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에 달한 광장의 분노…국민 10명 중 8명 “진영 갈등 심각”
헌재, 역대 대통령 탄핵 사건 중 ‘최장기간 평의’ 기록
“지연된 정의는 정의 아냐” 헌재 향해 ‘신속 선고’ 주문도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시계'가 예상보다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신속 재판'을 내세웠던 헌재는 '신중'으로 무게 추를 옮겨 변론종결 후 한 달째 선고일을 통지하지 않았다. 이로써 헌재는 역대 대통령 탄핵 사건 중 최장기간 평의라는 기록을 쓰게 됐다.
그러는 동안 사회의 혼란은 급속도로 가중되고 있다. 광장의 대립은 극으로 치달았고 우려했던 폭력 사태까지 일어났다. 탄핵심판 선고도 전에 3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100명 중 77명이 보수와 진보 간 갈등을 심각하게 느낀다는 조사도 나왔다.
헌재는 침묵 또 침묵…선고 4월 넘어갈 수도
헌재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의 탄핵심판 선고 다음 날인 25일에도 평의를 열고 숙의를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월25일 변론 종결 이후 꼬박 한 달째 사건을 심리 중인 셈이다. 헌재가 오는 26일까지 선고기일 공지를 하지 않는다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는 4월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역대 대통령 탄핵 사건 중 최장기간 평의를 이어가고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지난해 12월14일 접수돼 101일째를 지나고 있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탄핵소추 이후 63일 만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91일 만에 선고가 이뤄졌다.
당초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을 최우선으로 두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전 대통령 탄핵 사건들과는 달리 헌재가 여러 건의 탄핵심판을 동시에 심리하면서 선고가 지연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8일 페이스북에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지연되며 국민들이 잠들지 못하고 있다"면서 "'대통령 탄핵 최우선 심리'를 말하던 헌재가 다른 사건 심리까지 시작하며 선고를 지연하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신속한 파면 선고를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헌재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국민들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직장인 김아무개씨(27)는 "지난해 12월3일부터 푹 잠드는 것이 힘들다. 잠깐이라도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뉴스를 찾아본다"며 "하루빨리 헌재가 결론을 내서 혼란을 수습해 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주부 김아무개씨(55)는 "계엄 직후부터 한시라도 뉴스에서 눈을 뗀 적이 없다"면서 "언제 선고 일정이 통지되는지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광장의 분노도 극에 달한 모습이다. 헌법재판소 앞에선 탄핵 찬·반 세력의 대립이 격화한 모양새다. 이곳에서는 '빨갱이' '종북세력' '극우' '좌파' 등 서로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말싸움이 몸싸움으로 번지는 것도 부지기수다. 헌재 앞에서 만난 시민은 기자에게 "좌파랑 우파랑 한바탕 붙는 건 맨날 있는 일"이라며 "많으면 하루에 세 번씩도 싸운다"고 전했다.
급기야 정치인을 향한 폭행까지 이뤄졌다. 지난 20일 윤 대통령의 파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나선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누군가로부터 날계란을 맞았다. 경찰은 현재 피의자 특정을 위해 폐쇄회로(CC)TV 및 범행에 사용한 계란과 생수병 구매자 등을 확인하고 있다. 같은 당 이재정 의원도 헌재 인근에서 60대 남성 A씨로부터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지난 20일 오후 6시 10분경 헌재 앞 노상에서 이 의원의 오른쪽 허벅지를 발로 찬 혐의를 받는다.
헌재 선고가 있기도 전인데 벌써 3명이 목숨을 잃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있는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부근에서 분신을 시도한 50대 남성이 1월20일 숨진 데 이어 3월19일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유인물을 뿌린 뒤 분신을 시도한 79세 남성이 사망했다. 3월17일에는 광주 북구 운암동 한 사거리에서 60대 남성이 윤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하던 중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10명 중 7명 "계엄 트라우마 겪는다"
사회 갈등은 통계 지표로도 나타났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2024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 간 사회갈등을 심각하게 느낀다는 응답은 77.5%로 집계됐다.
10명 중 7명은 '계엄 트라우마'를 겪는다는 조사도 나왔다. 리얼미터가 지난해 12월11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5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계엄 트라우마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66.2%에 달했다. 이중 '계엄 이후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가 40.0%, '계험 직후 고통을 겪었으나 해소됐다'가 26.2%로 집계됐다. '정신적 고통을 겪지 않았다'는 27.3%에 불과했다.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경제 심리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날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날 기준 3월 뉴스심리지수는 91.73으로 전월(99.85)보다 8.12포인트 하락했다.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던 지난해 12월(85.75)보다 올랐지만, 올해 1월(99.32)이나 2월보다 크게 떨어졌다. 계엄 전인 지난해 11월(100.47)보다는 10포인트가량 낮은 수준이다.
뉴스심리지수는 경제 분야 언론 기사에 나타난 경제 심리를 지수화한 것이다. 한은은 2022년 1월 개발해 매주 월요일 실험적 통계로 공표하고 있다. 기사에서 표본 문장을 추출한 뒤 각 문장에 있는 긍정, 부정, 중립의 감성을 기계학습으로 분류하고, 긍정과 부정 문장 수의 차이를 계산하는 방식으로 지수를 만든다. 지수가 100보다 크면 경제 심리가 과거 장기 평균보다 낙관적이라는 뜻이다.
이용민 변호사(법무법인 시우)는 "역사에 기록으로 남는 만큼 판결문 한 문장 한 문장을 꼼꼼하게 써야 하는 데다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으려다 보니 선고가 지연되는 것 같다"면서 "초유의 서부지법 사태가 발생한 만큼 선고 시점에 대해서도 고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지웅 경기북부지방변호사회 회장(법무법인 정)은 "한덕수 대행 사건의 판결문을 보면 재판관들 사이에 상당한 이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한민국'호의 선장이 부재한 상황인 만큼 신속하게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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