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이자 더는 감당 못해”… 지난해 서울 아파트 경매 급증

박지윤 기자 2025. 1. 2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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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267건 경매…전년比 67%↑
영끌 매수·자영업자 대출 이자 부담 증가 영향

서울 아파트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노원구 상계동의 한 아파트를 지난 2021년 10억원에 매수한 A씨. A씨는 내 집 마련 자금을 모으기 위해 한 은행으로부터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3억원의 근저당을 설정했다.

나머지는 전세입자 보증금(5억원)과 캐피탈‧신용대출(1억원)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A씨는 2021년 평균 연 3.25% 금리에 대출을 받으면서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총 4억원에 대한 이자를 매달 108만원씩 꼬박 납부했다.

지난 2024년 12월 16일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 모습./연합뉴스

하지만 2022년 하반기부터 금리 인상이 이어지면서 2023년 들어 연 5%의 금리가 책정돼 매달 내야 하는 돈이 166만원으로 뛰었다.

설상가상으로 전세가까지 하락해 새로운 전세입자를 보증금 4억4000만원에 들이면서 기존 세입자에게 6000만원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결국 A씨의 아파트는 지난 2023년 말 압류당한 뒤 지난해 경매로 넘겨졌다.

A씨 사례와 같이 서둘러 집을 사기 위해 자산을 끌어모았던 ‘영끌’ 매수자들이 대출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파트를 경매로 넘기고 있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는 전년보다 60% 이상 늘었다.

20일 법원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1~12월 서울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는 3267건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23년 1956건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67% 증가한 것이다. 2년 전 798건에 비해서도 4배에 가깝게 늘어난 수치다.

그래픽=손민균

서울 아파트 경매 건수 대비 낙찰 비율인 낙찰률도 내려갔다. 경·공매 데이터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 아파트 낙찰률은 39.8%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11월(48.3%)보다 8.5%포인트(p) 떨어진 것으로, 9개월 만에 40%대 아래로 내려갔다.

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을 의미하는 낙찰가율도 3개월 연속 하락세다.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지난해 10월 97%, 11월 94.9%로 내린 뒤 12월에도 91.8%로 떨어졌다.

경매 시장에서 수요자들의 관심이 몰렸던 강남3구(서초·강남·송파) 아파트 인기도 한 풀 꺾인 모습이다.

지난달 송파구 잠실엘스 전용 120㎡ 경매는 두 차례 유찰됐다. 잠실엘스 같은 면적이 지난해 10~11월 32억3200만~33억4000만원에 실거래가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감정가격(32억8000만원)이 더 높아 경매 참여자들의 외면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강남구 대치동 대치아이파크 전용 120㎡도 지난해 12월 감정가 38억9000만원에 이뤄진 1차 경매가 유찰됐다. 단지 같은 면적 실거래가는 지난해 12월 40억7300만원으로 감정가보다는 낮았지만 주인을 찾지 못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2022년 상반기까지 서울 아파트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서둘러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영끌 매수자들이 높아지는 금리와 대출 규제 강화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주현 지지옥션 전문위원은 “고금리가 계속되면서 서울 아파트 경매 신청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며 “부동산 경기 침체와 정치적 불확실성 등으로 매수세가 위축되면서 수차례 유찰되는 경매 건들이 늘어나면서 매물이 쌓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높은 대출 금리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영끌 매수자뿐 아니라 내수 경기 침체로 자영업자들도 경영 악화로 살던 집을 압류 당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도 경매 진행 건수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영끌 매수자들이 받은 담보 대출이 연체되면서 서울 아파트 경매 물건이 늘었고, 자영업자들도 신용대출을 받아 장사를 하다가 이자를 못 갚아 살던 집이 압류 당하고 경매로 넘어가면서 전체 경매 건수가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도 고금리와 대출 규제, 정치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서 경매 물건이 누적되는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주현 전문위원은 “최근 법원 등기정보광장을 통해 경매 신청 건수가 계속 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하반기까지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높은 이자 부담을 이기지 못한 영끌 아파트가 경매로 쏟아지고 응찰자도 잘 나타나지 않아 올해도 낙찰가율은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준석 교수는 “올해 금리가 내려가면 몇 개월 뒤에는 경매 진행 건수가 지난해보다는 줄어들 수 있다”면서도 “올해 상반기까지는 이미 경매 시장에 대기 중인 매물들이 계속 쏟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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