 강해림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신인인지라 사회생활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권력자 개저씨-힘없는 사회초년생'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순간순간 구역질이 느껴질 정도다.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박 기자의 롤도 현실적이고. 그에 비해 동시간대 벌어지는 광우의 4인팟은 대놓고 부패한 조 장관과 그의 등을 긁어주면서 야무지게 털어먹으려는 광우, 조 장관의 약점을 잡고자 도청을 감행하는 골프장 사장 배민, 이 모든 것에 관심 없이 그저 연인 관계였던 서로를 뜨겁게 갈망하는 마태수와 다미 등이 한 편의 과장된 소동극을 연출한다.
하정우의 연출 데뷔작 '롤러코스터'을 좋아했다면 '로비'는 분명 호(好)의 영역이다. 하정우 특유의 독특한 말맛이 106분 내내 멈추지 않는다. 맥락 없어 보이는 무근본 웃음 캐릭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롤러코스터'에서 "어디에요, 여기에요?"로 웃음을 터트린 안과의사처럼(배우 이지훈이 이번 영화에서도 골프 강사로 출연해 웃음을 준다), '로비'에도 전라도 출신 광우의 세 번째 와이프나 스님 출신 신부 같은 캐릭터가 저마다 활약을 펼친다. 창욱의 사촌동생이란 이유로 낙하산 인턴으로 입사한 호식(엄하늘)의 존재는 다크호스.
광활한 골프장에서 서로의 은밀한 욕망을 대놓고 들이대는 인간군상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궁합과 미친 말재간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로비'. 하정우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이 과연 관객들의 마음에 '홀인원'할 수 있을까? '로비'는 4월 2일 개봉한다. OTT 자막에 익숙해졌다면 속사포 같은 대사들로 처음에 당황스러울 수 있다. (You Have to) 관람 시 최대한 귀를 쫑긋 세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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