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민감국가'도 지렛대로 쓸 듯…핵 비확산 우려가 유력 배경" - 美 전문가
“韓 정부, 명단 제외 대가 고민해야”
“동맹 경시 美와 긴장 고조” 예상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공짜로 한국을 ‘민감국가’ 명단에서 빼 주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미국 싱크탱크 전문가 사이에서 나왔다. 갈수록 커지는 정치권발(發) 한국 내 핵무장 여론이 유력한 민감국가 지정 배경이라는 게 대체적 추측이지만, 미국 외교 정책과는 무관한 미 에너지부(DOE) 내부 보안 단속 성격이라는 게 한국 외교부 설명이다.
상호관세 협상 중 설상가상
한국이 DOE의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 국가 목록’(SCL)에 포함된 것은 조 바이든 행정부 막판인 올 1월 초다. 14일(현지시간) DOE가 대변인 명의 성명으로 뒤늦게 확인했다. 민감국가는 DOE가 판단하기에 국가 안보, 핵 비확산, 테러 지원 등 우려가 있어 특별한 정책상 고려가 필요한 나라다. 미국과의 원자력이나 인공지능(AI) 등 첨단 분야 교류·협력이 제한될 수 있다.
아직 발효한 것은 아니다. 다음 달 15일부터 관련 조치가 시행된다. 그 전에 지정이 철회되도록 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여러 채널을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명단에서 한국을 빼는 것이 아예 여지가 없는 일은 아니라는 게 미국 전문가들 얘기다. 시드 사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16일 한국일보에 “이 결정과 조치가 바이든 행정부에서 취해진 것이라고 트럼프 행정부가 해명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의도적으로 한 일이 아닌 만큼 무효화에 더 열려 있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한 언급이다.
문제는 미국 측이 대가를 요구할 가능성이다. 트로이 스탠거론 윌슨센터 한국 역사·공공정책 연구센터 국장은 이날 본보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해당 사안을 양국 간 기술적 오해 문제로 접근하는 대신 일종의 지렛대로 삼는 상황을 예상해야 한다”며 “한국은 명단에서 한국을 빼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에 무엇을 줘야 할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음 달 2일로 예고된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를 앞두고 가뜩이나 대미 협상 부담이 큰 형편에 새로운 부담이 생긴 셈이다.
커지는 정치권발 핵무장 여론
한국이 민감국가가 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 배경으로 미국 전문가들이 꼽는 것은 바이든 행정부 내의 핵 비확산 체제 동요 걱정이다. 스탠거론 국장은 “(2023년 4월 한미 정상 워싱턴 선언으로) 한미 핵협의그룹(NCG)이 설립된 뒤에도 한국에 핵 옵션 공론화를 계속 밀어붙이는 정치인이 계속 있다는 사실이 미국을 자극했을 수 있다”며 “(한국의 민감국가 지정이 확정되면)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나 우라늄 농축을 허용해 달라는 한국의 요청을 미국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로버트 매닝 스팀슨센터 선임연구원도 이날 본보에 “한국 내 핵무기 보유 지지 여론이 강경해졌다는 점이 이유가 됐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다만 한국 외교부는 한국이 SCL에 포함된 것은 “외교 정책상 문제가 아니라 DOE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가 이유인 것으로 미국 측 접촉 결과 파악됐다”고 17일 밝혔다.
명단 등재 자체의 파괴력은 크지 않을 수 있다. 워싱턴 소식통은 “전체 행정부에 공유되지 않는 DOE 내부 지침 성격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국과의 기존 과학·기술 협력에 가해지는 새로운 제한이 없다”는 DOE 설명을 액면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도 당장은 없다. 하지만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할 공산이 큰 결정을 사전에 통보하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 측에 ‘동맹국 경시’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있다. 매닝 연구원은 “SCL이 (실질적 파급력이 크지 않은) 단순 감시 대상 명단(watch list)의 의미인 데다 한국 대통령이 핵무기 보유를 향한 구체적 조치를 할 것 같지도 않지만, 해당 이슈가 한미 간 긴장을 고조시키는 쟁점 중 하나로 부각될 가능성은 제법 크다”고 예상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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