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사랑빛_육아에 바나나

14개월 23일, 뉴뉴(별칭)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다. 돌쟁이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 사이에서는 두렵고도 묵직한 숫자 ‘36’이 있다. 바로 아기와의 애착 형성 골드타임이라는 ‘36개월’이다. 아기가 살아가며 가질 평생의 삶의 태도가 엄마와 살 붙이고 지내는 36개월에 달려있다는 이야기였다. 아기는 기억을 못 할지라도, 이 시기에 부모와 애착이 잘 형성된 아이들은 앞으로 고난을 만나더라도 씩씩하게 헤쳐 나갈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나도, 내 아이만큼은 36개월까지 품 안에 꼭 끼고 지내겠노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엄마와 지내는 게 가장 좋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내가 어릴 때처럼 주변에 또래가 많아 동네 친구들과 매일 놀거나 그게 아니라면 엄마들이 함께 모여 공동육아를 하며 육아의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다. 양가 부모님 모두 멀리 계시기에 조부모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워 정말 남편과 나, 단둘이 한 생명을 기르는 일에 기진맥진한 지 오래였다. 게다가 국공립 어린이집은 사전에 입소 신청을 해도 1년은 우습게 기다려야 했고, 회사 어린이집의 경우에는 1세 반 때 입소하지 않으면 사실상 입소가 거의 불가능해진다고 했다. 1세 반에서 올라가는 아이들이 퇴소해야만 그제야 2세 반 공석이 생기는 시스템이라 아이들 나이가 많아질수록 어린이집 입소는 더 하늘에 별따기가 된다. 이런 상황이라 남편과 나는 눈물을 머금고 회사 어린이집 입소 신청을 했다. 실은 약간의 미소도 함께 머금었던 것 같다.

뉴뉴의 경우에는 남편의 회사 어린이집에 지원했는데, 저출산 국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1세 반에만 어마무시한 숫자의 아이들이 지원했다. 모든 회사원이 같은 해에 아이를 낳은 것만 같았다. 뉴뉴는 운 좋게도 럭키드로우로 마지막에 당첨되어 가까스로 입소할 수 있었다. 정작 당첨되고 나니, 뉴뉴가 어린이집에 적응하지 못해 아침마다 어린이집에서 구슬프게 울면 어쩌나, 엄마들도 울면서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는데 집에서 별다른 말썽도 안 부리는 아이를 굳이 그렇게까지 떼어놓을 필요가 있나 뭐 이런 고민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어린이집에서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첫 며칠은 무사했다. 내가 잠깐 자리를 비워도 뉴뉴는 새로운 장난감에 집중해 잘 놀았다. 빠방이 홀릭의 첫 주가 지나고, 새로운 월요일이 되었을 때 드디어 아이의 강성 울음이 시작되었다. 목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하원하러 온 남편이 입구에서 ‘아따 저 아기 누구야~’ 하면서 들어오니 우리 뉴뉴였다고 한다. 아기 목청이 얼마나 좋은지 알기에 우리 부부는 아기보다 선생님들의 귀청이 먼저 걱정되었다. 유리창 밖으로 본 뉴뉴는 ‘엄마가 올 때까지 울 것이다‘라는 비장하고 의지적인 표정으로 손을 허공에 뻗고 울고 있었다. 귀여운 병아리콩 같던 아기의 얼굴이 빨간 고구마 상이 되어 있었다.

나는 종종 타인의 감정이 읽혀 울컥할 때가 있다. 엘리베이터의 열린 문 사이로, 병원 수술실 앞에 대기하고 있는 중년 남성의 초조한 발을 보고 눈물이 솟는다든지, 엉엉 울며 어린이집 문을 탈출하는 뉴뉴의 같은 반 친구를 보고도 그 애절함에 눈시울이 붉어진다든지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 뉴뉴의 눈물을 보며 나는 웃음이 났다. 뉴뉴는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아빠와 함께 잘 때, 엄마가 올 때까지 울겠다는 그 의지를 어린이집에서 보이고 있었다. 내가 등장하면 금방 배시시 웃어버릴 표정이었다.

묘하게 자신감이 생긴 나는 뉴뉴가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확신했다. 딱 2주만 지나면 된다는 어린이집 적응, 얼마 남지 않았을 거라고, 아기들은 애착을 엄마와만 형성하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할머니나 아빠와도 엄마만큼의 애착을 형성할 수 있고, 운이 좋아 뉴뉴와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난다면 선생님과도 애착을 형성할 수 있을 테다. 정말로 뉴뉴는 다음날, 어린이집의 원장 선생님에게 손을 뻗어 안겨 내게 손을 흔들었고, 하원할 땐 나보다 품이 넉넉해 보이는 선생님의 품에 폭 안겨 있다가 남겨진 장난감을 돌아보며 아쉬워했다.

그래도 낮잠만큼은 엄마랑 자자고, 엄마가 안아줄 테니 같이 푹 자자고 점심까지만 먹고 하원하는 일이 한동안은 지속될 예정이다. 이도 사실 생후 36개월 동안은 아기가 엄마와 함께 자기만 해도 뇌 발달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뇌과학자가 쓴 책에서 읽은 내용 때문이다. 실은 낮잠에서 갓 깬 뉴뉴의 꼬순내 나는 미소를 보는 재미를 포기하기도 아쉽다. 엄마는 여전히 ‘36’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지만 어쩌면 뉴뉴는 벌써 자신만의 세상을 탐색하는 데에 재미를 붙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원 길, 유난히 생기가 도는 눈빛으로 걸어 나오는 뉴뉴를 보며, 역시 애착은 시간을 채우는 것에만 집중하기보다 아이와 행복한 눈빛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엄마 아빠의 여력도 함께 챙겨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집 덕분에 오랜만에 남편과 단둘이 나란히 걷기도 하고, 밥도 먹을 수 있는 점심시간이 생겼다. 아기와 함께하는 시간은 조금 짧아졌지만, 어쩌면 우리 세 가족의 사랑의 균형은 조금 더 알맞아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 세 사람의 사랑빛은 조금 더 환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지식토스트

@abrazo.tv

* 글쓴이 - 보배

'세상의 모든 문화'에서 <탱고에 바나나>를 연재하다가 23년 12월 출산 후부터 <육아에 바나나>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공저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세상의 모든 청년>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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