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R 완화해도 경기 못살려"···지방 가계대출 정책도 엇박자
◆ 손발 안맞는 당정
매매수요 없는데 대출 완화 압박
당국은 "신중해야" 사실상 반대
與, 지역 표심 의식 밀어붙이기
섣부른 규제완화 시장 혼선 초래
수도권 투기수요 자극 가능성도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이달 11일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가 몸 사리기에 급급할 때가 아니다”라면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풀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그는 지난달 4일 국회에서 당정협의회를 마친 뒤에도 “DSR 한시적 완화를 관계부처에 촉구했다”면서 “금융위가 면밀히 검토할 것을 약속했다”고 발언했다.
이는 금융 당국의 입장과 온도 차이가 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을 포함해 지난달 4일 당정 회의에 참석한 금융 당국 인사들은 “DSR 완화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고 한다. 당국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여당의 주장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에 이어 당정 사이에 정책 엇박자가 나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당국의 한 관계자는 17일 “당에서 강하게 주문하니 의견을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도 “DSR 규제를 푼다고 미분양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는 금융 당국만의 판단은 아니다. 시장에서는 지역 DSR 완화는 극도로 제한된 지역의 투기 수요를 부추기고 국민들에게 3단계 DSR도 후퇴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DSR이 40% 근처라면 DSR 완화가 대출 여력 증가로 이어져 미분양 해소에 기여할 수 있지만 현재는 지방에 집을 사려는 수요 자체가 미미하다. 지난해 6대 광역시의 신규 주택담보대출 DSR 평균이 28.83%에 불과하고 울산은 27.65%에 그쳤다. 비율이 가장 높은 광주 역시 29.88%에 불과했다. 금융 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대출 자금이 말라 지방 미분양이 발생한 게 아니다”라며 “공사비가 늘면서 분양가가 과도하게 올라 생긴 문제인데 대출을 풀자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시장에서는 정책 상품처럼 DSR 규제를 받지 않는 대출을 활용하면 지금도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보금자리론과 디딤돌대출의 경우 각각 6억 원, 4억 원 이하 주택 구입자를 대상으로 2% 수준의 저리 대출을 제공한다. 차주 입장에서 보면 DSR 규제를 받는 은행 상품이 아니더라도 정책 상품을 통해 충분한 수준의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것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미분양 주택이 가장 많은 대구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4일 기준 3억 4160만 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이 대출 규제를 풀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방 건설사의 표심을 의식한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시중은행 여신 담당 임원은 “지방에 매매 수요 자체가 없는데 대출을 풀라고 하는 것을 보면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면서 “지방 건설사를 중심으로 앓는 소리가 끊이지 않으니 정치권이 이에 보조를 맞춘 것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걱정스러운 대목은 실효성이 없는데도 대출 규제를 느슨하게 했다가 자칫 시장의 혼선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DSR 규제를 흔들지 않겠다고 수차례 밝혀온 당국이 말을 바꾸면 ‘정부가 부동산 상승세를 방조하는 것 아니냐’는 시그널로 시장에 받아들여질 수 있다. 실제 당국이 지난해 7월로 예정된 2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을 돌연 두 달이나 연기하면서 대출 막차를 타려는 수요가 쏟아지기도 했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장에 한 번 돈이 풀리면 지역별로 자금 유출입을 관리하기 쉽지 않다”면서 “지방에 돈을 풀면 수도권으로 돈이 흐르면서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국정 공백이 길어지면서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가 부동산 진작책을 중구난방으로 쏟아내고 있어 이에 대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가계대출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데 정치권과 지자체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다 보니 혼선이 커지고 있다”면서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정부가 그립을 잡고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해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가 가계대출 혼선을 막기 위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박지수 기자 syj@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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