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자도 백악관 '픽'"…트럼프식 열린 '입틀막' 논란[정강현의 워싱턴 클라스]

백악관은 미국 정치·행정의 최전선이다.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 언론이 그곳에서 취재 경쟁을 벌인다. 그런 만큼 백악관 대변인실과 출입 기자들의 긴장 관계는 필요불가결이다. 하지만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긴장 관계는 갈등 관계로 변질되는 중이다.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바꿔 부르기로 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AP통신 기자를 풀(pool) 취재단에서 제외하고, 대통령 전용기(에어포스 원) 탑승도 불허하면서 촉발된 논란이다.
백악관 기자실에선 어떤 일이?
![지난 11일 백악관 기자실에서 캐롤라인 레빗 대변인이 현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3/17/joongang/20250317002435516zlxj.jpg)
갈등이 증폭되던 지난달 25일, 레빗 대변인은 “앞으로 백악관 풀 취재 명단은 기자단이 아닌 대변인실에서 직접 결정하겠다”며 일종의 선전 포고를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근접 취재는 권리가 아닌 특권”이라며 “(유튜브 인플루언서와 블로거 등) 뉴미디어도 풀 취재단에 포함시키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브리핑룸 곳곳에선 출입 기자들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다음날 백악관 출입기자 협회(WHCA) 회장인 유진 다니엘스 폴리티코 기자는 “백악관이 독립적인 언론 보도를 장악하려는 시도에 협력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항의 성명을 냈다. 하지만 백악관 대변인실은 기자단의 항의를 일축했고, 현재도 직접 풀 취재 명단을 지정하고 있다.
70년 된 풀 선정 관행에 ‘메스’
백악관 풀 취재단은 소수의 기자가 돌아가며 대통령을 근접 취재하는 시스템이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임기 기간(1953~1961)에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보안상 이유로 대통령 근접 취재에 인원 제한이 따를 수밖에 없어 고안해낸 취재 방식이었다. WHCA가 풀 기자를 정하는 권한을 갖고, 약 70년간 자발적으로 운영해왔다. 통상 통신과 신문, TV와 라디오 소속 기자 등 10여명이 순번에 따라 취재에 들어간다.

풀 기자로 정해지면 대통령의 발언과 이동 경로 등을 문서로 작성해 기자단에 배포하고, 대통령의 건강과 안전 상황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실제 주말마다 플로리다 팜 비치에서 골프를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 주변엔 풀 취재단이 상시 대기하면서 비상 상황을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2기 백악관은 대통령 근접 취재는 ‘특권’이며, 이를 부여할 권한이 기자단이 아니라 백악관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70년간 이어져 온 풀 기자 선정 방식을 일방적으로 바꿔버렸다. 테일러 부도위치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이번 조치는 언론을 통해 세계에 미국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의 일부일 뿐”이라며 이 같은 결정을 정당화했다.
트럼프식 열린 ‘입틀막’ 논란
백악관 출입기자들 사이엔 트럼프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에 비해 언론 친화적이란 평가가 많다. 바이든이 기자회견을 극도로 회피한 반면, 트럼프는 거의 매일 기자들과 문답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언론 ‘노출’ 친화적이란 표현이 더 적확할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주장을 더 많이 더 자주 전달하기 위해 언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만,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태도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1기 당시 짐 아코스타 CNN 기자가 트럼프와 설전을 벌인 뒤 백악관 출입이 막혔고, 이번 2기 때는 역시 케이틀런 콜린스 CNN 기자가 트럼프 백악관의 '공공의 적'이 됐다. 콜린스는 오벌 오피스(대통령 집무실) 풀 기자로 들어가 “관세가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지 않겠냐”고 물었다가 트럼프로부터 “당신에게 물어보라고 한 적 없다”는 면박을 받고 질문 기회를 곧바로 빼앗겼다. 질문 기회는 많지만 비판적인 질문은 바로 차단되는, 일종의 열린 ‘입틀막’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9일 전용기 '에어포스 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풀 취재단과 인터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3/17/joongang/20250317002436109wymj.jpg)
백악관이 풀 기자 선정 방식에 칼을 댄 것도 사실상 비판 언론의 기회를 박탈하고 우호적인 언론이 대통령을 밀착 취재하게 하려는 것 아니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백악관 대변인실은 AP통신을 풀 취재단에서 제외하면서 극우 성향의 뉴스맥스, 리얼아메리카보이스 등을 추가했다.
백악관이 직접 선정한 극우 매체들은 실제 맞춤형 질문으로 트럼프와 적극 ‘코드’를 맞춘다. 지난달 28일 트럼프와 볼로디미르 젤린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말싸움을 벌이며 정면 충돌했을 당시, 트럼프가 젤린스키의 복장에 불만이 컸던 게 발화점이 됐단 분석이 나왔다. 당시 백악관의 결정으로 새롭게 풀 취재단에 들어간 팟캐스트 리얼아메리카보이스 진행자인 브라이언 글렌은 젤린스키를 향해 “왜 정장을 입지 않았느냐”는 질문으로 트럼프의 심기 경호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백악관 ‘픽’ 풀단, 지속 가능성은?
백악관이 출입 기자단의 자발적 운영 권리를 박탈한 것을 두고선 각계 비판이 가열되고 있다. 자밀 자퍼 컬럼비아대 나이트 수정헌법 1조 연구소장은 "이 끔찍한 결정은 결국 대통령에 순응하는 기자들로 구성된 풀 취재단을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30년 가까이 백악관을 출입한 제임스 거스텐장 전 AP통신 기자도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이번 조치는 단순한 기자단과 대통령 간의 불화가 아니다”며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을 약화하는 것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 행위”라고 꼬집었다.
운영상 문제점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풀 기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 문제다. 통상 풀 취재단에 선정된 기자는 대통령 국내 일정 수행엔 1인당 수천 달러, 해외 순방의 경우 수만 달러 비용을 자체 부담해야 한다. 이런 비용 부담을 이유로 풀 시스템 참여를 자발적으로 거절하는 뉴미디어도 속출하고 있다. 백악관이 뜻하는 대로 풀 취재단을 구성하는 게 어려워질 수 있단 얘기다.
정강현 워싱턴 특파원 fon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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