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백선엽, 부하와 하나되는 리더십이 전장 승리 이끌었다”
무인 집안 외가 영향에 일제하 아버지 군인의 길
참전 노병들 “지휘관이 훌륭해 잘 싸웠다” 회고
美, 국군 2군단 재창설로 하드·소프트 파워 이전
美국민 인식 제고 위해 ‘상부상조 한·미동맹’ 알려야
“아버지 백선엽 장군을 상관으로 모셨던 노병(老兵)들은 부하를 아끼던 아버지의 부하 사랑을 회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군이면서도 진격할 때 병사의 81㎜ 박격포를 나눠 메고, 고지에 올라선 전우 장병과 화랑 담배를 나눠 피며 부하와 함께하는 리더. 부하와 하나가 된 참 리더십이 전장의 승리를 이끈 것 같습니다.”
고 백선엽 장군(1920∼2020) 장녀 백남희(77) 백선엽장군기념재단 명예이사장은 한·미 정부로부터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된 아버지의 리더십 요체를 부하를 사랑하는 ‘진정성’, ‘참’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참’이 힘이 되어 장병을 움직였고, 미군 장군도 움직였다”고 했다. 전장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회사나 조직의 상사, 선배가 새겨야 할 말이다.
백남희 명예이사장은 1961년 주프랑스 대사로 부임하는 부친을 따라 도불(渡佛)해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거주했다. 2023년 6월30일 △관련 자료 수집·연구 △참전용사 위로 △한·미동맹 증진 등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 설립을 계기로 주로 국내에 체류하며 재단 행사와 노병과의 만남을 소화하고 있다. 현재 주한미군전우회(KDVA), 6·25전쟁 영웅 제임스 밴플리트 전 미 8군 사령관을 기리는 밴플리트재단 고문도 맡고 있다.
백 명예이사장은 2023년 7월 5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의 부친 동상 건립을 이야기할 때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 여러 차례 울먹이기도 했다. 그는 “이철우 경북지사, 김재욱 칠곡군수 등 동상이 서기까지 고생해주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이라며 “아버지는 1사단 전사자 명부와 무명용사 묘가 있는 전적기념관 영내에 묻혀 전우들과 조국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혼령이 되는 것을 노병의 마지막 간절한 소망이라고 했다. 유해는 (다부동에) 못 왔으나 그곳에 동상이 선다는 것이 가슴 아프면서도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곧 5주기다. 어떤 아버지였나.
“살아계실 때는 집안 식구들에게는 그냥 가족이고 하니 대장이고 장관이고 무관심했다. 돌아가시니 그때야 정신이 난 것 같다.(울먹) 늘 했던 말씀이 대(大)를 위해서는 소(小)는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는 첫째 나라, 둘째 군인이고, 소는 첫째 본인 백선엽, 둘째 가족이었다. 본인이 나라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과 참군인이어야 한다는 마음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기억나는 추억은.
“아버지는 나를 ‘복둥이’, 첫사랑이라며 부르며 극진히 아꼈다. 1973년 남편과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귀국해 찾아뵈니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없이 담배 한 갑을 새로 뜯으시더니 피우셨다. 남편은 안절부절 긴장하고 …. 아버지가 20개비 한 갑을 다 태우시더니 남편보고 딱 한 마디 질문했다. ‘사랑은 있나’라고.
―사랑은 있나?
“군인이라서 사랑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줄 알았다. 그때 ‘아, 아버지 평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도 사랑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많은 감동을 받았다.(울먹) 많은 분이 나보고 효녀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 내가 아버지를 위한 일을 하는 것은 누구보다 아버지를 마음으로 사랑했으면서도 말로나 행동으로 표현하지 못한 자책감 때문에…” (울먹)
―아쉬운 점은 없나.
“6·25전쟁 끝날 때쯤인가 현역으로 있을 때 미국 코카콜라 회장의 손자가 찾아와 한국에서 공장을 같이 해보자고 했는데 거절했다. 아버지가 내무장관직 제안을 거절한 것 등은 나도 인정하지만 코카콜라를 거절한 것은 아쉽다(웃음). 하지만 만약 코카콜라 제안을 받았으면 지금처럼 재단을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군인은 돈을 벌면 안 된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아주 순수해서 익스큐즈(excuse: 변명)나 익셉션(exception: 예외)가 없는 단순한 원칙에 철저한 분이다. 보통 사람이 아버지의 순수한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다른 사람들은 딴생각해도 아버지는 심플(단순)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간도특설대 복무 문제로 논란이 있다.
