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줄줄이 ‘감액 배당’… 배당소득세 안 내 주주들 환호

김은정 기자 2025. 3. 19.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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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사들 잇달아 주총 안건에 올려

‘준비금 감소의 건’, ‘자본준비금 감소 승인의 건’, ‘자본준비금 감액 및 이익잉여금 전입 승인의 건’….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개막한 가운데, 올해 주요 기업 주총 안건 중 심심찮게 보이는 항목들이 있다. 코스닥 소형주부터 OCI, 대신증권, 우리금융지주, 엘앤에프, 율촌, 일동제약 등 굵직한 종목들까지, 업종과 체급을 가리지 않는다. 이들은 이처럼 소위 ‘감액 배당’을 하겠다는 내용을 안건으로 올려놨다. 감액 배당은 배당을 줄인다는 게 아니라, 자본준비금 일부를 이익잉여금으로 바꿔 주주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주주들은 배당은 배당인데 세금 안 떼는 배당주라며 환호하고 있다.

그래픽=양진경

◇재계의 유행, ‘감액 배당’이 뭐길래

일반적인 배당은 기업이 영업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이익잉여금)을 주주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다. 배당소득세(15.4%)가 부과된다. 그런데 ‘감액 배당’이라며 자본준비금 감액 후 주는 배당은 ‘자본 거래로 인한 소득’으로 잡히기 때문에 비과세다. 기존 주주들이 낸 자본금을 되돌려주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2011년 상법이 개정되면서 관련 근거가 생겼다.

그래픽=양진경

배당소득세 15.4%를 안 떼면 실제로 손에 쥐는 수익은 18.2% 많아지는 셈이다. 배당과 이자 소득이 합계 연 2000만원을 넘는 경우 최고 세율 49.5%의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되는데, 자산가들은 이 세금도 피해 갈 수 있다. 100억원을 일반적인 배당으로 지급했을 때 최고 세율을 적용하면 실수령액이 51억3000만원가량 되는데, ‘감액 배당’으로 받는다면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거의 두 배인 100억원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 자산가들이 ‘찐 배당주’로 부르는 이유다.

그래픽=양진경

◇원조는 메리츠, 너도나도 가세

감액 배당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메리츠금융지주 때문이다. 메리츠금융지주는 2023년 자본준비금 2조1500억원을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하고 감액 배당을 단행했다. 당시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자회사로 편입하면서 발생한 차액을 자본준비금으로 쌓고 이를 이익잉여금으로 돌려 거액의 배당 재원을 확보한 것이다.

이 소식에 당시 메리츠금융지주 주식을 산 왕개미 투자자 A씨는 “배당 시즌이 다가오면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피하기 위해) 주식을 조금씩 팔아야 해서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는데, 감액 배당을 하는 종목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감액 배당의 효과를 더 톡톡히 본 사람은 최대 주주 조정호 회장이었다. 당시 지분율이 48%대였던 조 회장은 이때 배당금으로 2307억원을 받았지만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같은 해 기준 3000억원이 넘는 배당금 지급 대상이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배당금 실수령액이 세금을 제외하면 1800억원에 못 미친 것과 비교할 때 ‘비과세 효과’가 엄청난 것이다. 조 회장은 2024년 결산 기준으로 올해 추가로 1300억원대 비과세 배당금을 또 받을 예정이다.

◇자본 형성 기여 없는 혜택은 논란

시장에서는 상속·재산 분할 이슈로 급전이 필요하거나 지분율이 높은 최대 주주가 있는 상장사들이 감액 배당 대열에 적극 합류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셀트리온(6200억원·최대 주주 지분율 28.4%), KCC글라스(923억원·43.7%), HS효성(3000억원·57.7%) 등 이번 주주총회에서 대규모 자본준비금 감액 및 이익잉여금 전입을 승인받으려는 기업 중 상당수는 최대 주주 지분율이 높다. 이남우 연세대 교수는 “지배 주주와 일반 주주의 이해관계가 일치해 비과세 배당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회사가 어느 정도의 자기자본을 유지하는 게 자본 건전성 측면에서 좋은지에 대한 판단은 결국 이사회의 몫”이라고 말했다.

비과세 배당이 주주 간 분배를 왜곡한다는 지적도 있다. 유상증자 때 출자자로 참여한 주주는 감액 배당의 원천이 되는 자본준비금을 쌓는 데 기여한 게 맞지만, 시장에서 주식을 산 주주는 자본을 늘리는 데 기여가 없는데 감액 배당으로 이 과실을 나눠주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 감액 배당

기업이 이익을 내서 배당을 하는 일반적인 배당과 달리 자본준비금을 헐어서 배당으로 나눠주는 것을 ‘감액 배당’이라고 한다. 일반 배당은 배당소득세 등을 내야 하지만, 감액 배당은 비과세다. 2011년 상법 개정으로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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