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수렁에 빠진 정치, 난국의 시간
어두운 시간을 지나고 있다. 나라는 길을 잃고 헤매는 듯하다. 이 혼돈의 정국이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다. 매일의 뉴스를 접하면서 시민사회의 적대적 분열, 증오, 극한대립의 정치는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받는다. 이 수렁에서 어떻게 헤어나와야 할지, 과연 헤어나올 수는 있을지, 막막함을 갖게 된다. 이 나라의 상황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파국은 피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지금 우리 국민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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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국 관리는 지혜와 절제를 요구
현 상황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대선보다 더 멀리 보는 해법 필요
정치, 정당 행태 변화의 길 찾아야
」
희망을 잃으면 미래도 없게 된다. 긴 시계에서 보면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이 난국이 어차피 겪어야 할 과정일 수도 있다. 우리 국민이 어떤 국민인가? 해방 후 극심한 혼란과 테러, 서울의 주인이 네 번이나 바뀌고 국민 다수가 생사의 기로에 섰던 6·25 동란, 4·19 이후의 혼미기, 외환위기…, 다 겪으며 일어선 국민이다. 이 시간이 흐르면 지금의 이 혼미한 정국 또한 흘러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번에 제대로 일어서기 위해서는 지금 이 위기의 성격을 이해하고, 앞을 준비하는 논의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이번 위기는 단순히 87년 체제가 낡았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이 위기는 이제 이 나라의 국가운영방식의 전반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정치·정당·시민사회 문화의 대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비상계엄령은 대통령 자리에 앉게 된 한 개인의 편협한 인식과 망상적 판단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이 계엄령이 나오게 되기까지의 상황, 계엄령 사태 이후의 정당·정치인들의 대응은 단순히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 대통령을 뽑는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정치는 적대, 증오, 극한대립의 악순환에 빠져있다. 우리 사회의 갈등 요소가 그만큼 많고 뿌리 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선시대 당파 싸움, 분열의 모습 그대로 돌아간 듯하다. 민주주의는 절제, 포용, 타협의 문화 없이는 잘 작동하기 어렵다. 내각제든 대통령제든 같은 민주주의 제도도 나라마다 다르게 작동하고 있다. 같은 대통령제이고 그곳 역시 정치 퇴행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지난 30여년 거의 3000건에 이르는 미국 의회의 표결 결과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민주당과 공화당이 초당적 합의에 도달한 사례는 국내정책 63%, 국제정책 76%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는 여당 때에 추진하던 정책도 야당이 되면 반대한다. 가치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상대를 죽이기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 이 악습·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않고는 우리는 이번 위기를 극복했다고 할 수 없다.
제도의 변화도 필요하다. 권력구조, 선거제도, 정당운영제도 모두 이번 기회에 정치에 새 피를 수혈하고, 타협과 협력의 전통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제도만 가지고 되지는 않는다. 전 세계에 좋은 제도는 많다. 그것을 어떻게 운영하는가가 그 나라의 정치를 규정한다. 따라서 전통과 행태가 중요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불행한 서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을 거쳐오며 분노, 증오, 보복 정치의 불길은 더 확산되어 왔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또 한 통의 기름을 붓는 것이 아니라 해소의 실마리를 찾는 계기가 되도록 우리 국민은 지금 이 국면을 눈 덮인 산야를 걷듯이 관리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이 나라는 그동안 쌓아온 번영과 위상을 반납하고, 정체와 쇠락의 길을 지속하게 될 것이다.
헌재 탄핵심판의 결과는 분명해 보인다. 탄핵이 인용되지 않으면 나라가 더 큰 혼란 속에 빠질 것이다. 절차적 정당성을 지켜가며 최대한 앞당겨 국정 공백, 불확실성의 시간을 줄여주어야 한다. 이어서 시작될 대선과정이 난장판 대결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 또 하나의 주요 관문이다. 대선에 나설 후보들은 이번 대선 과정에서 이 나라의 국정운영시스템, 국가지배구조 개편, 정치문화 혁신에 대한 본인의 의지와 분명한 비전을 제시해 경쟁해주기 바란다. 대선 전 개헌은 시간이 너무 촉박하고, 대선과 개헌내용 논쟁이 뒤섞이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개헌은 이제 더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가 되었고, 대선 후보들은 개헌에 대한 뒤집을 수 없는 약속과 일정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인물, 제도, 행태가 뒤엉킨 이 당혹스러운 정국을 헤쳐나가는 데에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이 행태의 문제이다. 상대를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벼랑 끝에 몰아 실패하게 해야 내가 승리할 수 있다는 상대 죽이기 정치가 우리 모두를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다. 이 사태로 오기까지에는 여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정치제도를 바꾸는 것뿐 아니라 정치하는 방식, 정당운영 행태를 바꾸어야 파국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야당의 대선 승리는 기정사실이 아니다. 이 시대 대한민국은 지혜와 글로벌 통찰력,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을 갈망하고 있다.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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