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물린 尹 ‘탄핵 시계’와 李 ‘사법 시계’…3월의 마지막 주 ‘운명의 갈림길’
李 “최상목 몸조심” 거친 경고장…“선거법 재판 앞 초조해져”
‘이러다 탄핵되면’ 與도 딜레마…잠룡들 대권 행보는 ‘일시 정지’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운명의 일주일. 질주하던 '윤석열 탄핵열차'는 종착역 앞에서 멈춰선 모습이다. 제동의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시계가 당초 예상보다 느리게 움직이면서 지난 대선부터 지금까지 맞붙고 있는 윤석열과 이재명의 정치 운명은 다시금 맞물리게 됐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길어지자 조기 대선을 준비해온 야권에선 초조함과 불안감이 감지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 카드까지 꺼내들며 '빠른 선고'를 압박하고 있으나 헌재는 이미 역대 최장 탄핵 심리 기록을 경신했다. 이에 '100% 탄핵'을 자신했던 야권의 기대와 달리 재판관 8인의 의견이 하나로 귀결되지 않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표류하는 사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2심 재판'은 코앞(3월26일)으로 다가왔다. 윤 대통령 탄핵 유무와 관계없이 이 대표가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유죄를 선고받는다면 그 역시 '정치적 사선'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3월 4째주가 대한민국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명운이 동시에 결정되는 '운명의 한 주'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조기 대선을 준비하는 여야 대권 잠룡들은 헌재와 사법부의 판단을 숨죽이며 지켜보는 모습이다.
尹 탄핵 표류하자 거칠어진 이재명
"직무유기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기 때문에 몸조심하기 바란다."
이재명 대표는 3월19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최상목 권한대행의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촉구하며 이같이 경고했다. 그는 "국민 공직자의 모범이 돼야 할 최상위 공직자가 헌법재판소 판결까지 났는데도 헌법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행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며 "(최 권한대행은) 지금 이 순간도 직무유기 현행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거듭 비판했다. 동시에 민주당 지도부는 '최상목 탄핵'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만약 최 권한대행이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아 또 탄핵소추를 당하면 사상 초유의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의 권한대행' 체제가 들어서는 셈이다.
여당은 즉각 반발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3월20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이 대표가 최 대행을 향해 조폭이나 할 법한 극언을 퍼부었다"며 "내란 선동, 테러 조장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체포라는 구체적 폭력 행위를 고무했다는 측면에서 이 대표는 내란선동죄 현행범"이라며 "탄핵만으로 분이 안 풀렸는지 테러 사주까지 하며 가학적 행태가 극에 달했다. 민주당의 이념은 '잘사니즘'이 아니라 사디즘(타인에게 가학적인 행위를 하면서 만족감을 얻는 행위)"이라고 주장했다.
여권뿐 아니라 야권 일각에서도 이 대표의 거친 언사, '줄탄핵'에 대한 역풍 우려가 나온다. 현 정부 들어 30번째 탄핵인 데다 탄핵소추안마다 '줄기각'이 나온 탓이다. 취재에 따르면 3월19일 저녁 국회 본청에서 열린 민주당 비공개 비상의원총회에서도 현시점에서 최 권한대행 탄핵에 따른 실익이 없을 수 있다는 우려가 상당수 의원을 통해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적 역풍은 물론 최 권한대행 대신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직을 이어받더라도 마 후보자를 임명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의원총회에 참석한 민주당의 한 의원은 "마은혁 후보자 미임명이 위헌이라는 헌재의 판단을 최 권한대행이 임의로 '패싱'한 것은 명백한 탄핵 사유라는 데 의원들 간 이견은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내란에 대항하는 적절한 방법이 과연 '줄탄핵'이 맞는지, 과연 민주당의 현 투쟁 방식이 대중의 눈높이와 얼마큼 일치하는가에 대한 일부 의원들의 우려가 있었다"고 귀띔했다.
광장에서 '거친 경고장'을 던지는 '야성의 이재명'은 12·3 비상계엄 직후 이 대표의 모습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최근까지 민주당은 당 집권플랜본부를 띄우고 분과별 실무회의를 진행하는 등 사실상 '대선 캠프'처럼 움직여왔다. 동시에 이 대표는 '차기 대통령다운 모습'을 보이는 데 집중하는 듯했다. '실용주의 중도보수'를 표방한 뒤 시민사회·야권 지도자들과의 연대에 공을 들여왔다. '집토끼'를 잡았다는 판단 아래 '산토끼' 사냥에 나선 것으로 풀이됐다. 이 대표는 1월17일 당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가 꼬투리 잡힐 이야기를 해선 안 된다. 너무 과격하거나 가혹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며 '설화 주의보'를 내린 것으로도 알려졌다.
