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봇 투입" "소총드론 적 쏴라"…北 놀랄 핵시설 공격 무인 전력 [이철재의 밀담]
하늘엔 드론이 날아다니고, 땅에선 로봇이 움직였다.
지난 12일 군 당국이 언론에 공개한 한·미 연합 대량살상무기(WMD) 제거 훈련 장면이다. WMD는 다량의 인명을 살상하고 대량의 재산·시설을 파괴할 수 있는 무기를 뜻한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WMD는 화학(Chemical)·생물(Biological)·방사능(Radiological)·핵(Nuclear) 무기 또는 폭발물(Explosive)의 영문 앞글자를 모은 CRBNE로 정의된다.
『2022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은 1980년대부터 화학무기를 생산해 2500~5000t의 화학무기를 저장하고 있다. 탄저균·천연두·페스트 등 다양한 종류의 생물 무기를 자체적으로 배양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도 보유하고 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북한의 핵탄두 수량 추계와 전망’에 따르면 북한은 핵탄두 80~90기를 갖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80~90기 핵폭탄 보유한 북한
북한 핵·미사일 고도화가 빠른 속도로 나가면서, WMD 제거는 한·미 군 당국 유사시 군사작전 중 우선 순위에 들어갔다. 그래서 2009년부터 한·미 연합훈련 때 연합 WMD 제거 훈련을 꼬박꼬박 해왔다. 이들 훈련은 주로 ‘워리어 스트라이크(Warrior Strike)’라고 불렀다.
한국군은 국군화생방방호사령부에 WMD 제거 임무를 부여했고, 미군은 미 육군 제20 화생방핵폭(CBRNE) 사령부 예하의 부대를 한국에 순환배치하고 있다. 미군은 2014년 11월 미 본토의 폐쇄된 원전에서 북핵 시설 타격 훈련도 벌였다.
지난 12일 WMD 제거 훈련은 지난 10일 시작한 한·미 연합연습인 ‘자유의 방패(프리덤실드·FS)’의 하나로 열렸다.
이날 훈련의 특이 사항은 세 가지다. 우선, 기사 앞머리서 썼듯 무인 전투 전력이 대거 동원됐다. 또 하나, 그동안 군 당국은 WMD 제거 훈련을 사후 보도자료와 사진, 동영상을 통해 공개했는데, 이날 처음으로 훈련 현장을 언론이 취재하도록 허용했다. 마지막, 군 당국이 북한의 WMD 시설을 따라 만든 훈련장을 최초로 드러냈다.
경기도에 있는 이 훈련장의 정식 명칭은 ‘화생방 종합 훈련장’이다. 지난 2022년 9월 완공됐다. ‘화생방’이라 해서 CS가스(최루탄)를 터트리는 훈련장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오산이다.
4만㎡ 이상의 부지에 각종 건물이 들어섰다. 이들 건물은 북한의 생물 연구 시설, 화학 연구 시설, 핵 연구 시설, 미사일 관련 시설을 본떠 만들어졌다. 특히 ‘화학탄 저장 시설’과 ‘WMD 연구 시설’은 지하 갱도처럼 지어졌다. 북한의 핵 연구 시설을 가정한 WMD 연구 시설 안은 빛이 안 들어와 캄캄하고, 미로처럼 복잡한 구조로 돼 있다. 북한군이 생활하는 격실 모양의 공간도 마련됐다.
그동안 WMD 제거 훈련은 주로 주한미군의 캠프(경기도 의정부)에서 벌어졌다. 캠프 스탠리에는 북한의 지하 WMD 시설을 흉내 낸 갱도가 있다. 흔히 ‘금광(Gold Mine)’이라 불리는 곳이다. 그러나 화생방 종합 훈련장이 생기면서 한국군도 독자적으로 WMD 제거 훈련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소총 드론이 공중에서 적 제압
12일 WMD 제거 훈련에 참가한 부대는 제25 보병사단과 미 제2 보병사단·한미연합사단이다. 25사단은 보병 대대를 근간으로 화생방·공병 등 군단의 기능부대를 편조한 군단 통합지원특수임무부대(ISTF)를 꾸렸다. 25사단의 ISTF는 미군과 연계해서 한·미 연합 WMD 대응부대(CWMD-TF)로 참가했다.