“아버지가 친일파라고 하는 것에 대해 정말 담담하게 생각한다. 아버지 역시 담담했다. 왜냐하면 사실이 아님을 역사가 바로잡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동포를 죽였다는 악담은 6·25전쟁 당시 북한이 남한에 뿌린 삐라에서 시작됐다. 그 삐라 사진도 있다. 아버지는 만주펑톈(奉天)군관학교를 졸업하고 22세 때 (만주군) 소위로 임관해 1943년 2월 명령을 받아 간도특설대에 복무했다. 간도특설대는 간도지역의 중국공산당 게릴라와 싸우기 위해 창설된 부대이나, 1943년 간도에서 조선의 독립운동가는 떠난 지 오래돼 활동이 없었다. 중국공산당 군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해방을 맞았고, 그들과의 교전 실적도 별로 없다.”
―일제강점기 군을 택한 이유는.
“아버지는 7세 때 할아버지(백 장군의 부친 백윤상)가 사라져 할머니(백 장군 어머니 방효열)에 의존해 자랐다. 할머니는 조선이 결국 독립할 것으로 보고 ‘문(文)을 할 사람은 많으니 너는 무(武)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고 한다. 할머니의 부친, 즉 아버지 백선엽의 외할아버지(방흥주)는 조선(대한제국)의 참령(현재의 중령)까지 올랐다. 어머니의 무가(武家) 기질의 영향을 받고 외할아버지 영정을 보고 자란 것이 아버지다. 아버지의 외할아버지가 일본군이 아니라 조선군이었음을 꼭 써달라.”
―현대사는 아버지를 어떻게 평가할까.“
“역사가 아버지를 평가하기엔 아직 너무 이르다. 남북이 갈라져 있는 한, 객관적 평가는 힘들다고 본다. 아버지는 늘 영토가 없으면 나라도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신념으로 북한군의 남침으로부터 이 땅을 지키지 않았나. 6·25전쟁 뿐만 아니라 평생의 업적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자라는 것이다. 소련과 중국의 공산화에 이어 6·25전쟁으로 동아시아에서는 낙동강 전선 한구석만 빼놓고 지도가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인천상륙작전처럼 극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다부동 전투를 통해 존망 위기의 대한민국이 마지막 순간에 직접 일어나는 역량을 보여줬다. 또 군사동맹이 정식 체결되기 전 미군과의 협력을 통해 미국이라는 거대한 문명의 소나기를 한반도에서 맞이하는 접점의 역할을 했다고 본다. 우리가 미국과의 접점을 형성함으로써 한·미동맹뿐만 아니라 이후 대한민국 발전의 중요한 흐름이 되는 미국의 질서에 올라탔다는 의미가 있다.”
―2023년 7월5일 당일 아버지 동상 제막식 전에 지게부대원 위령비 제막식이 먼저 있었다. 무슨 의미인가.“
“아버지 본인보다 자유수호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전투참전 주민위령비가 먼저 서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 유지였다. 국가 존망이 걸린 최대 격전지 다부동 전투 중 칠곡군민과 인근 주민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총탄과 포화 속에서도 아버지가 지휘하는 1사단과의 민군(民軍)합동 작전에 참전했다. 그게 탄약, 식량은 물론 부상병도 지게에 실어 옮긴 지게 부대다. 아버지는 주민 지원 없이는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분들의 헌신과 전쟁의 비극을 가슴 아파하며 늘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부친은 본인 자랑을 하는 분이 아니라 아버지 동상이 건립된다면 아마 제일 마지막에 서는 것을 원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날 오전에 위령비가 서고 오후에 아버지 동상이 섰다.”
―동상 건립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후폭풍을 감내하고 이철우 지사, 김재욱 군수가 정말 애 많이 썼다. 아버지 동상이 세워진 뒤 다부동전적기념관을 찾는 방문객이 5배로 늘었다고 한다. 동상이 360도로 돌아가는 것도 이 지사 아이디어다. 아버지가 북쪽이랑 대항하고 싸웠으니 북쪽을 바라봐야 하는데 자리 자체가 북향할 수가 없다. 그러자 이 지사가 360도 돌아가게 해서 어느 나라의 침략도 막는다는 의미를 부여하자는 안을 제안했다.”
◆“‘백선엽 회고록’ 통해 리더십 재조명”
―회고록 ‘내가 물러서면 놔를 쏴라’가 인기가 많았다. 읽었나.