그렇게 '내일'을 준비하는 듯했던 이 대표가 다시금 거리로 나가 '당장 탄핵'을 외치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선 민주당 내부의 긴장감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헌재의 숙의가 예상보다 길어지자 민주당 내부에서는 '기각과 각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단식과 천막농성 등을 통해 여론전에 나섰으나 당 내부에서는 '실효성이 없다'는 불만도 표출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면서 다시금 '정치판'을 흔들고, 동시에 당 내부와 지지층의 불안감을 다잡으려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이 대표, 그리고 민주당으로선 윤석열의 '탄핵 시계'와 이재명의 '재판 시계'가 같이 돌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부담이다. 헌재 탄핵심판이 장기화하면서 이 대표가 그리는 '윤 대통령 탄핵→조기 대선 실시→정권 탈환' 시나리오는 불투명해졌다. 윤 대통령 탄핵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먼저 현실화할 가능성도 언급된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 선고는 3월26일 내려질 전망이다. 1심은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이 대표에게 항소심에서도 징역 2년을 구형했다. 만약 2심에서도 1심과 같은 '피선거권 박탈형'이 선고된다면 이 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탄핵심판 끝에 파면된다고 해도 이 대표의 출마를 확신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팽배하다. 선거법 270조의 '재판 기간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면 선거범 사건 1심은 6개월 이내에, 2심과 3심은 각각 3개월 이내에 처리해야 한다. 이른바 '6·3·3' 원칙이다. 강행 규정은 아니지만, 재판부가 원칙을 지킨다면 이 대표에 대한 대법원 최종 판결도 상반기 중 나오게 된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 이 대표가 피선거권을 잃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우려도 분명 있다는 얘기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3월18일 시사저널TV에 출연해 야권이 최 권한대행에게 마은혁 후보자 임명을 촉구한 것과 관련해 "이 대표가 대선 이후 (선거법 대법원 재판에서) 유죄가 나올 경우를 대비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권을 잡으면) 이 대표 재판이 중단되는 게 다수설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아니다. 오히려 재판은 계속되며 유죄가 나올 경우에는 (대통령) 직을 박탈당한다는 의견도 많다"며 "사실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면 재판이 중단되는지) 헌재까지 가서 할(판단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그때 (진보 성향의) 마은혁 재판관이 헌재에 있으면 (민주당은) 안심 될 것"이라며 "그래서 목숨을 걸고 민주당이 마은혁 후보자를 (최 권한대행에게) 임명하라고 하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진 교수는 "만약 최 권한대행을 탄핵하게 되면 역풍이 불 수 있다. 국민들이 불안해할 것"이라며 "조기 대선 국면에서도 굉장히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尹 돌아오면 한동훈은?…與 잠룡들의 손익계산서
반면 당초 헌재의 '편향성'을 지적하던 친윤(親윤석열)계는 헌재의 판단이 느려지는 것을 '호재'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실제 여권에서는 윤 대통령 재기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하기 시작했다. 재판관들이 '전원일치 탄핵'에 일찌감치 합의했다면 탄핵심판이 이렇게 길어질 이유가 없다는 게 국민의힘 '희망적 사고'의 근거다.
그러나 여당 지도부 역시 '딜레마'에 처했다는 분석도 있다. 윤 대통령이 파면되고 조기 대선이 실시되는 '경우의 수'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기각 또는 각하되는 것이 최선의 시나리오지만, 그렇다고 당 지도부가 직접 '윤석열 복귀'를 확신한 채 장외 여론전 등을 전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조기 대선이 열릴 경우 중도층 표심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여권 한편에서는 이 대표와 마찬가지로 초조한 시선으로 윤 대통령 탄핵심판을 바라보는 이가 적지 않다.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대권 행보를 준비하던 '대선 잠룡들'이다. 특히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뒤 당권을 잃었다가 최근 공개 행보를 재개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가장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는 시각도 있다. 가뜩이나 윤 대통령 구속취소 이후 여권 내 '윤심'이 강화된 가운데 행여 윤 대통령이 탄핵 절벽에서 살아 돌아온다면, 윤 대통령과 '앙숙'이 된 한 전 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크게 쪼그라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친한(親한동훈)계 한 핵심 관계자는 "보수주의자로서 한 전 대표의 결단(윤 대통령 탄핵 찬성)은 변할 수도 없고, 후회할 이유도 없는 구국의 선택이었다"면서도 "탄핵심판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워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선 헌재의 판단을 지켜본 뒤 한 전 대표도 입장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대권을 준비하는 홍준표 대구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등도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를 숨죽이며 지켜보는 모습이다. 이들 모두 윤 대통령 파면이 결정되면 시장직을 내려놓고 곧바로 '대선 캠프'를 꾸릴 준비를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윤 대통령 파면을 확신할 수 없게 되면서 우선 시정에 전념하며 '플랜B'를 구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시장은 3월1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대통령이 되면 정치권 개혁을 위해 어떤 정책을 낼 것인가'라는 질문에 "오늘 대답을 못 하겠다"며 "탄핵이 되기 어려울 것 같다. 헌재에서 합의가 아마 안 될 것"이라고 답했다.
오세훈 시장은 3월17일 TV조선에 출연해 '탄핵 찬성파가 맞느냐'는 물음에 "오해가 있다"며 "탄핵소추를 하지 않고, 헌법재판소 판단을 받지 않고 어떻게 사태가 수습되겠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이 쪼개질 가능성이 있어서 당론으로 (탄핵소추를) 하라는 취지였고, 수습의 방식이었다"고 해명했다.
■갈라진 민심…'헌재 결정 수용' 55% vs '수용 안 해' 42%
한편,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미뤄지면서 여야 정치권만큼 국민이 느끼는 불안과 긴장감도 최고조를 향해 치닫는 양상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3월17~19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헌법재판소 결정 수용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내 생각과 달라도 수용하겠다'는 응답은 55%, '내 생각과 다르면 수용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42%로 나왔다.
탄핵 찬성·반대 의견을 물은 결과 '헌재가 탄핵을 인용해 윤 대통령을 파면해야 한다'는 의견은 60%, '탄핵을 기각해 직무에 복귀시켜야 한다'는 의견은 35%였다.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는 의견은 전주보다 5%포인트 올랐고, 기각해야 한다는 의견은 4%포인트 내렸다. 헌재의 심판 결과에 대해 신뢰한다는 응답은 전주보다 9%포인트 오른 60%, 신뢰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9%포인트 내린 36%로 조사됐다. NBS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면접으로 이뤄졌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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