실전과 비슷한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대항군 1개 중대가 투입됐고, 쌍방 모두 마일즈(MILES)를 착용했다.
적 지역으로 침투한 특수전사령부 정찰팀이 WMD 의심 시설을 발견한 뒤 이를 보고하면서 WMD 제거 훈련이 시작했다. 25사단은 즉시 1개 보병대대와 사단의 1개 공병소대, 화생방지원 1개소대, 군단 폭발물처리반(EOD), 특전사 1개 팀으로 ISTF를 편성했다.
25사단은 육군의 워리어 플랫폼과 드론봇을 구현한 아미 타이거 시범부대다. 그래서 육군이 보유한 무인 전력이 대거 등장했다.
먼저 정찰 드론이 북한 WMD 의심 시설을 샅샅이 뒤졌다. 정찰 드론은 카메라가 달린 소형 쿼드로콥터(회전날개 4개)다. 실시간으로 의심 시설의 정황과 주둔 병력을 확인해서 아군에 알렸다.
이어 소총 조준사격 드론이 출동했다. 회전날개가 6개 달린 헥사콥터에 K2 소총을 단 드론이다. 소총 조준사격 드론은 처음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비행 중 심하게 흔들리는 기체에서 사격하는 것이라 명중률이 형편없었다. 그러나 반동 흡수 장치와 2축 짐벌을 장착하면서부터 정밀 사격이 가능해졌다. 고성능 광학 카메라에 영상 추적 시스템을 탑재해 정확한 조준도 할 수 있다.
소총 조준사격 드론이 적을 제압하자, ISTF가 북한 WMD 의심 시설 경내로 진입했다. 아군의 기동을 적으로부터 감추기 위해 연막탄을 먼저 터뜨렸다. 그리고 휴대용 지뢰 개척 장비인 포민스로 지뢰와 철조망을 제거했다.
적진 정찰은 무인차량과 로봇이
통로가 열리자 ISTF는 다목적 무인차량을 밀어 넣었다. 6개의 바퀴가 달린 이 차량은 원격사격통제체계(RCWS)로 7.62㎜ 기관총을 쏠 수 있다. 전기 모터로 움직이기 때문에 소음이 적었다. 조종으로 움직이는데, 인공지능(AI) 덕분에 스스로 주행하거나, 사람을 따라 다닐 수도 있다. 군 당국은 다목적 무인차량을 감시나 정찰은 물론 전투, 부상병·물자 이송 등 다양한 임무를 맡길 계획이다.
뒤이어 보병이 전·후·측방을 통제할 수 있는 견부 진지를 확보했다. 보병부대 전원은 WMD 의심 시설이라 임무형 보호태세(MOPP) 2단계에 따라 화생방 보호의와 전투화 보호 덮개를 한 상태였다.
그리고 화학탄 저장시설 제압에 돌입했다. 진입 부대는 먼저 화학작용제 탐지장비(K-CAM2)로 오염 여부를 확인했다. 소탕작전 도중 화학작용제가 새나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진압 부대는 모두 MOPP 4단계에 따라 화생방 보호의를 입은 뒤 방독면을 쓰고 보호장갑을 꼈다. 전투화 덮개도 씌웠다. 방독면은 정화통이 오른쪽, 왼쪽 2개 달린 신형 K5 방독면이었다.
화학탄 저장시설 안에는 노란색 머띠를 두른 대항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입 부대는 문을 열고 다족 보행 로봇을 들여 보냈다. 다리가 4개인 개를 닮았는데 머리가 없고, 주·야간 촬영 카메라를 단 로봇이다. 20㎝ 높이 장애물도 넘고, 시속 4㎞ 속도로 움직인다. 지난해 10월 1일 76주년 국군의날 기념식 때 이 로봇이 제대와 함께 사열하면서 관심을 끌었다.
내부 대항군의 규모와 위치를 알아낸 뒤 진입 부대는 총격전에서 보호할 방탄 방패도 갖추고 소탕작전에 들어갔다. 클리어~. 화학탄 저장시설엔 포로 발사할 수 있는 화학탄이 가득했다. 진입 부대는 소탕작전 후 K-CAM2로 현장을 확인했다.
