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하나도 안 무거워” … 부푼 풍선보다 커다란 부성애[사랑합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쇼핑몰 안에 위치해 있다. 최근 만난 분과 한적한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데 근무지가 쇼핑몰 안에 있으면 어떤지 물으셨다. ‘어느 순간 아무 느낌이 없다고. 매장이 바뀌면 바뀌나 보다 새 식당과 팝업이 들어오는구나 하고 말 뿐, 눈에 띄어 충동구매하는 것도 전혀 없고, 그저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 어디 바로 가서 살 수 있는 편의만 느낀다’고 했다.
그렇게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쇼핑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폿은 아쿠아리움 앞이다. 아침에는 단체 관람 온 어린이들이 길게 줄지어 오리 떼들처럼 지나가는 모습에 괜히 아이들 걸음에 속도를 맞춰 그 근처를 천천히 지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종종 퇴근 무렵 아쿠아리움 주변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는 아이와 부모들의 모습을 볼 때면 부러움을 넘어 묘한 그리움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얼마 전엔 아기띠를 한 아빠가 어찌나 열심히 셀카를 찍으시는지 그 모습이 너무 다정해 보여 나도 그 모습을 찍었다. 아기는 사진보다는 포토존 앞 큰 인형에만 관심이 있는데 아기랑 함께 있는 모습을 담으려고 까치발까지 하고 서 있는 그 아빠가 얼마나 지금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지 멀리 있는 내게도 그 마음이 전해지는 듯했다.
그리고 며칠 후 퇴근길 아쿠아리움 앞에서 마주한 아이는 아빠 등에 업혀, 자기 몸집만 한 큰 풍선까지 들고 있었다. 다리가 아플 새도 없이 업어주는 아빠의 넓은 등, 곧 쪼그라져 들겠지만 둥둥 뜬 기분처럼 한껏 부풀어 오른 풍선을 손에 꼭 쥔 아이…. 그리고 몸으로, 시간으로, 돈으로 그 나이의 아이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줄 수 있는 아빠의 기분은 얼마나 흐뭇했을지 그 표정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을 찍고 지하철을 타려는데, 마치 내 눈에 담은 것을 본 것처럼 다음 날 두 딸이 한 달 살기 하는 치앙마이에 가느라 일이 바빴다는 지인의 메시지가 우연히 도착했다. 순간 아빠 등에 업힌 아이에서 다 큰 숙녀로 성장한 딸의 모습으로 바뀌는 영화처럼 묘하게 여러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내가 가져보지 못한 그런 행복이 아쉽고, 내가 표현하지 못한 살가움이 죄송스럽고, 어긋난 마음들이 안타깝고 이런저런 묘한 기분이 점철되어 괜히 찍어두었던 사진들만 반복해서 바라보았다.
나의 딸아이는 주재원으로 근무한 아빠와 함께 프랑스에서 3년을 지냈다. 그때 서울에서 일했던 나는 부러운 게 하나 있었다. 아이가 매일 오후에 아빠와 하교해서 집까지 50여 분을 걸어온 그 하굣길이다.
지하철 등으로 이동하면 학교까지 30분쯤 걸리는데, 대중교통 파업이 수시로 일어나는 데다가 코로나19 사태까지 생기니 그냥 하굣길은 운동 삼아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걷다가 힘들면 자전거도 타고, 한국식 빵집에 들르거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젤라토를 사 먹거나 하는 소소한 일상을 아빠와 딸은 매일 누렸다.
나는 그게 너무 부러워서 언젠가는 아이가 방학인데도 일부러 학교 근처에 가서 집까지 나도 같은 코스로 걸어가자고 한 적도 있다. 아이가 자라는 속도만큼 부모의 마음이 성숙하는 속도가 못 미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이다. 아이의 학원이 끝나기를 차에서 기다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더 이상 아기띠를 할 수도, 업어줄 수도 없는 나이지만 또 지금보다 훌쩍 자라면, 학원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던 지금이 그리워지겠지. 춥지 말라고 히터를 오래 틀어서 부옇게 흐려진 차창처럼 먼 훗날 내 눈가도 그리움에 그렇게 흐릿해지겠지.
이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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