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요리사로 그룹 회장까지... 승승장구 하던 남자의 추락
[이준목 기자]
바그너 그룹(PMC Wagner Group)은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하여 전세계의 분쟁지역에서 활동한 용병집단으로 그 악명을 떨쳤다. 그리고 이러한 바그너 그룹의 배후에서 든든한 배경이 되어준 것이 바로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이었다. 2023년 미국 재무부는 바그너 그룹을 국제 범죄조직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25일 방송된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푸틴의 전쟁대행 주식회사 바그너그룹'편이 방송됐다. 류한수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가 이날의 강연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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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거벗은 세계사> 중 한 장면 |
ⓒ tvN |
1997년에는 자신이 운영하던 레스토랑에서 푸틴과 처음 만나 돈독한 인연을 쌓았다. 푸틴이 러시아의 정권을 잡은 이후, 프리고진은 러시아의 군부대 급식과 식자재 공급 사업을 독점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다. 푸틴의 생일파티와 크렘린궁 연회 음식의 케이터링까지 맡으면서 프리고진에게는 '푸틴의 요리사'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이어 프리고진이 눈을 돌린 곳은 민간군사기업이었다. 냉전 종식 이후에도 전 세계적으로 분쟁과 내전이 끊이지 않으면서 안보 불안 사태가 확산되자, 민간군사기업의 사업적 가치가 크게 높아진 상황이었다. 훗날 프리고진은 러시아군 정보총국 부국장으로부터 민간군사기업 창설을 제안받았다고 밝혔는데, 이는 사실상 '푸틴의 입김'으로 보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014년 프리고진은 훗날 러시아 최대의 민간군사기업이 되는 바그너 그룹을 창설한다. 프리고진은 바그너 그룹을 만들기 위하여 러시아 특수부대 출신의 드미트리 우트킨이 이끄는 용병조직과 손을 잡았는데, 특이하게도 프리고진은 유대인이고, 우트킨은 유대인 학살을 옹호하던 네오나치 신봉자였다는 것. 철천치원수같은 사이임에도 오직 이권을 위해서는 기꺼이 손을 잡을 수 있는 이들의 특수한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바그너 그룹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유명한 음악가인 바그너에서 따왔다는 설, 우트킨의 군사용 콜사인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존재하지만 정확한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바그너 그룹은 초기에는 몇백 명 규모에 불과했으나 2023년 기준 9년 만에 약 8만 5천여 명으로 약 300배가량 폭증했다. 일개 민간 기업이 보유한 병력치고는 상상을 초월한 규모였다. 또한 바그너 그룹은 전차와 장갑차, 로켓포, 헬기, 드론기, 전투기 등 한 국가의 정규군 수준에 못지않은 가공한 군사력을 보유했다.
푸틴의 러시아 정부는 바그너 그룹에 연간 860억 루블(한화 약 1조 3천억)에 이르는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바그너의 용병들은 사실상 대기업 임원 수준에 맞먹는 대우를 받았다. 반면 배신자는 무조건 사살하거나 처형하는 등 혹독한 규율을 내세웠다.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 형법에서는 민간군사기업 운용및 용병활동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법망을 피하고자 대외적으로는 민간군사기업이 아닌 군사 및 보안 컨설팅 회사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고 있다. 푸틴은 정규군이 아닌 민간군사기업이라는 용병들의 장점을 활용하여 바그너 그룹을 사실상 러시아의 용병부대로 활용했다.
바그너 그룹이 처음으로 세계 분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3년 크름 사태였다. 크름 반도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이 격화되자, '리틀 그린맨'으로 불리는 절체불명의 러시아 무장집단이 현지에 등장했다. 이들의 정체는 푸틴이 사주한 바그너 그룹의 용병들이었지만, 러시아 정부는 크름 반도의 러시아 합병을 지지하는 현지 주민들이 만든 민병대라는 게 공식 입장이었다.
리틀 그린맨을 앞세워 러시아군이 개입할 명분을 확보한 푸틴은 결국 러시아계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정규군을 투입하여 크름 반도를 장악하고 러시아 병합을 선언한다. 이어 2014년 돈바스 전쟁에서도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계 분리독립 세력을 지원하며 우크라이나군과 대치했다. 분리독립에 반대하는 다수의 지도자들을 암살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바그너 그룹의 전쟁 개입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만이 아니라 해외 작전에도 적극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러시아는 푸틴의 집권 이후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다. 푸틴은 미국 및 서방과의 중동 자원-패권 경쟁을 위하여 바그너 그룹을 앞세워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다.
러시아와 바그너 그룹은 지원의 대가로 시라아의 석유와 가스 자원 사업을 장악했다. 바그너 그룹은 시리아 내에서 최소 4개 이상의 대형 유전과 가스전을 장악했으며 여기서 얻은 수익들은 프리고진을 거쳐 배후의 푸틴에게 흘러들어갔다고 추정되고 있다.
