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 좀 들어줘! 내 아이 일탈의 속내 [내 아이 상담법]
이해 어려운 자녀 일탈행동
부모 태도 어떠해야 할까
무마도 회피도 하지 말아야
일탈, 말 못한 마음의 표현
가정 갈등에 희생양 되는 아이
자녀가 폭력·폭언·절도와 같은 일탈행동을 저지를 경우 많은 부모는 문제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다. 자녀의 일탈행동을 없던 일로 무마하려 들거나 과도하게 걱정하는 부모들이 많다. 어느 쪽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녀의 일탈행동이 '말하지 못한 괴로움'을 표현하려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이번 편에선 자녀가 일탈행동을 거듭할 때 부모에게 필요한 자세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필자는 종종 동화책을 읽는다. 내용은 단순하지만 큰 울림을 줄 때가 많다. 아이들처럼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여러 동화책 중에서도 프랑스 작가 카트린 르블랑의 작품 「그래도 너를 사랑해」를 특히 좋아한다. 이전 칼럼(더스쿠프 통권 562호)에서도 소개한 적 있는 책이다.
내용은 단순하다. 어린 주인공은 엄마의 주변을 맴돌면서 끊임없이 질문한다. 내가 말썽을 피워도, 공부를 안 하고 성적이 나빠도, 동생이 태어나도, 내가 엄마의 사랑을 원하지 않을 때에도….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지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런 아이에게 엄마는 "그래도 너를 사랑해"라며 한없는 사랑을 표현한다.
엄마의 사랑을 확인받으려 하는 동화 속 아이의 모습은 일탈행동 때문에 상담실을 찾은 아이들의 모습과 꼭 닮았다. 일탈행동을 하는 청소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내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부모가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을 갖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부모로선 늘 '동화 속 부모'가 돼주기 쉽지 않다. 아이들의 일탈행동이 선을 넘어서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가 공부를 등한시하거나, 집안을 어지럽히는 수준이라면 어떻게든 타이르겠지만 범법행위를 저지르는 자녀까지 사랑으로 품어주긴 어렵다. 그렇다면 납득하기 어려운 일탈행위를 저지르는 자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필자가 오래전 진행했던 상담사례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상담실에 찾아온 어머니 A씨는 고등학생 자녀의 일탈행동 탓에 고민하고 있었다. 학교폭력부터 가출, 절도행위까지 일삼는 아이 때문에 A씨도 절망감, 무기력, 분노, 혼란, 우울을 경험하고 있었다. A씨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아이와의 관계가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모르겠다"면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아이가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큰 갈등은 없었어요. 성적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학교·학원에 잘 적응했고, 친구 관계도 좋았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선행학습이 어렵다면서 학원에 가길 싫어했어요. 그 일로 저와 다툼이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남편이 저를 나무랐죠."
"아이의 학원 문제가 부부 문제로 번졌어요. 부부 갈등이 심해지면서 이혼 얘기까지 오가는 상황이 됐는데 그때부터 아이의 일탈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갈수록 아이의 일탈행동이 심해지는 것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남편과 함께 지난 일들을 반성하고, 아이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기로 했죠. 하지만 방법을 모르겠어요."
여기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건 '사람은 언어로만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의 일탈행동이 말하지 못하는 마음의 표현일 수 있다는 거다. 거칠어 보이는 일탈행동의 밑단엔 '생존의 위협' '패배의 두려움' 같은 게 깔려 있을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머레이 보웬(Murray Bowen)'은 이를 '희생양'이란 개념으로 설명했다. 가족 간 갈등이 심화하면 그 긴장감이 가장 취약한 구성원에게 전가된다는 거다. 부모가 의도적으로 자녀를 희생양으로 만들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무의식적으로 희생양이 될 수 있다. A씨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갈등하자 아이는 '나 때문이다'란 생각에 괴로웠고, 그 심리를 일탈행동으로 드러냈던 셈이다.
그래서 자녀가 일탈행동을 했을 때 부모가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자녀의 일탈행동으로 놀라고 당황스럽겠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부모가 그렇지 못하다. 자녀의 일탈행동을 알아차렸을 때 부모의 반응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아이의 행동을 부끄러워하면서 부인하려 하는 경우와 아이가 일탈행동을 끊어내지 못해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건 아닌지 앞서 걱정하는 경우다. 부모들의 마음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어느 쪽도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필자는 단호하게 말하고 싶다.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 건 문제를 회피하려는 심리 때문이다. 아이가 일탈행동을 했다고 해서 대학을 못 가거나, 취업·사회생활에 불이익을 당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걱정을 키울 필요는 없다.
쉬쉬하면서 숨길 이유도 없다. 이럴 때일수록 자녀의 힘듦을 알아채지 못한 부모로서의 부족함을 인정해야 한다. 부모가 바로 서야 자녀가 불안감을 떨치고 일탈행동을 고쳐나갈 수 있다.
앞서 소개했던 동화책 「그래도 너를 사랑해」는 아이가 엄마의 곁을 떠나 친구의 손을 잡고 나아가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실제로 청소년기의 가장 큰 발달 과업은 '심리적 독립'이다. 사랑하는 아이가 자기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현명한 부모가 돼 주면 어떨까. 부모가 달라져야 아이도 변한다.
유혜진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 | 더스쿠프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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