“이 책을 통해 잊힐 뻔했던 아버지의 삶을 되살렸다. 아주 감사하게 생각한다. ”
―엄혹한 6·25 전쟁을 헤쳐나간 아버지의 리더십은 어떤 리더십인가.“
“인품이 아닌가 한다. 노병을 찾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그야말로 군대의 말단에서부터 미군, 유엔군 사령관에게까지 존경을 받았다는 것이다. 남을 이겨내려면 우선 나를 이겨야 한다는, 극기의 정신을 지닌 분이었다. 말로는 나를 이겨낸다고 하나, 평생에 제일 힘든 일이다. 정말 인내와 사랑으로 끝까지 적과 싸우려는 마음을 지녔던 분이다.”
―전우 노병을 만나고 있으신데 그분들이 어떤 말씀을 하나.
“전우 노병을 작년에도 35분 정도 뵙고, 올해도 100분 만날 계획이다. 만나면 찾아올 줄 몰랐다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시는 분이 대부분이다. 아버지가 덕장(德將)이었다고들 말한다. 한 분은 1사단이 평양 입성을 앞두고 밤낮없이 전진할 때 보병은 트럭이 부족해 걸어서 진격했다고 한다. ‘사단장님이 지프를 타고 지나가다가 81㎜ 박격포를 힘들게 메고 가는 병사를 보고는 차에서 내려 박격포를 달라고 하시더니 본인 어깨에 메고 한참을 진군하다가 다시 건네는 모습을 세 번 이상 봤다’고 하면서 그런 모습을 볼 때 부하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감탄했다고 한다.”
“어느 노병은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라’라는 말이 사단 전체에 퍼져서 ‘사단장님이 저렇게 싸우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용감히 싸우지 못하겠느냐’라며 사단의 기(氣)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어떤 분은 식당에서 사단장에게 식사를 먼저 준비해 주니까 아버지가 ‘어찌 장병들에게 먼저 주지 않고 나에게 먼저 주느냐’고 주방장을 꾸짖었다는 이야기가 ‘쫄병’들에게 퍼져 병사들이 그렇게 좋아했다고 했다. 내가 ‘나라를 위해 훌륭히 싸워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그분 말씀이 ‘훌륭한 지휘관이 있었기에 잘 싸울 수 있었다’고 했다.”
―현재 한국의 혼란한 상황을 어떻게 보나.
“나는 그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6.25 전쟁 중 스러진 수많은 전우의 희생과 그 유족의 아픔이 헛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버지를 통해 본 한·미 동맹의 상징은.
“1991년 토요일 아버지가 갑자기 미국을 방문해 집(뉴욕주 그리니치)에 오시더니 미 8군 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을 만나러 가자고 해서 비행기를 타고 1800㎞ 떨어진 플로리다주 폴크시티로 날아갔다. 다음날 장군 댁에 갔더니 장군이 휠체어에 앉아 오렌지 나무를 가꾸고 있었다. 장군을 보니 차에서 기다리던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경례를 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먼저, 신속하게 경례를 하는 장면은 처음 봤다. 그러자 장군도 휠체어에 앉아 경례를 받더니 두 사람이 아무 말도 없이 서로 껴안고 한참 있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울먹) 나는 그것을 한·미 동맹의 상징으로 본다.(울먹)”
◆“부친과 밴플리트의 ‘노병 포옹’, 한·미 동맹의 상징”
―부친과 함께 밴플리트 장군도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된 바 있다.
“밴플리트 장군은 중공군 개입으로 무너진 국군 2군단을 1952년 아버지가 지휘봉을 잡아 재창설할 때 155㎜ 야포로 중무장시키면서 미군의 하드 파워를 이전했다. 군단장에서부터 각급 지휘관에게 미군과의 일대일 군사교육을 하면서 미군의 소프트 파워도 넘겨줬다. 한·미의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의 유기적 결합으로 현대적 의미의 국군 재탄생이라고 할 수 있는 2군단 재창설도 한·미 동맹을 상징한다. 미군이라는 하나의 문명적 요소가 하드·소프트웨어 차원에서 국군과 철저하게 결합하는 과정을 아버지가 주도했고 밴플리트 장군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최근 한·미 동맹이 동요하는 듯한 모습이다.
“6·25전쟁을 계기로 맺어진 한·미 군사동맹은 더욱더 강해지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왜냐면 양국의 피와 땀으로 맺어진 철통 같은 동맹, 누구도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동맹이기 때문이다. 한국군뿐만 아니라 역대 미군 사령관이 같은 이야기를 한다. 한·미동맹은 콤플렉스(complex:거대하고 복잡하다)하지만 사령관급에서만 이뤄진 동맹이 아니다. 전쟁터에서 죽음을 같이한 전우들로부터 시작한 것이 한·미동맹의 기초다. 그렇지만 한·미 동맹은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 미국은 대한민국이 정말 아무것도 없이 힘들 때 구제하는 입장에서 도왔다. 하지만 그것은 80년 전의 일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지금은 선진국으로 성장했다. 정말 자랑스럽다. 내 소망이지만 언젠가는 대한민국이 미국을 도울 수 있는 입장이 된다면 우리가 성공했다는 증거가 되지 않겠는가.”
