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참 ‘결심실’의 정체와 전 특전사령관의 ‘헤어질 결심’[박성진의 국방 B컷](28)
군에서 지휘관은 ‘결심하는 자’다. 전투나 위기상황뿐만 아니라 평시 부대관리, 작전임무 등을 수행하면서도 끊임없이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 지휘관의 숙명이다. 군 지휘관의 결심은 내용뿐만 아니라 시기도 중요하다. 자칫 지휘관이 결심 시기를 놓치면 수천, 수만명의 목숨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의 신이 가장 미워하는 지휘관은 ‘주저하는 자’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통상 지휘관은 참모의 조언을 바탕으로 현재 전장 상황을 이해하고, 상황에 가장 부합하는 결심을 하고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게 된다. 그래서 군이 개발 중인 인공지능을 이용한 ‘참모 시스템’의 가칭도 ‘AI 지휘결심지원체계’다.
AI 지휘결심지원체계는 인공지능 컴퓨터에 북한군 전방부대의 병력과 장비 수량, 지형, 기상 등을 비롯한 강점과 약점 등의 정보를 최대한 입력해 활용하는 방식이다. 아군의 통합화력 정보와 지원능력 등도 입력된다. 빅데이터까지 활용하면 손자병법을 통달한 참모나 다름없는 인공지능 시스템이지만, 그 역할은 지휘관의 결심을 지원하는 것이다.
■결심하는 공간
서울 용산구 합동참모본부 건물에는 한국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의 결심을 돕는 결심지원실(결심실)이 있다. 그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던 결심지원실의 존재는 12·3 비상계엄 사태로 드러났다. 결심지원실을 합참 내부에 존재하는 하나의 조직으로 잘못 알고 있는 민간인들도 있다. 결심지원실은 조직이 아니라 합참 전투통제실 내부에 있는 별도의 보안시설이다.
비상계엄 사태 직후인 지난해 12월 4일 오전 1시쯤 윤석열 대통령은 결심지원실에 들어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소수만 모아놓고 무언가를 논의했다. 약 30분간 진행된 당시 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가져온 관련 법령집에 대한 법리 검토를 했다. 야당에서는 윤 대통령이 이곳에서 2차 계엄으로 전환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 진술 내용을 보면 당시 인성환 국가안보실 2차장은 신원식 안보실장에게 전화해 “대통령이 여기(결심지원실) 와 계시는데, 여기 오래 있는 게 적절치 않아서 비서실장님과 함께 빨리 모시고 갔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 도발을 대비하는 합참의장이 결단을 내리는 공간인 결심지원실에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데리고 간 것은 합참을 무력화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합참 결심지원실은 말 그대로 한국군 최고 작전 지휘부가 안보 등과 관련한 사안을 결심하기 위한 회의 장소다. 이곳은 합참 지휘통제실을 거쳐야 갈 수 있는 전투통제실 내부의 소수 인원만 출입이 가능한 공간이다.
결심지원실은 ‘용산의 장군들’ 중에서도 ‘핵심 장성’들이 모이는 곳이다. 합참의장이 군사 작전에 대해 주로 본부장급(중장급) 고위 장성들과 토의를 하고 판단을 하는 회의실이라 할 수 있다. 즉 본부장들이 합참의장이 결심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합참의장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지시를 내리는 시설 공간이다. 그런 만큼 대규모 인원이 참석하는 작전회의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이 공간의 명칭이 결심지원실인 것은 말 그대로 합참의장이 용산의 고위 장성들과 토론을 하고 결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합참의장은 결심지원실에서 화상회의를 통해 한미연합군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과 의견을 교환한 후 중요한 군사적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또 결심지원실에서 내려진 결정이 국민에게 알려야 할 사안일 경우에는 전투통제실에 따로 마련된 공보전략실에서 SC(전략 소통) 자료로 만들어져 언론에 배포된다.
김명수 합참의장은 비상계엄 다음날 긴급 작전지휘관 회의를 열어 “부대 이동은 합참 통제하에 실시하라”고 지시, 결심지원실의 책임자인 합참의장의 권한을 회복했다.
