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늦었구나, 이제 정말 죽는구나” 절망의 순간, 다가온 이웃 [세상&]

이용경 2025. 3. 2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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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 휩쓴 경북 영덕 이재민들 인터뷰
피해 주민 대부분이 60대 이상 고령자들
피해 주민들 “지금도 연기만 보면 가슴이 뛴다”
집과 사업장 불에 휩쓸려…“생계 막막”
[영상=이건욱 PD]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5일째 이어지면서 산불로 인한 사망자가 26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26일 영덕군 낙평리의 한 주유소가 전소되어 있다. 영덕=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영덕)=김도윤 기자, 이용경 기자] “늦었구나 이제는 정말 죽는구나 하고서 눈을 질끈 감는데 뒤에서 차가 한대 오더라고요. 그 차를 타고 탈출했죠. 마을이 쑥대밭이 돼서 돌아갈 엄두가 안나요.”

밤사이 산불이 덮친 경상북도 영덕. 지난 26일 오후 3시께 헤럴드경제가 찾은 영덕국민체육센터(산불 이재민 대피소)에는 150여명의 이재민이 모여 있었다. 영덕읍 매정2리에서 이재민 대피소로 피신해 있던 박평화(81) 씨를 포함해 매정마을 주민 10여명은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박씨는 화염에 휩쌓였던 전날 생사의 갈림길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그는 남은 인생에서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을 그 당시의 순간을 천천히 떠올렸다.

경북 의성에서 시작한 산불은 급속도로 확산해 박씨가 살던 매정리를 뒤덮었고, 사방에서는 불티가 날아다니며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였다고 했다. 박씨는 아내와 함께 차에 올라 대피소를 향해 차를 몰았지만, 연기 때문에 앞은 보이지 않았고 얼마 가지 못해 도랑에 차가 빠져버렸다. 차에서 내린 박씨는 “불길 속에서 아내 손을 잡고 죽어라 큰길로 나가 뛰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숨이 차고 땀이 흘렀다”며 “빠져나가지 못하겠구나 생각하는데, 뒤에서 차를 몰던 이웃 주민이 차에 태워줘 대피소까지 함께 이동해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26일 영덕군 영덕읍 영덕국민체육센터에 이재민들이 모여 있다. 영덕=이상섭 기자

박씨 외에도 이재민 대피소에는 크고 작은 부상자들이 많았다. 화상으로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거나 비상 안내 문자가 뜰 때마다 깜짝 놀라 움츠리거나 전날의 피로 때문에 지쳐 잠을 청하는 모습도 보였다. 불이 언제 다시 번질지 안심할 수 없어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듯 했다.

김기주(65) 씨는 3년차 귀농인인데 이번 산불 화재로 집이 전소됐다고 했다. 김씨는 “정전이 되서 집 밖으로 나와 보니 사방이 불길이었다”며 “차를 타고 피신하는데 고라니 같은 산짐승들도 왔다갔다 뛰어다니면서 갈피를 못잡았다. 지금도 연기만 보면 가슴이 뛴다”고 했다.

대탄리 주민 A(60) 씨는 “소화기를 뿌려봐도 감당이 안되고 10년간 살면서 불꽃이 사방으로 팍팍 튀는 광경은 난생 처음 봤다”며 “전화도 전기도 끊기고 인터넷도 안 돼 공포 그 자체였다. 민박집 운영 중인데 전기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27일 오전 6시 기준 영덕군에서는 주민 8명이 불을 피하는 과정에서 사망하고 8명이 다쳤다. 피해자들은 70~80대 노인들이다.

영덕군 관계자는 “영덕군 지품면 전체가 전기 통신 두절 상태고 나머지는 전기통신이 복구된 상태”라며 “자체 진화율은 현재 50% 이상으로 파악된다. 오늘 중으로 잔불 진화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삶의 터전이 폭삭 내려앉았다

경북을 휩쓸고 있는 산불이 시작된 의성은 54% 진화율(27일 오전 6시 기준)을 보이고 있다. 간신히 불을 제압한 자리에는 처참하게 무너진 삶의 터전만 남았다. 26일 오후 의성군 단촌면 신기 세촌1리에 있는 마늘밭에서 만난 배연한(69)씨는 땀을 뻘뻘 흘리며 검게 그을린 박스더미를 옮기고 있었다.

마늘밭 뒤에 있는 작업장에선 여전히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작업장 인근에 있는 향노봉에서 날아온 불씨로 작업장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렸지만 연기는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숨을 쉴때마다 코 안이 벌에 쏘인 것처럼 아프다고 배씨는 말했다.

그는 전날 상황을 묻는 질문에 담배를 연달아 태우며 얼굴을 쓸어 내렸다. “50년을 여기서 농사를 지으면서 자식 셋을 키웠는데 하루 아침에 벼락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이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5일째 이어지면서 산불로 인한 사망자가 16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26일 영덕군 영덕읍 영덕국민체육센터에 이재민들이 모여 있다. 영덕=이상섭 기자

배씨는 800평 넓이의 마늘밭을 가리켰다 “마늘밭은 지켰지만 작업장이며 집이며 불에 타서 마을이 쑥대밭이 됐다.어제는 바로 앞 사람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연기가 자욱했다”며 “여기저기서 불이 붙어버리니까 소방차도 아떻게 할 수 없는 걸 보면서 허망하고 씁쓸했다”고 말했다.

인근 상인 이도연(40)씨는 “생계가 달린 문제라 근처 사장님과 함께 오후 다섯시 반부터 밤 10시까지 물을 쉬지않고 퍼날라서 뿌리며 가게를 지켰다”며 “잠을 한숨도 못 자고 재난영화를 찍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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