“현재 미국의 정책은 미국민의 민심이다. 지난 80년 동안 한국도 미국을 도운 것이 계속 많아지고 있으나, 미국 국민에게 홍보가 잘 안 되고 있다. 그래서 대미 홍보가 중요하다. 홍보를 통해 미국민의 인식을 현실화해야 한다. 서로 상부상조하는 호혜적인 진정한 동맹관계임을 미국민은 전혀 모르고 있다.”
―참전 미군이나 후손과도 접촉하나.
밴플리트 장군 외손자나, 월튼 워커 장군(전 미 8군사령관) 아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주한미군전우회(KDVA)나 밴플리트재단 고문도 하고 있다.
―대미 군사 외교도 한·미 외교의 한축이다. 이런 접촉을 통해 한국의 입장을 미국 측에 전달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
◆“역대 정권 예우 개의치 않아…미군은 전례 없는 대우”
―역대 정권에서 아버지에 대한 예우가 어땠나.
“아버지나 나나 역대 정권의 예우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버지는 잠시라도 어떤 정권을 위해 일하지 않았고 오직 나라와 국민을 위해 사심 없이 주어진 임무에만 충실했기 때문에 정권의 평가를 개의치 않았다.”
―미국이나 미군의 예우는 어땠나.
“미군은 아버지를 외국군이라기보다는 본인들의 직접적인 상관으로 모셨다. 정말로 미국 역사상 없었던 일이다. 미군은 아버지를 명예 미8군 사령관으로 추대하고 명함도 만들어줬다. 미군이 명예사령관을 타국 군인에게 부여 일은 전례가 없다. 미군은 아버지에게 오른쪽 어깨엔 성조기, 왼쪽 어깨에는 태극기가 부착된 미8군 사령관 군복을 제작해 제공했다. 2벌이 있는데 한벌은 내가, 한벌은 미 8군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최전선에서 전쟁을 지휘할 전방지휘소와 주한미군사령부가 있는 캠프 험프리스 회의실에 아버지 이름을 붙였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면 6·25전쟁 당시 싸웠던 국립서울현충원의 장병 묘역과 캠프 험프리스를 돌아보고 장지인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히기를 원했고 미군 측도 준비했다. 사정상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전쟁에 한 민족의 역량 총결집…전쟁 리더십 연구해야”
“내가 그런 의견을 제시할 위치는 아닌 것 같다. 다만 아버지 유지를 받들어 재단 사업의 일환으로 6·25전쟁 참전용사분들을 집으로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마지막 소원’을 물어보면 대다수 분이 부족하나마 정부·지방자치단체의 금전적 지원은 받고 있어서 괜찮지만 사회적으로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가 미국이나 다른 유럽국가와 차이가 있어 아쉽다고 말한다. 그래서 참전용사에 대한 사회적 예우를 높이는 홍보와 교육을 확대했으면 한다.”
―재단 활동 방향은.
“이 땅의 젊은이들이 한·미동맹과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더 나아가 제복의 영웅들이 존경받는 나라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다. 올해는 6·25전쟁 발발 75주년을 맞아 전쟁 시작부터 정전협정 체결까지의 상황을 달마다 표시한 달력도 제작해 배포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자 한국전쟁 75주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잊을 수 없는 것이 광복과 6·25전쟁이다. 독립과 대한민국 설립을 위해 희생하신 독립운동가와 유족,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6·25전쟁 때 희생하신 분과 유가족, 나아가 이분들을 뒷받침해온 우리 전 국민이 서로 자부심을 갖고 한마음이 되어 존경받는 대한민국을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했으면 한다.”
“후손에게 아버지가 참군인의 모범, 애국자의 모범이 되었으면 한다. 전쟁은 한 민족의 힘이 집중되는 현장이고 여기서 리더십이 매우 중요한 주제다. 임진왜란에 이순신 장군이 있듯이 6·25전쟁을 통해서도 대표적 리더십을 이야기해야 한다. 전쟁은 한 민족의 역량이 총결집하는 일대 사건이다. 그 점에서 우리는 다른 나라와 달리 민족의 존망, 생사가 달린 전쟁이나 전쟁의 리더십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측면이 있다. 군인 백선엽, 리더 백선엽을 통해 전쟁터의 죽느냐, 사느냐 하는 리더십을 볼 수 있다.”
김청중 논설위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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