푸틴은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여 친러정권을 지켜내고 가스관 사업 등을 독점하면서 충분한 실리를 챙겼다. 해외 작전에서 바그너 그룹의 유용성을 확인한 러시아는 이번엔 아프리카로 눈을 돌렸다. 바그너 그룹은 서방의 제재를 피하고자 '세와 시큐리티 서비스'라는 보안회사로 위장하고 아프리카의 내전에도 적극 개입했다.
바그너 그룹은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독재정권을 유지해 주는 대가로 현지의 최대 광산 채굴권을 획득하며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누렸다. 서방의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는 바그너 그룹의 여러 위장회사를 활용하여 아프리카에서 연간 2억 9천만 달러(한화 약 3천781억)에 이르는 금을 채굴한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는 바그너 그룹을 앞세워 정치 개입과 군사지원을 통하여 '자원 이권'을 확보하며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키웠다.
바그너 그룹은 현지에서 각종 인권유린과 학살로 악명을 떨쳤다. 시리아 내전에서는 정부군 탈영병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처형했다. 아프리카에서는 반군과 광부들이 긴밀하다는 이유로 민간인들을 끔찍하게 대량 학살하기도 했다. 러시아와 바그너 그룹은 2021년에는 자신들의 악행을 미화한 영화 <투어리스트>를 제작하여, 바그너 그룹이 중앙아프리카의 평화를 지키는 정의로운 집단인 것처럼 묘사하기도 했다. 서방의 경제 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러시아 정부에게 바그너 그룹이 가져다 둔 '검은돈'은 그야말로 숨통을 트여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2022년부터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의 운명을 바꾼 전환점이 된다.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으로 예상보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당황한 푸틴 정권은 바그너 그룹을 앞세워 병력 충원에 나섰다.
프리고진은 직접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범죄자들에 사면과 경제적 보상을 대가로 참전을 독려했다. 고작 일개 민간군사기업 수장이 죄수들에게 초법적인 사면을 보장하는 장면은, '푸틴의 바그너 그룹의 뒷배'라는 의혹을 사실로 증명한 장면이었다. 실제로 바그너 그룹이 확보한 5만명의 신규 용병 중 4만명 가까이가 죄수들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차출된 죄수 용병들은 현장에서 정규군을 위한 소모적인 총알받이로 사용됐다. 전투 투입을 거부한 죄수들은 현지에서 공개처형으로 즉결 처분을 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전쟁 기간중 바그너 그룹과 러시아 정부 간 미묘한 균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 기간 동안 군사력의 양대 축이었던 프리고진의 바그너 그룹과 최측근 쇼이구 장관이 이끄는 러시아 국방부 간의 경쟁 구도를 유도 한게 불화의 시작이었다.
최대 격전지였던 '바흐무트 전투'에서 프리고진은 승전하고도 자신과 바그너 그룹을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러시아 정부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프리고진은 자신의 SNS를 통하여 빈번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특히 바흐무트 전투에서 전사한 바그너 그룹 용병들의 시신을 보여주며 러시아 국방부를 맹비난하면서 갈등은 최고조에 달한다.
2023년 러시아 정부는 거대해진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을 통제하기 위하여, 그동안 거리를 두던 방침을 뒤집고 러시아 국방부와 계약을 맺고 공식 지휘를 받도록 편입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프리고진은 이를 단번에 거부했고 바그너 그룹과 러시아의 관계는 이제 완전히 아군에서 적군으로 돌아서게 된다.
2023년 6월 23일, 프리고진은 푸틴에 대한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모스크바로 진격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황한 러시아는 알렉산더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로 '쿠데타를 중단하면 반역죄 처벌을 면제해 주겠다'며 바그너 그룹을 회유했다. 모스크바 공격을 목전에 두고 있던 프리고진은, 쿠데타 선언 다음 날 오후 8시 30분, 러시아의 제안을 받아들여 회군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는 프리고진의 일생일대 오판이 된다.
뒤끝 있는 푸틴은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고, 곧바로 바그너 그룹과 프리고진에 대한 보복에 나섰다. 프리고진은 쿠데타 약 두 달 이후 전용기가 추락하며 의문의 최후를 맞이했고, 재산은 모두 러시아 정부에 몰수됐다. 프리고진도 나름 러시아의 보복을 예상하고 안전에 철저히 유의했다고 하지만, 푸틴에 등을 돌리고도 제거를 포기했을 때 이미 그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었다.
사고 후 러시아 정부는 국제안전규정도 무시하고 추락 현장을 모두 은폐하며 증거를 인멸했다. 비행기 폭발 원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상세히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프리고진이 이끌던 바그너 그룹은 온전히 러시아 정부에 귀속되어 사실상 푸틴의 사조직으로 넘어가게 된다.
'전쟁이 선포되면 첫 희생자는 진실이다' 영국의 정치인 아서 폰 손비의 격언이다. 전쟁과 권력을 이용하여 승승장구했던 프리고진은 본인도 결국 똑같은 방식으로 이용만 당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하지만 푸틴과 러시아, 그들의 사주를 받은 용병들이 벌이고 있는 수많은 악행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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