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은 선택장애 왕자, ‘변신’은 벌레 된 썰... MZ가 고전 즐기는 방법

강지은 기자 2025. 3. 2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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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 표지. 에곤 실레의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을 표지 그림으로 썼다.

‘재벌집 폐급아들(인간실격)’, ‘선택장애 왕자님(햄릿)’, ‘벌레 된 썰 풂(변신)’, ‘S급 악마에게 집착당하고 있습니다(파우스트)’, ‘사이코 아닌데요(이방인)’···.

MZ세대 사이에서 고전소설 제목을 최신 웹소설 스타일로 다시 짓는 인터넷 밈(meme·유행 콘텐츠)이 화제다. ‘읽는 것은 힙하다’는 ‘텍스트힙(text-hip)’ 유행으로 문학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소설 제목을 놀이처럼 소비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제목이 지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면 이렇다. 웹소설 제목은 ‘누가 무엇을 함’의 형식을 갖춘 경우가 많다. 구어체를 주로 사용하고, 신조어도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이 힘을 못 숨김’, ‘SSS급 자살 헌터’,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 ‘뉴비가 너무 강함’이 대표적인 예시다.

‘인간 실격(다자이 오사무, 1948)’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주인공 ‘오바 요조’가 세상에 동화되지 못한 채 마약 중독에 빠지고 자살 기도를 하는 등 방황하다 본가로부터 절연당하는 이야기. 요조는 스스로에 대해 “인간이 되기엔 실격”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를 군대 보급품의 상태가 사용 불가일 때 내리는 판정인 ‘폐급’으로 지칭하고 실존하는 웹소설 제목인 ‘재벌집 막내아들’에 합성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구절로 대표되는 ‘햄릿(윌리엄 셰익스피어, 1623)’은 선과 악, 인간의 존재 이유 등을 고뇌하는 복잡한 인물의 전형이다. 고민이 많은 햄릿의 특성을 ‘결정을 잘 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신조어인 ‘선택 장애’로 나타냈다.

웹소설식 제목을 합성한 고전 소설 표지 이미지./쓰레드 캡처

하루아침에 해충으로 변한 외판원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를 다룬 ‘변신(프란츠 카프카, 1915)’은 ‘벌레 된 썰 풂’으로, 욕망에 가득 찬 지식인 파우스트가 영원한 젊음을 대가로 악마와 계약하는 내용인 ‘파우스트(요한 볼프강 폰 괴테, 1808)’는 ‘S급 악마에게 집착당하고 있습니다’로, 우발적 살인을 저질러 법정에 서고도 “뉘우치고 회개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인물 ‘뫼르소’가 주인공인 ‘이방인(알베르 카뮈, 1942)’은 ‘싸이코 아닌데요’로 변형됐다. 원제는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단어를 사용한 데 반해, 웹소설식 제목은 일상적 언어를 이용해 소설의 줄거리를 단 한 줄로 압축했다.

텍스트힙으로 문학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약해진 게 ‘웹소설식 제목 짓기’의 유행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단 소설 내용을 알아야 밈을 이해하고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고전 명작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 새로운 방식으로 재밌게 풀어내는 모습이 트렌디하고 힙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웹소설 시장의 성장도 또 다른 배경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3년 발표한 ’2022 웹소설 산업 현황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22년 국내 웹소설 시장 규모는 1조390억원으로 약 2년 만에 62% 늘었다. 이용자 수는 587만명으로 추정된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웹소설을 많이 읽는 젊은 네티즌들이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고전을 해석하는 모습”이라며 “학교에서 배우던 소설 제목을 가볍게 바꾸며 전복의 쾌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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