■뒤늦은 결심
손자병법을 보면 “군대를 지휘하는 장수는 군주의 명령이라도 상황에 따라 따르지 않을 수 있다”는 구절이 있다. 장수는 단순히 명령을 무조건 따르는 게 아니라 올바른 판단으로 전쟁의 승패에 책임을 지는 존재임을 설명한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이를 실천했다. 그는 ‘부산포로 출전하라’는 선조의 무리한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의 후임으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원균은 선조의 명령을 따르다 조선 수군 전체가 무너지는 칠천량 해전의 패배를 당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군을 불법 계엄의 전위부대로 이용했다. 12·3 비상계엄에 동원된 장군 중에 “안 된다”고 말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스스로 헌법을 지키고 따르겠다는 결심을 한 장군이 한 명도 없었다는 의미다.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한 지휘관들은 대부분 ‘어쩔 수 없었다’, ‘군인으로서 명령에 따랐다’, ‘계엄을 잘 몰랐다’는 진술로 일관했다. 이들의 말은 사실 여부를 떠나서 ‘결심하는 자’인 지휘관으로서는 부적절한 발언들이었다. 적어도 3성 이상의 고위 장군들이 자신들의 결정으로 부하들이 자칫 ‘헌법 파괴’ 혐의로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고, 국가가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다. 헌법을 수호할 의무가 있는 군 통수권자가 아닌 개인 윤석열에게 충성한 결과였다.
군이 무력을 다루는 집단인 만큼 장군의 무능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이들은 사후 논공행상을 염두에 두고 불법 계엄에 동조하면서도 그 위법성을 인식하고 있었던 탓에 좌고우면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시작되자 군 장성들은 줄줄이 탄핵 심판정에 나왔다. 이들의 증언은 ‘국회의원을 끌어내란 지시가 있었다’는 작심 폭로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모순된 답변으로 엇갈렸다.
기소된 장군들 가운데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은 뒤늦게 결심하는 지휘관의 모습을 보였다. 그는 국회와 헌법재판소에서 윤 대통령의 지시 발언을 일관되게 진술하면서 내란 가담 혐의를 인정했다. 그러자 여당인 국민의힘은 곽 전 사령관의 증언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회유에 의한 것으로 내용이 오염됐다고 주장했다.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병력 투입을 지시한 곽 전 특전사령관은 윤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다. 곽 전 사령관은 윤 대통령이 비화폰으로 전화해 “아직 의결 정족수가 안 채워진 것 같다. 빨리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라고 말했다고 헌법재판소 심판정에서 밝혔다. 이후에도 그는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끌어내라고 지시한 대상은 국회의원이 맞다”고 일관되게 증언했다. 그는 윤 대통령, 김 전 국방부 장관 등과 뒤늦게 ‘헤어질 결심’을 한 것이다. 그리고 옥중에서 “출동 명령을 지시한 제가 책임져야 할 사안”이라며 국회로 출동한 부하들을 선처해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썼다.
12·3 비상계엄 당시 내란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군·경 수뇌부들의 형사 재판이 지난 3월 17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곽 전 특전사령관의 옥중 결심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부하들은 지켜보고 있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anbo22@naver.com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내란 100여 일, 경제 충격 넘어 복합 손실…국민, 길고 무거운 ‘희생’
- 내란 100여 일, “맘 졸이고 긴장했지만…광장에서 희망을 봤다”
- [가깝고도 먼 아세안](48) 딸은 탄핵, 아버지는 체포…저무는 필리핀 두테르테 가문
- [박성진의 국방 B컷](28) 합참 ‘결심실’의 정체와 전 특전사령관의 ‘헤어질 결심’
- [구정은의 수상한 GPS](1) 트럼프의 ‘납치 특사’와 가자지구 ‘리비에라 플랜’
- [전성인의 난세직필] (36) 홈플러스와 MBK
- [손호철의 미국사 뒤집어보기](6) 다양성과 관용의 도시 샌프란시스코
- [오늘을 생각한다]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 [요즘 어른의 관계맺기](29) 관계의 힘으로 역전을 꿈꾼다
- [서중해의 경제망원경](43) 미국은 다시 위대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