다른 진입 부대는 화학탄 생산시설을 습격했다. 화학탄 생산시설은 4층 건물이었다. 안에다 압력용기 등 각종 장비를 들여놔 그럴 듯했다. 이곳의 저항군은 부비트랩(살상용 덫)을 놓았다. 역시 다족 보행 로봇이 먼저 정찰을 벌였다. 다족 보행 로봇은 계단도 성큼성큼 올라갔다.
대항군 저격수는 2층에서 매복했다. 조준사격 드론이 2층의 대항군 져격수를 제압하면서 진입 부대를 엄호했다. 이곳도 클리어~.
다음 목표는 생물학 생산시설이었다. 시설 안은 진짜 생물학 생산시설이라 생각들 정도로 실험기구로 잘 꾸며놨다. 또 다른 진입 부대는 똑같은 방법으로 확보했다.
야간투시경 쓰고 핵 시설 내부 소탕
미군이 북한 WMD 의심시설 작전에 가세했다. 한반도에 순환배치 중인 미 육군 제2 보병사단 20연대 5대대 소속 스트라이커 부대였다. ISTF와 미 스트라이커 중대는 연합지휘소를 꾸려 WMD 확보 계획을 짰다. 이제 CWMD-TF가 나섰다.
미군은 WMD 연구시설을 맡았다. 북한의 지하 핵 관련 시설을 재현한 곳이다. 유사시 미군이 북한의 핵 관련 시설을 담당하고, 한국군은 미군의 작전을 지원한다.
미군 진입부대도 MOPP 4단계 상태였다. 그리고 모두 야간투시경을 꼈다. 어두운 지하 시설에서 전투하려면 야간투시경이 필수다.
미군 진입부대는 먼저 휴대용 절단기로 철문에 구멍을 냈다. 진입로를 트려는 것이다. 그리고 팩봇(Packbot)이 먼저 들어갔다. 팩봇은 폭발물 처리반(EOD)이 먼 거리에서 조종해 폭발물의 뇌관을 무력화하는 용도의 소형 로봇이다. 집게와 카메라가 달린 손이 특징이다. 집게나 카메라 대신 손에 권총이나 물대포를 쥐어줄 수 있다.
그리고 내부 진입. 원래 훈련에선 전등을 켜지 않고, 최루탄을 터뜨린다고 한다. 그러나 이날 언론 취재를 배려해 전등을 켜고, 최루탄을 터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번 훈련을 했는지 WMD 연구시설 안은 조금 매캐했다. 미군의 방탄 방패는 바퀴가 달린 이동식 방탄 방패였다.
미군 진입부대는 격실을 하나하나 소탕했다. 소탕이 끝난 곳엔 캐미컬 라이트를 던져 표시해놨다. 근접전투(CQB) 훈련을 받았는지 미군 진입부대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작전 종료.
ISTF를 지휘한 마동혁 대대장(중령)은 “ISTF와CWMD-TF간의 연계·통합작전을 훈련해 볼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미측 윌리엄 테일러 중대장(대위)은 “이번 훈련을 통해 한·미동맹이 한층 더 강해졌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군 당국이 최대한 실전과 가까운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훈련장을 북한 WMD 시설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든 점은 칭찬할 만하다. 다만 좀 더 많은 무인 전력을 동원할 수 있었으면 했다. WMD 제거는 어렵고 위험한 군사 작전이기 때문에 특히 더 그렇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FPV 레이싱 드론을 개조한 자폭 드론이 더 유용하니, 이를 창끝부대에 더 많이 보급할 필요가 있다. 미국 특수전사령부(SOCOM)는 땅굴이나 지하 시설에서 소탕 작전을 벌일 때 소형 정찰 FPV이 유용하다고 판단했다.
또 하나. 무인 전력을 많이 확보했으면, 아낌없이 썼으면 한다. 무인 전력은 대개 값비싸다. 미군도 무인기를 잃어버리거나 망가뜨리면 나중에 조사를 받기 때문에 실전에서 투입하길 주저한다고 한다. 한국군은 오죽할까.
수억 원짜리 무인기나 로봇보다 한 명의 장병이 더 소중하다. 무인 전력을 총알로 생각하자. 총알처럼 무인 전력도 적이 보이면 아낌없이 쏟아붓자.
이철재 국방선임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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